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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8 21:27 수정 : 2005.05.18 21:27

(왼쪽부터) 견익승 모스크바대학 박사과정, 노다리 알렉산드로비치 시모니야 소장



동북아를 묻는다
① 미국 : 찰머스 존슨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일본정책연구소장-장달중 서울대 교수
② 일본 : 이노구치 다카시 주오대 교수 -문정인 동북아시대 위원장
③ 중국 : 왕이저우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소장 -이희옥 한신대 교수
④ 러시아 : 노다리 시모니아 세계경제ㆍ국제관계 연구원 원장- 견익승 모스크바대학 박사 과정

노다리 시모니야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소장과 견익승(모스크바대학 정치학 박사과정)씨의 대담은 지난 11일 오전 모스크바 시내 시모니야 소장의 사무실에서 1시간30여분 동안 진행됐다. 두 사람은 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외교정책에 대한 평가와 함께, 동북아에서의 새질서 모색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시모니야 소장은 부시 행정부가 미국의 전통 노선에서도 탈선했으며, 일본은 협소한 이슈에 매달려 국익을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중국의 실용주의적 태도와, 미국에 당당한 목소리를 내려는 한국의 시도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대담 정리는 견익승씨가 직접 맡았다.

시모니야 “부시 대외정책 탈선 동북아 위기 키워"

견익승 “미국의 군사기지 재편은 사실상 중국 포위정책"

견익승=현재 동북아의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다. 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는 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러시아의 전통적 질문방식으로, 동북아의 위기는 누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나?

시모니야=동북아에서 위기는 항시 존재해 왔다. 화산처럼 잠재되어 있다 한번씩 터져 나오곤 했을 뿐이다. 하지만 북핵 위기로 인해 발발한 현위기의 책임은 우선적으로 조지 부시 미 행정부에 물을 수밖에 없다. 냉전의 유산으로 이 지역에서 강력한 군사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한 수완을 발휘하지 못했다. 남북한간에는 의미 있는 접근이 이루어졌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 클린턴 말기에 위기해결의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클린턴식 접근방식을 부시가 완전히 무시한 채 한동안은 아예 한반도 문제를 다루지도 않다가 불쑥 북한을 비난하는 말을 내뱉곤 했다. 이런 식의 말싸움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상황만 악화시켰다. 사실 북한이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는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남한과의 관계를 훼손시키는 것뿐이다. 미국은 이런 식의 메카니즘을 통해 남북한이 급속히 가까워지는 것을 막는 데 이용했다.


견익승=미국과 부시 행정부를 구분해서 위기의 책임을 부시 행정부에 특정지운 것 같은데…. 다시 말해 우여곡절 끝에 당선된 부시의 등장이라는 우연성을 너무 부각시키는 건 아닌가?

시모니야=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하고 고어가 선거에 이겼다면 아마도 상황은 달려졌고 타협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연성이 작용했다고 보지만, 이미 부시의 공화당이 집권했을 때 그들의 속성상 변화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과거 미국에는 양당체제라는 아주 훌륭한 전통이 있었다. 민주·공화당이 국내문제에 이견이 있더라도 대외정책에선 한 목소리를 냈었다. 내가 아는 한 부시는 처음으로 이런 미국의 대외정책의 원칙을 저버렸다. 이전의 성과를 모두 부정하고 출발했다.

견익승=그렇더라도 공화당이 외교정책분야에 있어서는 보다 전문적이고 역대 공화당 정권에서 외교정책에 성과가 적지 않았다.

견익승/ 경제 불균형 등 복잡한 내정문제 중국 외교의 걸림돌

시모니야/ 다극화체제속 미래 중국의 영향력 의심하는 이 별로 없어

시모니야=물론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러시아로서는 직설적인 부시가 클린턴보다 훨씬 더 편한 상대다. 전 세계에서 부시에 대한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러시아로서는 그렇다. 부시는 미국의 이해를 보다 명확히 ?아가면서도 이를 위해 러시아의 내정에 깊숙이 간섭하지는 않는다. 클린턴은 소위 미국적 스탠다드를 적용함으로써 전환기의 러시아에 어려움을 가중시켰고 내정에 대한 간섭의 정도가 심했다. 부시도 인권문제나 러시아의 민주주의 문제를 거론하지만 이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동북아는 상황이 다르다. 동북아는 아주 민감한 지역이고, 직설적이기보다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지역이다. 그런데 부시는 현재 코끼리가 옹기전을 훼집고 다니듯 동북아에서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견익승= 미국이 동북아에서도 다른 지역에서와 같이 공격적으로 임하고 있지만, 이미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독점적 지위는 도전받고 있다.

