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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문정인 동북아시대추진위원장, 이노구치 다카시 주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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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를 묻는다
① 미국 : 찰머스 존슨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일본정책연구소장-장달중 서울대 교수
② 일본 : 이노구치 다카시 주오대 교수 -문정인 동북아시대 위원장
③ 중국 : 왕이저우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소장 -이희옥 한신대 교수
④ 러시아 : 노다리 시모니아 세계경제ㆍ국제관계 연구원 원장- 견익승 모스크바대학 박사 과정 이노구치 다카시 일본 주오대 교수와 문정인 동북아시대추진위원장의 대담은 지난 4월28일 오후 도쿄 파스토랄 호텔 룸에서 진행됐다. 두 사람은 미국의 동북아 정책과 중국의 부상, 한-일 관계,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 동아시아공동체 구상 등 동북아의 주요 쟁점들을 폭넓게 짚었다. 이노구치 교수가 대북 강경 접근에 이해를 보이는 등 현실주의 외교의 관점을 더 강조한 반면, 문 위원장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비중을 둬 미묘한 견해차를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동북아 현안 해결을 위한 한·중·일 3개국 정상회의가 시급하다는 데는 의견을 함께 했다. 이노구치 “중국, 머잖은 장래 미국의 최고 파트너” 문정인 “미-일 동맹강화는 ‘중국의 패권적 부상’ ?추자는 것 아닌가” 문정인=동북아시아는 주요한 전환기에 있다. 냉전 종식이 이 지역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역내 불확실성이 커지는 등 훨씬 나쁜 쪽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정말 역설적인 일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이런 변화가 9·11 동시테러와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격적 방향의 세계적 군사력 재편 등이 동북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입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의 동북아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노구치 다카시=평가가 쉽지 않다. 미국의 패권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미국이 이미 유일 패권국으로 되살아났다는 견해도 있다. 동북아에서 미국의 모습은 두가지 모두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의 첫번째 관심사는 중동이다. 그쪽에 높은 관심을 두는 한 동북아는 두번째 주목 대상일 뿐이다. 문=동북아에서 미국의 두가지 모순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먼저 도덕적 절대주의, 패권적 일방주의, 공격적 현실주의를 띤 부시 독트린이라는 기본적 이미지다. 이는 중국을 위협으로, 북한을 주된 표적으로 만든다. 미국이 이런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대립과 불신에 기반한 질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미국에게는 유럽에서 한 것과 같은 또다른 선택지가 있다. 협력과 통합에 바탕한 새 질서의 추동자가 돼 한국·일본과 협력하듯이 중국·북한·러시아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노=첫번째 요소가 섞인 두번째 이미지가 미국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미국의 생각은 동아시아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나라를 길들이기 위해 첫번째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을 듣지 않는 나라를 길들이기 위해 몽둥이를 들거나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미국이 길들인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 이노=그렇긴 하지만 미국은 19세기 이후 그래왔다. 불량국가 길들이기 시도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문=전임 빌 클린턴 정부는 개입과 확장 정책을 추구했다. 그건 부시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스타일 면에선 근본적으로 다르다. 클린턴은 중국을 경쟁자가 아니라 미래의 파트너로 다뤘다. 이노=소련과의 군비통제 협정을 놓고 비교해보자. 공화당은 굉장한 걸 했지만, 민주당은 아무것도 해낸 게 없다. 나는 민주당 정부가 북한을 원만하게 다룬 반면, 공화당 정부는 아주 잘못 다루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적어도 군비축소라는 전반적 합의의 면에서 보면 공화당 정부가 훨씬 잘하고 있다. 주로 공화당 쪽이겠지만, 극우인사일수록 군부를 잘 설득할 수 있다. 공화당이 이런 문제에서 러시아, 중국 같은 적대국을 더 잘 다뤄왔다. 문=중국은 미국과 일본에게 위협 요소로 생각돼왔다. 중국은 이런 ‘중국위협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평화적 부상(화평굴기)을 강조했다. 중국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에너지·환경 문제를 풀고, 부자와 빈자나 시골과 도시의 격차 등 중국 사회의 모순을 줄여가고 싶다는 말이다. 평화적 부상을 자세히 보면, 중국은 전쟁이나 패권경쟁, 약탈적 행동, 팽창주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노=불행하게도 평화적 부상을 주장하는 학파는 힘이 없다. 그들은 중국 정부의 핵심이나 지배그룹에 있지 않다. 문=후진타오 주석과 가까운데. 이노=후진타오는 유일한 권력자가 아니다. 중국의 공산당 정부 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공산당에선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하다. 매우 강경한 세력을 설득해야 한다. 강경한 중국 군대는 공산당의 기관이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기관이 아니다. 굉장히 복잡한 권력구조가 중국에 존재한다. 문/ 북한 핵과 미사일, 중국의 군사위협 핑계로 일본 군사대국화 시각 이노구치/ 지난 60년동안 미국 그늘
