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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6 18:53 수정 : 2005.05.26 18:53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조사활동 중간보고와 사건조사에 관한 설명회’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가시지않는 의문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납치·살해 사건에 대한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의 26일 중간 조사결과 발표에선 미흡한 대목과 풀어야 할 숙제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범행에 가담한 ‘당사자’ 한 사람의 진술에 주로 의존하고, 진술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나 다른 진술이 제시되지 않은 탓이다.

◇ 주검은 어디에?=과거사위는 김 전 부장이 살해돼 버려진 장소를 아직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했다. 당시 김 전 부장의 납치·살해를 주도한 중정 요원 신현진(가명)씨는 과거사위 조사에서 자신이 고용한 동유럽계 살인청부업자 2명이 “프랑스 파리 교외의, 길가에 가로등이 켜져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 인적이 드물고 작은 숲이 내리막 방향으로 이어진 장소”에 차를 세운 뒤, 김 전 부장을 끌고 가 “도로 오른쪽 숲 속 50m 지점”에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신씨는 김 전 부장을 살해하는 ‘현장’에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납치·살해에 직접 관여한 유일한 중정 요원이 구체적인 살해 장소를 모르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과거사위가 신씨를 데리고 프랑스로 현장검증을 간다 해도, 26년 전의 막연한 기억을 토대로 문제의 장소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씨는 살해 계획을 세울 때 파리 근교의 오래된 성(샤토)를 빌려 김 전 부장을 살해한 뒤 매장할 궁리를 했지만, 실제 이들 살인청부업자는 김 전 부장의 주검 위에 낙엽을 덮은 뒤 현장을 떠난 것으로 국정원 조사결과 나타났다. 하지만 저녁이고, 인적이 뜸한 곳이어서 서둘러 떠날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데도 매장을 하지 않는 등 ‘뒤처리’를 허술하게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김 전 부장이 살해된 뒤 오랫동안 주검이 발견되지 않은 점도 의문을 갖게 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인적이 드문 교외라 하더라도, 낙엽으로 대충 덮을 경우 암매장보다 주검의 발견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에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 김재규 전 중정부장이 지시했나?=과거사위는 김재규 전 부장이 범행을 지시한 유력한 근거로, 사건 발생 직전인 1979년 9월 말 신현진(가명)씨가 이상열 당시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 공사한테서 “김재규 부장의 지시다”라고 들은 대목을 꼽고 있다. 또 신씨가 사건 뒤 급히 귀국했다가 국내 주요 부서에 배치되고, 김재규 전 부장한테서 특별포상을 받은 점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10·26 사건에서 김재규 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는 “10·26 뒤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김재규 부장을 ‘역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문까지 했는데, 범행 지시가 사실이라면 그때 왜 밝혀내지 못했겠느냐”며 “김재규 부장의 지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디까지 개입했나?=박 전 대통령이 김형욱 전 부장의 제거를 지시했는지, 혹은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사후보고를 받았는지, 아니면 직접 연관이 없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이 문제는 김형욱 사건에서 밝혀내야 할 ‘총체적 진실’의 정점에 해당한다.

과거사위는 이날 발표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부장의 ‘반국가행위 처리’ 문제에 깊이 관여한 사실은 드러났지만, 살해를 직접 지시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과거사위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도 없다”며 “이는 규명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양계장…사우디…폐차장…설로 드러난 설

국정원 과거사위의 26일 김형욱 살해사건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그동안 김형욱 실종에 관한 다양한 소문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국 여자 연예인이 김형욱 유인에 동원됐다는 설에 대해서도 이들의 개입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 양계장 살해설 = 올해 초 <시사저널>이 보도한 ‘양계장 살해설’은 그동안 숱하게 제기된 김형욱 살해설 가운데서도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시사저널은 당시 중앙정보부 소속 비선 조직원이었다는 이아무개씨의 증언을 통해, 김형욱은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납치된 뒤 파리 근교 양계장에서 사료 분쇄기에 넣어져 살해당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과거사위 관계자는 이날 “철저하게 조사한 결과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상세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지만 국정원 공작원이었던 그가 국정원에 뭘 원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의 설명에 따르면 국정원 조직은 다 빠져 있다”고 말했다.