시모니야=물론 부시 등장 이전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제 동북아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유일세력은 아니다. 미국의 일방통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걸 미국의 대통령이 이해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라크를 공격하는 우를 범하는 걸로 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이라크 전쟁 실패의 교훈마저도 애써 무시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과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 이외에도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마저도 이런 군사적 해결방식을 원하지 않고 있다. 만약 미국이 동북아에서 무슨 일이 감행한다 해도 그걸로 상황이 종료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으로서는 동북아에서 정상적인 질서를 회복하는 데 이라크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동북아는 북한이 중국, 러시아, 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라크보다 훨씬 더 복잡한 요인들을 가지고 있다.

견익승= 그렇다고 미국이 이 지역에서 고립되어 있다고 볼 수도 없는데,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행동에 제약을 미치는 구체적인 요인들을 거론해 보자.

시모니야=또 다른 요인이 있다. 일본마저도 동북아에서의 경제적 협력관계가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한·중·일의 경제적 유대관계는 표면적 성과 이상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가 점점 더 강력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의 이익뿐 아니라 잠재적 기대이익마저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는 사안을 어느 누가 찬성할 수 있는가?

견익승= 동북아에서의 경제협력의 중요성에 이전과는 다른 전략적 무게중심을 실어준 건 아무래도 중국의 부상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중국의 부상은 동전의 양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적한대로 경제적 유대관계를 강화시켜 안정화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이런 중국의 부상이 경제적인 면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는 미국의 ‘중국 위협론’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 동북아의 안정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시모니야=미국은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을 핑계로 동북아에서 군사적 지위를 강화하고 한국,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누가 보더라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북한을 상대하는 데 무슨 그런 거창한 동맹이 필요한가? 사실은 중국을 경계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런 우려를 전혀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미국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자세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현재 모든 전선에서 중국의 지위가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념이 없다. 유럽연합과 대중국 무기수출 금수 에 관해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은 미국의 반중국적 정책 경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좋은 예이다.

견익승=이 과정에서 미국으로서는 동북아에서의 일본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은데...

시모니야=아마도 일본이 미국보다 중국을 더 두려워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일본 정부는 중국에 대해 개발원조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그동안 공장 세우고 기술전수도 해줬었다. 그러곤 우리에게 중국의 위협을 키우고 있다고 따지고 들고 있다. 우리가 제공하는 비행기나 탱크는 전쟁이 나면 부수면 그만이지만, 그들이 제공해준 기술은 이런 무기를 재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과연 누가 중국의 위협을 키우는데 더 일조한 것인가?

견익승=현재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해외군사기지 재편 등이 모두 중국을 겨냥한 사실상의 대중국 포위정책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시모니야=지금은 중국도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과정이고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노력도 점증해가는 과정이다. 사실상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의 제 1의 우려사항이 중국임은 명백하다. 나는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의 최우선순위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걸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이 구호를 이용해 자신들의 여러 지정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려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는 테러와는 상관없는 지역이다.

견익승=미국이 군사적 개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테러 그리고 북한까지 여러 종류의 위협들을 활용하고 있다지만, 이 위협들을 과대포장하는 이념적 배경을 제공해준 네오콘이 이라크 전쟁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미국에서 그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들도 있다.

시모니야=그래도 근본적인 변화의 기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제 1기와 2기 부시 행정부 간에 사소한 전술의 변화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그보다는 현실인식이 좀 나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취기에서 약간 깨어나는 것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면 현재 미국이 다른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진술들이 나오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완전히 발이 묶여있는 상황이다.

견익승=현재로서는 미국의 능력상 북한에 대한 무력사용 시나리오의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시모니야=나는 북한과의 전쟁은 없을 것으로 확신하는 것 이상이다. 거기는 아랍의 사막이 아니다. 산악지대인데다 비행기나 탱크는 말할 것도 없고 군함까지 지하갱도에 숨겨져 있는 곳이다. 게다가 북한군인들은 아랍군인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보다 인내력이 강하고 이념적으로 잘 훈련된 상태다. 이라크에서처럼 곧바로 항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전쟁은 늘어질 것이고 이는 미국으로서는 죽음을 의미한다.

견익승=중국으로 넘어가보자. 중국은 내정문제가 복잡하다. 정확하게 알려지고 있지는 않지만, 지역간 경제적 격차에 따른 소요사태도 적지 않고 일본의 역사왜곡에서 비롯된 민족감정의 분출도 정도를 넘어설 수 있다. 여기에다 민주화에 대한 요구까지 겹쳐진다면 중국정부는 사면초가일 수 있지 않는가? 이로 인해 차분히 대외정책에 집중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면 대외영향력 측면에서 중국의 부상은 생각보다 먼 미래의 일이 될 수 있다.

