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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6 17:15 수정 : 2005.07.16 09:36

김승규 국가정보원장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출석을 요구받았던 10명의 증인.참고인 중 6명이 불참한 가운데 출석한 장유식(오른쪽)변호사 등 참고인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인턴기자가 뛰어든 세상]
2005년 대한민국 국회는 아직 20세기
냉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1980년대, 몇 년의 시간차를 두고 비슷한 공간에 두 사람이 있었다.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58)과 1993년 ‘남매 간첩단 사건’의 주인공인 김은주(36)씨. 권 의원은 83년부터 87년까지 일본 쓰쿠바대 박사과정(도시사회학)을 이수했다. 김씨는 89년부터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기 직전까지 10여차례 일본을 오가며 시민사회단체의 통역을 돕는 등의 활동을 했다. 10여년이 흐른 뒤 꿈 많았던 일본 유학생은 국회의원이 됐다. 김씨는 지금도 간첩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산다.

좀처럼 만나기 힘들 것 같았던 두 사람이 자리를 함께했다. 5일 국회에서 열린 김승규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 청문회장. 국정원장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인지라 어찌보면 ‘곁가지’인 김씨의 진술은 언론의 주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턴기자의 눈엔 2005년 국회에 짙게 드리워진 20세기의 그늘들, 1980년대 냉전의식 잔재와 그로 인한 상처를 볼 수 있었던 인상적인 자리였다.

남매간첩단 사건 김은주씨 “재일 한통련에 <한겨레> <말> 건넨 것도 국가기밀누설”


김씨를 참고인으로 요청한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김씨 남매가 옛 안기부 시절,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에 의해 조작된 간첩사건의 피해자임을 드러내려 애썼다. 임 의원의 질문에 김씨는 “한통련(한국민주통일연맹) 인사들에게 <한겨레>와 <말>지를 건넨 행위가 국가기밀누설 혐의로 기소 내용에 포함될 정도였다. 결국 안기부의 지시를 받은 프락치가 이 사건이 조작된 것임을 양심선언했고, 권영해 전 안기부장도 그와 안기부의 연관성을 시인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이어 “옷을 다 벗기고 군복을 갈아입게 한 뒤 때리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며 “당시 오빠는 너무 많이 맞아 꼬리뼈가 부러졌다”고 말했다. 또, “대낮에 강제연행된 기억 때문에 아직도 오토바이가 스쳐 지나가면 깜짝 놀란다”고 덧붙였다.

일본유학 권철현 의원 “난 치마저고리만 봐도 피해다녔다” 의심 눈길

▲ 청문회 시작에 앞서 동료의원과 대책을 논의하는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 황석주 기자

그런데 질의자가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으로 바뀌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권 의원은 “나도 일본에서 공부했는데, 지하철에서 검은 치마저고리만 봐도 피해다녔다”고 자신의 일본 유학 경험을 전했다. 자신의 경험담은 김씨를 의심하는 복선이었다. 자신은 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 계열 여학생들과 접촉을 피할 정도로 조심했는데, 무턱대고 아무나 만나고 돌아다녔으니 안기부의 의심을 산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현재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인 권 의원은 “행여 의심 받을까봐 그 쪽(한통련 등 해외 인사) 사람들은 만날 엄두를 못냈는데, 그들을 왜 만났느냐”고도 했다.

김씨는 “일본에서 한국 동포로서 자부심을 갖고 사는 분들이어서, 그저 사람이 좋아서 만났을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런 ‘순박한’ 답변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의심하며 자기검열에 시달려야 했던 80년대 유학생 청년 권철현의 맘에 가닿지는 못한 것 같았다. 권 의원은 “어떻게 고졸 여학생이”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무슨 돈으로”, “무슨 목적으로”, “왜 그리 자주” 등의 질문을 이어갔다.

권 의원의 질문은 곧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그는 “대학생이나 노동자들이면 몰라도 남매를 간첩으로 몰아서 정권이 무슨 실익을 얻었겠느냐”고 물었다. 1996년 신한국당 의원으로 국회에 첫 발을 내딛은 권 의원 처지에서는, 당시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안기부가 간첩사건을 조작했을 리 없다는 확신에 차있는 듯 했다. 김씨는 “1993년 안기부법이 개정돼 위상이 축소될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직도 간첩이 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었다”고 답했다. 권 의원은 질의를 마치면서 “(김씨의) 오해를 받을 만한 요소들이 고리가 됐나 보다. ‘조작됐다면’ 과거사 진상규명을 통해 누명을 벗고 보상받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남매간첩단사건은 1993년 일본에서 북한 간첩에 포섭돼 공작금을 지원받아 활동한 혐의로 ‘반전평화운동연합’ 연구위원 김삼석(당시 28살)씨와 동생 은주(당시 24살)씨를 안기부가 구속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지난해말 출범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조사할 100대 사건에는 포함돼 있으나, ‘김형욱 사건’ ‘대한항공 폭파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에 순위가 밀려있는 상태다. 21세기에 살고는 있지만, 반공과 반북이라는 냉전시대의 잔존물과 상처들은 세기를 넘어 국회 안에서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연주 하어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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