◇ 사우디아라비아 출국설 = 1980년 2월29일 미국이 주한 미대사관에 보낸 ‘주간 동향 보고서 한국판’에 “김(전 중앙정보부장)은 한국인 남성 한 명과 10월9일 파리를 떠나 스위스 취리히를 거쳐 사우디아라비아 다란으로 간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행적이 묘연하다”라는 내용이 발견된 데 따른 설이다. 과거사위 쪽은 이에 대해 “출입국 관리 기록은 물론이고 항공사 자료 등 협조 위해 노력했으나 사우디로 출국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고, 우리가 파악한 정황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이 정보는 잘못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 국내 납치 살해설 = 재미 언론인 문명자씨는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이란 책에서 정일권 전 총리의 입을 빌어 “김형욱이 경복궁에서 청와대로 이어지는 지하 벙커를 통해 박정희 앞에 끌려갔고 ‘잘못했습니다. 죽여 주십시오’라고 빌었으나 폐차장 압착기 아래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썼다. 그 외에도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실에서 직접 권총으로 김형욱을 살해했다는 소문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형섭 유선희 기자 sublee@hani.co.kr



한국-프랑스 외교 문제 비화할까?

정부는 26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납치·살해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외교경로를 통해 프랑스 정부에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사과했다. 당시 사건에 파리 주재 한국대사관 공사를 비롯해 중앙정보부원들이 깊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스 정부가 문제삼을 경우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프랑스 정부는 일단 정부의 설명에 이해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6년 전에 발생한 사건인데다 범인들을 처벌할 수 있는 공소시효(10년)가 이미 지났다는 현실적 이유와 함께, 정부의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의미를 높이 산 것 같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프랑스 정부가 사건 당시의 정부와 지금의 정부가 다르다는 점을 심사숙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완전한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프랑스 정부는 한국에서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최종 입장 표명을 미룬 상태”라며 “인권 문제에 민감한 프랑스 여론이 이 사건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기 시작하면 프랑스 정부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여론의 향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사건은 1973년 8월8일 일본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 사건’과 외형상 비슷한 구석이 있다. 김대중 납치 사건 때도 당시 도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중앙정보부원이 개입했다. 일본 정부는 사건 현장에서 이 요원의 지문을 채취하고, 한국 정부에 신병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며 외교적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 정권은 이 요구를 묵살하고 이 요원을 해고한 뒤 일방적으로 사건 종결을 선언했다.

이 점에서 뒤늦게나마 사건을 조사해 그 내용을 프랑스 정부에 미리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정부의 태도는 당시와 구별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프랑스 정부도 한국 정부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한나라당 “중간발표는 국면전환용”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위원회가 26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의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에 대해, 여야 각 당이 크게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국정원의 중간 발표는 초법적인 발상이며, 국회의 권한 침해”라고 반발했다.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과거사법)의 여야 실무협상을 담당했던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형욱 사건 등 국정원의 조사대상 7대 사건은 모두 과거사법의 진실규명 범위에 포함된다”며 “국정원이 그 일부를 먼저 조사해 과거사법을 무용지물로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국정원 발표는, 조사 뒤 확정된 사실만을 발표하도록 한 과거사법 취지에도 어긋난다”며 “과거사법이 아직 시행되지 않았더라도, 일반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나 명예훼손 등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의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도 “평소에 비밀행정을 신조로 여기는 국정원이 과거사를 자체 조사해 공개하는 것은 과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정원의 발표가 철도청의 유전개발, 행담도 개발 등의 의혹을 잠재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일부 시각과 관련해, “현 정권이 이슈를 이슈로 덮는 식으로 한다면 전형적인 정치공작”이라고 말했다.

반면, 오영식 열린우리당 공보부대표는 구두논평을 통해 “뒤늦게라도 국정원 조사를 통해 그동안 수많은 소문이 얽혀있던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성과”라고 긍정 평가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오해 받을 소지가 크다’는 한나라당 지적에 대해, “특정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의 의미를 훼손하는 태도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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