시모니야=중국이 그 규모에 어울리게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재주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줘 왔다.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문제를 성공적으로 축소시키고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전환과정을 겪은 러시아인의 입장에서 특히 중국이 국영기업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관심있게 지켜봐왔다. 그들은 세 차례에 걸쳐 사업의 시작과 중단을 반복했다. 결국 사적 영역과의 공존을 어느 정도 해결했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사실상 자본주의체제하에서 성장한 세대이다. 민족주의의 발흥과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자본주의 발전 초기단계에서 어디에서나 보여주는 수준 그 정도이다.

견익승=중국은 러시아가 주창하는 세계의 다극화체제 질서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로 알려져 있다. 후진타오의 ‘화평굴기론’과 연결시켜 중국이 이해하는 다극화체제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시모니야=우리 연구소에도 유일 강대국의 단극체체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난 세계가 2차대전 이후 긴 과정을 거쳐 다극화체제를 형성해왔다고 생각하며, 여러 객관적 증거들도 있다. 현재로선 유럽과 중국의 존재만으로도 이를 정당화할 수 있다. 게다가 유럽도 통합의 첫삽을 뗀 데 불과하며 중국이 미래의 영향력의 중심이 될 거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다극화체제를 선호한다든지 하는 문제와는 다른 것이다.

견익승=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중국은 패권의욕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당분간은 서방의 도움에 편승한 경제성장에 매진한다는 다소 소박한 전략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중국위협론은 여전히 건재한다고 생각한다.

시모니야=중국 지도부의 전략은 상당히 실용주의적이다. 패권은 경제를 위해서도 필요치 않다. 중국은 패권국가가 되기보다는 실질적인 의미에서 위대한 강대국이 될 것이다. 동남아에서의 화교의 팽창도 패권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 중국인들의 실용주의적 진출의 산물이다. 중국의 황제는 동남아로의 이주와 교역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실용을 ?아 그곳에 화교의 뿌리를 내리고 결국 그 지역의 경제력을 장악했다. 대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동안 대만이 중국경제에 돈을 쏟아 붇게 만들었다. 마치 깔때기에 물을 붓는 것처럼 정확하게 방향을 잡고 다른 데로 새지도 않게 유인한 것이다. 결국 대만이 중국 없이 경제력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견익승= 그럼에도 여전히 중국정부의 대만에 대한 입장은 강경하고 양안관계는 동북아의 불안요인 중 하나이다.

시모니야=여기에는 중국과 대만뿐 아니라 미국이라는 변수가 끼어있다. 미국은 대만을 대중국 압박수단으로 이용해왔다. 미국이 대만을 지렛대로 중국을 계속 자극한다면, 중국변수가 동북아의 불안정 요인이 될 수 있다.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 대만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묘수를 발견해냈다. 대만의 독립추구에 대응해 반대파인 국민당 지도부를 불러들인 것이다. 이건 생각 밖의 성공을 거둔 사례다. 현재 대만 국민의 70%가 국민당과 중국과의 관계호전을 지지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중국은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능력이 있다.

견익승= 일본은 동북아에서의 미국 이익의 가장 강력한 대변자이다. 이런 미국 대외정책의 충실한 추종자 역할에 대한 반대급부로 일본은 이른바 ‘보통국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군국주의적 과거를 기억하는 이웃들에게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다.

시모니야=일본의 불행은 한편으로는 ‘보통국가’가 되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에의 복종을 강화하려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모순적인 태도이다. 도대체 다른 나라의 우산 아래 자발적으로 앉아있는 나라를 어떤 나라들이 존경할 수 있겠나? 블레어를 부시의 푸들이라고 조롱하곤 한다. 실제로 영국 친구들을 만나면 노동당 지지자들도 같이 비웃곤 한다. 일본의 경우는 블레어 하나가 아니라 나라 전체가 해당된다. 게다가 자신들의 이익도 아닌 미국의 이익을 ‘격렬하게’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견익승=아직까지 일본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하지만 일본으로서는 이를 단계적인 접근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겠나. 우선 미국을 이용해서 보통국가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것 아닌가?

시모니야=도대체 언제까지 미국의 우산이 필요하단 말인가. 2차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지났다. 한국의 경우를 보라. 미국이 한국에 대해 일본보다 못해준 게 없다. 그러나 한국은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가고 있다. 끝없이 미국에 매달리지만은 않겠다는 것 아닌가? 일본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면서도 올바르게 처신하고 있지 못하다.