완전한 주권국가 열망은 과격과 거리먼 합법적인 일 문=그렇다면 중국을 위협으로 보는 것인가. 이노=그렇게 위협이 된다고는 보지는 않지만, 적어도 중국 군대는 대만 문제, 일본과의 섬 분쟁 등에서는 완고하다. 그래서 최근 미국과 일본이 방위 능력을 강화하는 조처에 합의했다. 물론 중국은 거기에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중국의 영토 부근에서 매우 협력적인 형태로 작전 등을 하면 중국은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 문=중국은 방어적 태도 아닌가? 이노=그러나 중국은 20여년 이상 꾸준히 경제성장 속도에 맞춰 군사력을 강화해왔다. 그건 엄청난 것이다. 또한 대만 해협은 이미 중국 공군의 통제 하에 들어가 있다. 문=일본에선 중국의 능력을 좀 과장하는 것 같다. 지금 중국의 주요 목표는 국내 변화다. 중국의 팽창주의 경향으로 어떤 것을 들 수 있나? 이노=대만은 강력한 중국의 공군력 통제 범위에 들어 있기 때문에 미국 (해·공군)은 필리핀 북부나 괌으로부터 대만으로 갈 수 없다. 미 항공모함도 1995년과 같이 대만 해협을 통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대만이 중국과 같은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해도 다른 실체라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파괴하려는 것은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이다. 문=그런데 한국을 예로 들면, 중국보다는 일본 위협에 대한 우려가 더 많다. 일본은 이른바 ‘보통 국가’가 되려 하고, 평화헌법 9조 개정 움직임이 진행되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려 하고, 미국과의 배타적 동맹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한국에선 일본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위협을 핑계로 이용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이노=일본의 보통 국가화는 매우 합법적인 것이다. 일본은 지난 60년 동안 미국에 의해 일종의 보호를 받아왔다, 적어도 좀더 완전한 주권국가가 되려고 열망하는 것은 지극히 합법적인 일이다. 그리고 헌법 9조 개정 움직임은 전혀 과격하지 않다. 집권 자민당의 개정 초안을 보자. 단순히 자위대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며, 거의 달라지는 게 없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언급도 없다. 일본 국민들이 뭘 선호하는지 보라. 그것은 평화주의다. 중국은 국민 여론을 살필 필요가 없다. 중국은 파괴주의다. 그러나 일본은 별로 그렇지 않다. 문=우리는 일본에서 두개의 경향을 본다. 하나는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노선을 지속하는 것, 즉 미국의 안보 우산을 쓰는 게 최선이라는 견해다. 또 하나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나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 등의 주장에서 보는 이른바 ‘한물 간 내셔널리즘’이다. 이시하라는 한때 굉장히 반미 성향을 보였지만, 지금은 매우 친미적이다. 우리가 볼 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으니 포위하기 위해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극우인사들은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위해 미국도 이용한다. 두가지 노선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 이노=그건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아주 평화로운 나라라고 하더라도 꾸준히 군사력을 증강하기 마련이다. 군사력 불균형이 매우 크다. 하다 못해 자위대는 미국과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공군력도 없다. 우리가 북한을 폭격할 수 있겠나. 언제나 미군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 문=일본이 100% 미국에 의존적이라는 얘기인가. 이노=어느 정도는 그렇다. 케네스 월츠는 1985년 당시 전세계에서 주권국가는 미국과 소련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어떤 나라든 완전한 주권국은 없다. 나는 일본이 완벽한 주권국가가 되리라고 보지 않는다. 모두 반주권국인데, 일본은 그 정도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문=한국에 대해 얘기해보자. 노무현 정부는 이른바 균형자론을 제안했다, 그 제안은 여러 불협화음과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균형자’라는 말에서 화합자나 평화 촉진자 등을 생각한 것이다. 18·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에서 영국이 하던 구실을 생각한 게 아니다. 그러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한국이 어떻게 균형자가 될 수 있나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노=중재자, 설득자라는 말이 좋겠다. 문=특히 중국과 일본이 갈등을 빚을 때 말이다. 이노=균형자는 예를 들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 붙어서는 안된다. 문=노 대통령의 말은, 한국이 여러 세력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않고 어떤 특정한 세력을 쫓아가면 불균형과 마찰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어떤 이들은 한국이 중국 편을 든다는 얘기를 한다. 우리는 특정 세력의 편을 들려는 게 아니라 그 세력들이 조화·화해·협력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이노=한국이 적절한 해답을 찾는 포럼 같은 것을 주도한다는 말일 것이다. 노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이해한다. 문=일부에선 한국이 균형자가 될 만한 국력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규범과 원칙을 만드는 데서 우리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노=그러나 어떻게 구체화하느냐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힘겹게 노력을 해도 별로 나오는 게 없다는 것이다. 문=역사 문제로 넘어가자. 