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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3 10:55 수정 : 2005.07.13 14:27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 이종찬기자 rhee@hani.co.kr

‘11월 APEC 테러설’에 숨어 있는 무슬림 차별과 마녀사냥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알카에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한국의 테러 ‘타깃설’을 언급했다.

정 의원은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국제테러의 다음 목표는 한국?’이라는 글을 통해 “미국, 영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에 주둔시키고 있는 한국이 다음 테러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국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철저한 대책을 촉구했다. 런던 테러 이후 한국에 대한 테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보통으로 알려진 정 의원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그러나, 정 의원이 한국 타깃설의 근거로 제시한 나라 안팎의 여러 정황들에는 한국에 들어온 무슬림들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낙인찍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정 의원이 반한 이슬람단체라고 규정한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는 반한 혐의를 이미 벗은 단체여서, 정 의원이 한국 타깃설의 근거를 들이대려고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서슴없이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 의원은 한국 타깃설의 근거로 다음의 여섯가지를 들었다.

첫째, 2004.10.1 알카에다의 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알자지라 위성 TV를 통해 “우리는 미국·영국·프랑스·이스라엘·한국·호주·일본·폴란드 군대가 이집트와 아라비아 반도, 예멘이나 알제리아를 침공하기 전에 지금 오늘 반격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는 점.

둘째, 2004.4.15 빈라덴이 직접 영국 등 유럽 국가의 철군을 요구하며 ‘유럽 국가와의 성전’을 주장한 바 있는데 그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에 맞추어 테러를 자행 한 것에 비추어 우리나라도 지난해 10월 알 카에다가 직접적 테러의 대상으로 지목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 APEC이 개최된다는 점.


세째, 11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21개국 정상이 참여할 예정인데, 그중 이라크에 비교적 많은 병력을 파병중인 4개국 정상(미·일·호·한)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알 카에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 특히 윤광웅 국방장관이 국회 국방위에서 한국정부의 파병연장을 공공연히 공언했다는 점.

넷째, 우리나라에는 이미 이슬람 56개국의 국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이 8만3천여명이며,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 같은 반한 이슬람 단체를 조직한 바 있는 이슬람 국적 불법체류자가 3만9천여명이라는 점. 특히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분류하고 있는 이란·시리아·리비아·수단·쿠바등 국적 보유자는 2,400여명이며 그중 400여명이 불법체류하고 있다는 점.

다섯째, 알 카에다 요원들이 국내 침투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

여섯째, 최근 이라크 현지에서 아국민에 대한 직간접 테러가 21건이나 있었고, 이라크 테러조직의 디지털 지하드가 19차례 발생해 실제 테러 위험이 상존하고 고조되고 있다는 점.

무슬림을 근거없이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낙인
국내 무슬림들 “억지주장 탓 역테러 당할까 우려”

반한단체로 몰린 경기도 안양의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 사원은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국내 첫 이슬람 사원으로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함께 모이는 사원공동체이다. 류우종 기자
정 의원의 주장처럼 한국이 세계 3번째 이라크 파병국이라는 점에서 알카에다 등 이슬람 과격 원리주의자들의 테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건 사실이다. 이런 주장은 정치권과 테러 전문가들이 이미 여러차례 제기해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정 의원은 한국 타깃설의 근거로 제시한 네번째 주장에서 한국 내 이슬람 국가 출신 한국 체류자들을 테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될 수 있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었다. 정 의원은 이슬람 국가 출신들이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과 연관된다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가능성만을 언급하고 있다.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 소장은 “이라크에서 귀국한 사람과 최근 통화했는데, 이라크 현지에선 ‘다음 테러 대상은 한국’이라며 공포감에 떨고 있다’고 하더라”며 “여러가지 정황 증거로 봤을 때 국내에 알카에다 등 과격 이슬람단체를 추종하는 세력이 상당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이들이 APEC를 기해 한국에 대한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형근 의원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최 소장은 “그렇다고 한국에 있는 모든 이슬람 국가 출신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규정할 수는 없다”며 “알카에다 등과 연계된 이슬람 과격 원리주의자와,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슬람 국가 출신 무슬림은 분명히 구별해서 용어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이태원의 한 이슬람 사원 관계자도 “정 의원의 발언은 대다수 무슬림들이 이슬람 국가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는 마녀사냥”이라며 “모든 무슬림이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면 정 의원부터 몸조심 해야 할 것”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테러 뒤 국정원과 경찰이 교단에 와서 조사를 하고 갔으나 테러에 대한 어떤 근거도 찾아내지 못했다”며 “이곳 무슬림들은 ‘코리안 드림’을 안고 먹고살기 위해 한국에 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또, “무슬림들에 대한 역 테러를 우려해 사원 주변에 경찰이 배치되어 있다”며 “테러가 발생하면 언론 등이 확인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이슬람 세력의 짓으로 매도하니 선량한 무슬림들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는 반한단체 무관…저질 코미디 재방송