견익승=미일동맹의 확대 및 강화의 주목적이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응적 성격이 강하다고 앞서 잠시 언급했었다. 여기에다 일본이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완벽한 대리인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 외형상의 전선은 중-일 간에 형성되게 된다. 미-중간의 패권경쟁의 시험대로서 동북아에서의 중-일간의 패권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아닌가?

시모니야=물론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대립은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세기 유럽에서 전쟁이 터졌을 때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세계대전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중국과 일본이 맞붙는다면 이것도 곧바로 세계대전으로 치부할 수 있을 정도로 동북아는 세계의 힘이 집중되어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대로 중국은 최소 10년 내지 15년 그 이상을 경제문제에 집중하고 싶어한다. 자신들의 내부문제를 다스리고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진행시켜 나가는 데 있어 일본과의 충돌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분간 중국 입장에서 패권추구전략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견익승=방금전 ‘격렬하게’란 표현을 썼는데 정책의 방향뿐만 아니라 일본의 대외정책 수행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시모니야=6자회담의 초기를 돌이켜보자. 처음에는 평화협정도 거론되고 적극적이었다. 그러다 납치문제가 불거지자 태도가 돌변했다. 물론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차례에 걸쳐 나는 일본친구들에게 6자회담의 우선순위를 설명하고 문제를 크게 볼 것을 충고했지만, 협소한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일본은 6자회담에서 부정적 요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견익승=지금 일본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영토문제나 역사왜곡 문제 등으로 이웃나라와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이다. 이에 비해 러시아와 중국의 경우 조용한 외교를 통해 최근 영토분쟁을 완전히 종속시키는 모범을 보였다. 일본과의 영토문제의 경우 러시아도 당사자로서의 입장이 있을 텐데….

시모니야=한마디로 현명한 접근방식이 아니다. 난 이 문제도 일본이 미국의 보호 하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세계 제2의 경제를 건설했지만 국제정치무대에서 오랫동안 제한된 영역의 문제만 다루다보니 정말이지 보통국가로서의 처신을 잊어버린 것 같다. 한때 마오쩌뚱은 시베리아의 4분의 1을 중국영토로 주장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상호 타협점을 찾았다. 그런데 일본은 56년 결정대로 두개 섬을 반환하겠다는 제안을 거부하고 4개섬을 고집하다가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문제를 그르치고 말았다. 러시아가 중국과의 관계소원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렵게 결정한 게 나호트카 노선이었다. 그런데 이를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다시 한번 일본의 협소한 접근방식을 문제 삼는 것이다.

시모니야
“북핵 해법은 북-미 합의에 달려 지역안보체제도 6자 틀안 가능”

견익승 “6자회담 성공에 합당한 균형자는 러시아 아닌가”



견익승=견원지간이었던 미국과 유엔이 유엔개혁이라는 동상이몽의 와중에서 일본의 안보리 진출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냈다. 러시아 역시 유엔개혁의 적극적 지지자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과의 현안이나 중국의 반대를 고려해야 할 것 같은데 이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어떻나?

시모니야=유엔개혁의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개혁 없이 이 조직이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지 않는다. 현재 러시아는 독일과 인도의 안보리 진출에는 지지의사를 밝혔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아직 입장표명을 하지 않은 상태다. 주변국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견익승=얼마 전 한국의 대통령이 동북아에서의 한국의 역할을 ‘균형자’로 위치지웠다. 아직 완전히 정형화된 구상은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군사, 정치적인 문제까지 무한정 확대된 개념은 아니다. 이런 구상의 실현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시모니야=한국으로서는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약간은 어려운 과제이다. 우선 이런 역할을 자임하는 세력들이 한국 이외에도 많이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일단은 제안으로서의 가치는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걸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한국에 달려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한국이 중재자로 역할하는 것을 원할지에 대한 중국의 반응도 고려해봐야 한다. 아마도 중재자 없는 직접적인 문제해결을 원할 것으로 보인다.

견익승= 국내에서도 논란은 많다. 이는 아마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혹은 오히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균형자의 역할을 모색한다는데 대해 쉽게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시모니야=한국의 대통령이 우리의 대외정책상의 목표가 미국과의 보다 평등한 관계개선에 있다고 했을 때는 미국에 대해 사실상 비판을 가한 것이다.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조하는 입장이다.

견익승=한국의 균형자적 역할이 국가간의 소프트 파워적인 영역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하드파워적 영역에서 가장 합당한 균형자의 역할의 후보자는 바로 러시아가 아닌가? 또한 6자회담의 성공에 대한 러시아의 열의가 대단한데….