전반적으로 동북아를 볼 때, 국력·이해관계·정체성이라는 세가지 주요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국력과 이해관계의 문제가 발생하면 종종 정체성의 중요성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정체성 문제는 갑작스레 튀어나온다. 국내 정치가 민족주의를 오·남용하면 동북아에서 엄청난 전략적 불균형 상태를 불러온다. 한국과 중국에선 그 출발점이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역사교과서나 영토 문제 등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우익세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노=동의하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은 불행하게도 일본을 둘러싼 역사적 발전에서 기인한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개항했고, 근대화한 나라였다. 일본은 민족주의와 애국심에 기대 서구 주요 열강의 차별을 견뎌냈다. 영국 면제품이 일본을 휩쓸지 못한 것은 일본옷을 고집한 일본인의 애국심 때문이었다. 문=일본이 서구 제국주의의 위협에 맞서 애국주의를 추구한 점은 이해한다. 그런데 왜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로 만들고 만주를 침략했나. 이노=불행한 일이다. 18·9세기 시대정신은 제국주의였다. 제국주의는 미덕이지 죄악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본은 부지런히 서구 열강의 방식을 쫓아갔다. 문=한-일 관계가 매우 나빠졌다. 일본인들은 도대체 몇 번이나 사과를 해야 하느냐고 말한다. 한국의 반응은 일본인들이 이중적이어서, 겉으로 사과는 하지만 이를 증명할 진정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런 시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왜 4년마다 역사교과서 문제가 튀어나오나? 이노=교과서는 정부와 관계없이 완전히 자유롭게 출판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검정을 포기해야 한다. 외국에선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외국에선 극좌와 극우의 교과서가 모두 인정받는다. 그러나 극단적 역사교육이 일본의 학교를 지배하는 게 아니다. 극우 이시하라가 지사로 있는 도쿄에서도 극히 일부가 극단적 교과서를 채택했을 뿐이다. 문=하지만 독일과 일본은 아주 재미있는 대조를 보인다. 빌리 브란트 전 총리를 필두로 독일은 정말 현명하게 진정한 사죄를 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나치 독일을 떨쳐내고 새 독일로 향할 수 있었다. 일본은 왜 못하나. 이노=일본 지도자들도 1945년 8월에 그것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 지도자들은 신속하게, 현명하게 해냈다. 나치 독일의 역사는 끝나고 완전히 새로운 독일의 역사가 시작됐다. 문=일본이 그러지 못한 것은 천황제 때문인가? 이노=그렇다. 문=그렇다면 미국이 근본적 실수를 저지른 것인데. 이노=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무조건 항복을 했지만, 협상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사안을 회복했다. 천황제를 유지했고, 군과 내무부 일부를 제외한 정부 기구들을 온존시켰다. 미국은 그다지 바꾸지 않았고, 거기에 만족했다. 미국 정부는 애초 일본이 매우 목가적인 스위스와 같은 나라가 되기를 바랬다. 냉전 구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신속하게 생각을 바꿨다. 지도자 몇 명을 교수형에 처한 것으로 끝냈다. 문정인 “한·중·일 정상 머리 맞대면 동북아 협력·통합 큰 틀 나올 것” 이노구치 “미국 반감탓 동아시아공동체 관련한 일본 처지는 0℃ 냉장고” 문=또다른 문제는 일본이 조건부 사죄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주변국을 식민지로 삼고 착취한 건 잘못했지만 아시아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다거나, 유대인 학살의 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독일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것들이 진정한 사죄로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이노=그것은 지극히 소수의 터무니없는 말이다. 독일의 접근방법은 이웃에게 기독교식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다. 정부와 출판사들이 좀더 괜찮은 교과서를 만들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북핵 문제와 관련해, 나는 고이즈미 정부가 정말로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다. 이노=나는 그들이 만나는 걸 피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충분히 관여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은 껄끄러운 분위기에서도 뉴욕에서 북한과 매우 자주 접촉해왔다. 부시 대통령이 중요하지만, 그는 많은 행위자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미국 정부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북한과 접촉해왔다. 문=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납치 문제에 집착해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생각한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은 큰 기회였다. 일본은 현안의 우선순위 설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일본이 핵위기 해결에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납치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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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납치문제는 일종의 파생물이었다. 우리는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 협상을 했다. 문=평양선언에 모든 게 명확히 나와 있는데, 왜 고이즈미 정부는 그걸 지키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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