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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조사활동 중간보고와 사건조사에 관한 설명회’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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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지않는 의문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납치·살해 사건에 대한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의 26일 중간 조사결과 발표에선 미흡한 대목과 풀어야 할 숙제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범행에 가담한 ‘당사자’ 한 사람의 진술에 주로 의존하고, 진술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나 다른 진술이 제시되지 않은 탓이다. ◇ 주검은 어디에?=과거사위는 김 전 부장이 살해돼 버려진 장소를 아직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했다. 당시 김 전 부장의 납치·살해를 주도한 중정 요원 신현진(가명)씨는 과거사위 조사에서 자신이 고용한 동유럽계 살인청부업자 2명이 “프랑스 파리 교외의, 길가에 가로등이 켜져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 인적이 드물고 작은 숲이 내리막 방향으로 이어진 장소”에 차를 세운 뒤, 김 전 부장을 끌고 가 “도로 오른쪽 숲 속 50m 지점”에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신씨는 김 전 부장을 살해하는 ‘현장’에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납치·살해에 직접 관여한 유일한 중정 요원이 구체적인 살해 장소를 모르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과거사위가 신씨를 데리고 프랑스로 현장검증을 간다 해도, 26년 전의 막연한 기억을 토대로 문제의 장소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씨는 살해 계획을 세울 때 파리 근교의 오래된 성(샤토)를 빌려 김 전 부장을 살해한 뒤 매장할 궁리를 했지만, 실제 이들 살인청부업자는 김 전 부장의 주검 위에 낙엽을 덮은 뒤 현장을 떠난 것으로 국정원 조사결과 나타났다. 하지만 저녁이고, 인적이 뜸한 곳이어서 서둘러 떠날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데도 매장을 하지 않는 등 ‘뒤처리’를 허술하게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김 전 부장이 살해된 뒤 오랫동안 주검이 발견되지 않은 점도 의문을 갖게 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인적이 드문 교외라 하더라도, 낙엽으로 대충 덮을 경우 암매장보다 주검의 발견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에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 김재규 전 중정부장이 지시했나?=과거사위는 김재규 전 부장이 범행을 지시한 유력한 근거로, 사건 발생 직전인 1979년 9월 말 신현진(가명)씨가 이상열 당시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 공사한테서 “김재규 부장의 지시다”라고 들은 대목을 꼽고 있다. 또 신씨가 사건 뒤 급히 귀국했다가 국내 주요 부서에 배치되고, 김재규 전 부장한테서 특별포상을 받은 점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10·26 사건에서 김재규 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는 “10·26 뒤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김재규 부장을 ‘역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문까지 했는데, 범행 지시가 사실이라면 그때 왜 밝혀내지 못했겠느냐”며 “김재규 부장의 지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디까지 개입했나?=박 전 대통령이 김형욱 전 부장의 제거를 지시했는지, 혹은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사후보고를 받았는지, 아니면 직접 연관이 없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이 문제는 김형욱 사건에서 밝혀내야 할 ‘총체적 진실’의 정점에 해당한다. 과거사위는 이날 발표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부장의 ‘반국가행위 처리’ 문제에 깊이 관여한 사실은 드러났지만, 살해를 직접 지시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과거사위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도 없다”며 “이는 규명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양계장…사우디…폐차장…설로 드러난 설 국정원 과거사위의 26일 김형욱 살해사건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그동안 김형욱 실종에 관한 다양한 소문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국 여자 연예인이 김형욱 유인에 동원됐다는 설에 대해서도 이들의 개입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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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랑스 외교 문제 비화할까? 정부는 26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납치·살해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외교경로를 통해 프랑스 정부에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사과했다. 당시 사건에 파리 주재 한국대사관 공사를 비롯해 중앙정보부원들이 깊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스 정부가 문제삼을 경우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프랑스 정부는 일단 정부의 설명에 이해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6년 전에 발생한 사건인데다 범인들을 처벌할 수 있는 공소시효(10년)가 이미 지났다는 현실적 이유와 함께, 정부의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의미를 높이 산 것 같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프랑스 정부가 사건 당시의 정부와 지금의 정부가 다르다는 점을 심사숙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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