시모니야=우리도 한때 굉장한 실수를 한 적이 있다. 한국과의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완전히 망쳐버림으로서 중재자의 역할을 상실했던 적이 있다. 중재자란 양쪽 모두에 출구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한쪽만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한국과의 관계도 냉각됐는데 북핵문제에 도움을 바랐던 한국으로서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자연히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은 푸틴 정부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제 러시아는 모든 이웃국가들과 균형 잡힌 선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 6자회담에 기꺼이 참여했다. 나는 6회담의 초기부터 이 회담의 북핵문제해결의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했었다. 6자회담의 틀 내에서 북미가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양자간 합의가 없으면 6자회담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미국이 협상테이블에 앉아 북한에 대해 불가침을 약속하고 다른 나라들은 경제재건에 대한 원조를 약속하면, 6자회담의 틀은 이 합의의 이행을 보증하며 그 합의 이행과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하면 이 6자회담의 성과 위에 보다 쉽게 이 지역에서의 미래의 지역안보체제를 준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모니야/ ‘보통국가’ 꿈꾸며 미국 우산에 안주 그것이 일본의 불행

견익승/ 중국 부상 견제, 미-중 패권경쟁 앞서 중-일 경쟁격화 우려

견익승=북한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갑작스런 북한 붕괴론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시모니야=북한의 개방을 경제체제의 성격변화를 꾀하고 있는 한국의 정책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통일을 염두에 둔다면 두 경제체제가 공존할 수 있을 정도의 성격 변화는 이룩되고 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상당히 긴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갑작스러운 북한체제 붕괴에 대해 난 믿지 않은 편이다. 내 스스로 전체주의 국가에서 살았었고 중국과 베트남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아왔다. 왜 북한에 베트남식 방식이 적용되지 않으리라고 보는가? 이미 북한에도 개혁이 시작되었고 약간식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개혁의 첫발은 뗀 것이다. 만약 김정일 정권이 개혁을 시작하는 이 가장 위험한 시기를 극복하고 중국도 해낸, 베트남도 해낸 개혁의 길을 간다면 북한체제는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견익승=사실 러시아에서는 동북아를 아태지역이라는 보다 큰 틀 속에서만 봐왔고, 독립적인 지역질서로서의 이해가 부족했다. 러시아에 정형화된 동북아 외교정책이 존재하는가?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

시모니야=무엇보다도 러시아의 극동이 동북아 제국가들과 경제적 유대관계를 확대하고 이지역에 통합되고 이로 인해 러시아 전체가 아태지역과의 통합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옐친 정부 시절의 서구지향적인 일면적 정책의 여파로 그동안 동시베리아와 극동은 사실상 버림받은 지역이었다. 러시아의 영토적 통일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라도 이 지역은 우리에겐 생명처럼 소중한 지역이다. 여기에 동시베리와의 극동의 러시아 인구는 1600만명을 넘지 않는다. 인구문제도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견익승=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해서 동북아에서의 협력강화와 새로운 질서확립에 대한 전망으로 대화를 정리해 보자. 동북아에서의 협력강화에 있어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이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모니야=그런 관점에서 러시아는 특히 한반도에 관심이 많다. 최근 몇 년동안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 건설에 대한 논의도 있어왔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내자신 스스로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면서 강조해왔다. 한반도 전체적으로도 이익이 적지 않고, 러시아는 동북아와 유럽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되는 윈윈전략인 셈이다.

견익승=앞서 6자회담의 지역안보체제로서의 발전가능성에 대해 언급했었다.

시모니야=우선 난 아주 신중한 낙관론자이다. 이 지역의 지도자들이 현실주의적 인식을 갖고 이 어려운 협상에서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6자회담의 지역안보체제로서의 발전가능성에 대해서는 6자회담이 성공적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이 경우 6자회담의 경험이 지역안보체제로의 발전의 첫걸음이 될 것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있다. <끝> kismos@intizen.com


노다리 알렉산드로비치 시모니야 소장
-1932년 그루지야공화국 출생.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MGIMO) 국제관계학 및 경제학 박사.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부소장(1988∼2000),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 소장(2000∼현). 러시아 안보위원회 학술자문위원(1994∼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1997∼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최고위원회 위원(1998∼현). 미국과 일본의 대학에서 교환교수. 주요 연구영역은 제3세계의 정치경제체제 문제.

견익승 모스크바대학 박사과정
- 1965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대학원 졸업. 모스크바대학 정치학 박사과정. 2005년 ‘대외경제변수가 러시아 국내정치에 미치는 영향’으로 박사학위 예정. 논문 및 저서 : ‘IMF와 냉전의 경제적 종식’ ‘국제금융질서 개혁과 러시아의 이해관계’ <시베리아기행>(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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