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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이 민주당 업으면’ 최대변수
“말로만 개혁 개혁하지 말고, 힘을 갖고 좀 거시기 해 불던지….” 11일 오후 4시께, 광주 남구 광주공원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한담하던 택시 기사 예닐곱명의 대화판에 끼어 들었다. ‘말할 게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끝에 입을 연 40대 후반의 택시 기사 표만억씨는 “열린우리당을 그만큼 팍팍 밀어줬으면 확실히 해야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호남지역 잘해달라고 표 준 것은 아니다”고 말하면서도, ‘호남고속철도 불가’ 발언 등에 대해선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17년째 택시를 해온 김용희(53)씨도 “손님들도 현 정권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낮아졌더라”고 말했다. 김씨가 “경제는 누가 대통령을 해도 마찬가지”라며 “이 정권이 잘한 것도 있고, 못 한 것도 있다”고 ‘역성’을 들었다. 그러자 조금 멀찍이 서있던 50대 후반의 택시기사가 “‘열린우리당 인자(이제) 끝’, 요 한마디면 돼”라고 김씨의 말에 쇄기를 박았다.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은 이 지역에서 이미 널리 퍼져있다. 전남 고흥군 포두면 간척지 3만5천평에서 농사를 짓는 박노영(40)씨는 “사심없이 나라를 위해 일하는 정치인이 어디 있느냐”며 “열린우리당이고 민주당이고 정치인들은 자신들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더라”고 말했다. 여수에서 가두리 양식장을 하는 어민 박동천(56)씨는 “어느 당이든 말로만 서민을 위해 일한다고 말할 뿐, 당리당략에 따라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런 실망감은 곧바로 지방정가의 판도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특히 여당인 열린우리당 지지층의 동요가 심하다. 전남 나주·화순에서 무소속으로 당선한 최인기 의원이 지난달 말 열린우리당 대신 민주당을 선택한 것이라든지, 열린우리당 당적을 가진 이 지역 기초자치단체장 7명 가운데 1명이 탈당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는 지역 민심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지난해 5월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던 전경태 구례군수는 1년만인 지난달 ‘민주당 복당원서’를 썼다. 전남도의회의 한 무소속 의원도 최근 민주당에 입당했고, 열린우리당을 택했던 한 무소속 출신 도의원도 다시 탈당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들어 광주·전남 지역언론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의 지지율 회복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신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완만하게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이후 모두 민주당이 이긴 전남지역 5개 단체장 재·보선의 평균 득표율은 민주당 53.7%, 열린우리당 33.5%였다. 2004년 17대 총선의 이 지역 득표율은 열린우리당 46.8%, 민주당 38.4%였다. %%990002%%
광주·전남지역 민심의 변화에 대해, 지역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의 자업자득”이라고 진단했다. ‘호남 홀대론’이나 ‘호남 신소외론’이 작용한 탓이라기보다,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 상실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길을 가다가 ‘지갑’(의원 배지)을 주웠다는 사실을 잊고 자만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김종익 목포경실련 사무국장은 “열린우리당과 정부의 정체성이 모호한 데다, 정치적으로 상황을 돌파할 능력이 없어 무능한 것으로 비치고 있다”며 “실용이니 개혁이니 부질없는 논쟁을 하지 말고 서민을 위한 정책 개발에 골몰해야 한다”고 말했다. 순천 동부지역사회연구소 서희원 이사장도 “현 정부가 정책을 내놓고도 항상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탓에 국정운영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광주·전남 유권자들이 아직 뚜렷한 대안 정치세력을 찾은 것 같지는 않다. 지역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최근 민주당의 상승세는 열린우리당 지지율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이 지역에서 고건 전 국무총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최근 기독교방송 광주방송이 조사한 광주·전남 지역민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고 전 총리가 1위(25.7%)를 차지했다. 지역 정치권에서도 “민주당이 인기가 없지만 만약 고 전 총리가 민주당을 등에 업으면 지역 민심이 한 순간에 쏠릴 수 있다”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오가고 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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