정 의원이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 같은 반한 이슬람 단체를 조직한 바 있는 이슬람 국적 불법체류자가 3만9천여명”이라고 주장한 것은 사실관계가 다르다.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가 반한 이슬람단체라는 주장은 지난해 10월 언론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으나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13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법무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국가정보원과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지난 4월 국내에 체류 중인 방글라데시인들의 단체인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의 일부 조직원이 반한 활동을 한 사실을 적발해 27살의 ㅎ아무개씨 등 핵심조직원 3명을 강제 추방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의 발언을 신문과 방송이 “국내 반한 이슬람 단체 첫 적발”이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해 10월 반한단체 논란이 일 당시, 라마단(금식월) 기간에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에 일부 신도들이 사원 안에서 묵고 있다. 류우종 기자

그러나,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 사건은 3명의 방글라데시아인들이 반한단체 활동이 아닌 불법체류 때문에 추방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흐지부지됐다. 당시 <한겨레21>은 이 사건을 추적보도하면서 법무부 출입국 관리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4월에 적발돼 추방된 방글라데시인들은 출입국관리법 위반사범으로 국정원의 요청에 의해 서울출입국관리소가 단속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등 관계 당국도 이 단체의 반한활동을 뒷받침할 ‘증거’나 ‘단서’를 찾지 못했다. 사건을 제기한 김 의원쪽은 과거 공안정국의 ‘조작사건’에 버금가는 이주노동자판 ‘시국사건’을 조작했다는 비아냥만 들었다.

당시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의 혐의를 벗기기 위한 활동을 도왔던 한 이주노동자단체 활동가는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 사건은 반한단체 활동이 없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는데, 사실 확인도 없이 또 다시 테러리스트로 몰아붙이는 것은 저질 코미디의 재방송”이라며 “정 의원이 그런 사실을 확인이나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돈벌러 왔을뿐”
[한겨레21] “우리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몰았다”
[한겨레21] ‘반한 이슬람 단체’는 없었다
[한겨레21] ‘반한활동’ 매도는 계속된다

테러방지법 제정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많아

정 의원은 여러 근거를 들어 ‘한국 타깃설’을 설명한 뒤 “4년째 국회에 계류중인 테러방지법을 조속히 제정해 시행될 수 있도록 정치권의 합의가 긴요한 시점”이라며 테러방지법의 즉각적인 제정을 대안으로 내놨다.

물론, 테러방지법 제정을 주장하는 것은 정 의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공성진, 김충환 의원은 정 의원에 앞서 “우리나라도 더 이상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고, 이라크 파병국의 일원으로서 국제적인 테러조직의 목표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테러 위협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안정적인 테러방지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속한 법제정을 촉구한 바 있다. 런던 테러 등을 빌미로 테러방지법 제정 분위기가 또 다시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에선 “테러방지법이 제정될 경우 국민들의 인권를 침해할 소지가 있고 국정원 권한이 비대해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12일 CBS ‘뉴스 레이더’에 출연해 “테러방지법이 없다고 해서 테러를 막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며 “테러방지법은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고 국정원이 군인을 동원할 수 있어 위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승하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온 국민을 감시대상으로 만들어 인권을 침해하는 데다 국정원이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의 어떤 행위라도 처벌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법이자, 국가보안법 ‘친동생’ 같은 법”이라고 맹비난했다. 홍 대변인은 “정치권이 진심으로 국민의 안위를 위한다면 테러방지법 제정 논의로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당장 자이툰 부대의 철군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옳다”며 “본질적인 테러 해결책은 철군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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