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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19:06 수정 : 2005.07.22 03:02

<한국방송>은 21일 밤9시 뉴스에서 지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한 중앙일간지 간부와 한 대기업 고위간부가 특정 대선후보에게 대선자금을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녹음 테이프의 녹취록을 보도했다. <한국방송> 화면 촬영

KBS, ‘97년 안기부 불법도청’ 녹취록 공개
국정원 과거사위, 진상조사 착수

국가정보원(원장 김승규)은 21일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에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가 ‘미림팀’이라는 비밀조직을 가동해 정계·재계·언론계 주요인사들의 대화 내용 등을 불법 도청했다는 의혹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일부 언론이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 의혹을 보도한 데 대해, 잘못된 과거를 씻어버린다는 자세로 그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해 한 점 의혹도 없이 국민들에게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이어 “조사결과에 따라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에 상응한 조처를 취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조사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위해 민간인이 참여하고 있는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조사를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방송>은 이날 밤 9시 뉴스에서 “당시 안기부 비밀도청팀이 녹음했던 내용을 입수했다”고 전제한 뒤, 16대 대통령선거 직전인 1997년 9월9일 한 대기업 고위 간부와 중앙 일간지 간부가 서울 시내 호텔에서 만나 1시간30여분 가량 나눈 대화의 내용을 보도했다.

한국방송이 보도한 녹취록에서 이들 두 사람은 주요 대선후보 쪽에 수십억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하는 문제 등을 상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화에서 대기업 고위 간부는 한 유력 대선후보가 30억원을 자신들에게 요구했으며, 또다른 후보는 10억원을 요구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대기업 간부는 또 자신이 속한 기업의 총수가, 한 유력 대선후보와의 접촉은 여러 사람을 통하지 말고 이 중앙 일간지 간부가 맡도록 지시했다고 말한 것으로 한국방송은 보도했다.

언론사 간부는 이에 대해 한 후보 쪽의 경우 보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한 뒤, 자기 회사에 있다가 이 후보 쪽에 합류한 사람을 통해 18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이날치 신문에서 “안기부가 1993년부터 98년 2월까지 ‘미림팀’이라는 특수 도청팀을 가동해 정·재·언론계 인사들이 만나는 식사자리를 불법 도청했다”며 “도청 내용에는 모 재벌 고위 인사와 중앙 일간지 고위층 간의 대선자금 지원 논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미림팀이 생산하는 도청 테이프의 녹취록과 보고용 요약 문건인 ‘미림 보고서’는 국내정보 담당 차장과 안기부장 정도만 접할 만큼 최고의 보안사항이었다”고 전했다.


미림팀이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진 93∼98년 당시의 안기부장은 김덕·권영해씨였으며, 국내 정보를 맡는 1차장은 황창평·정형근·오정소·박일룡씨가 이어 맡았다. 이에 대해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전혀 아는 바 없다”며 “(그런 일이) 있었다면 개인적 충성심의 과잉에서 했을 수도 있지만, 조직 차원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녹취록에 나오는 대기업의 홍보담당 임원은 이날 “한국방송의 보도내용은 녹음테이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한국방송을 상대로 법적 조처를 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홍석현-이학수씨, 보도금지 가처분신청
법원, ‘실명금지’ 등 조건 사실상 기각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재판장 김만오)는 21일 <문화방송>의 ‘이상호 엑스파일’ 보도가 예고되자 홍석현 주미대사와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이 보도를 금지해 달라며 낸 가처분신청에 대해 몇가지 조건을 붙여 사실상 기각했다.

재판부는 <문화방송>이 △도청 테이프의 원음을 방송하거나 △테이프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 △테이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명을 거론하는 것을 금지했다. 재판부는 <문화방송>이 이를 어길 경우 홍 대사 등에게 한 건마다 5천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주심인 이철원 판사는 “내용 자체를 방송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고 담긴 내용의 큰 취지는 밝힐 수 있되 세세한 내용을 밝히지 말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홍 대사와 이 본부장은 가처분신청서에서 “불법으로 도청된 자료에 근거해 사실로 확인되지도 않은 불명확하고 부정확한 내용의 보도가 이루어져 일반인들에게 알려진다면 신청인들은 불법한 정치자금 공여의 당사자로 오인될 수 있는 심각한 인격권 등의 침해가 이뤄질 것이 명백하다”며 “이 보도는 명백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의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신청인들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보도할 내용은 신청인들이 이미 8년 전인 97년 대선을 앞두고 식사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자연스럽게 나누었던 대선과 관련한 여러가지 전망과 의견, 주변에서 들은 각종 풍문 등으로서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무차별 폭로성 보도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법원의 결정에 대해 이동직 변호사는 “가처분신청에서 결정하는 시간까지가 너무 짧아, 문화방송이 공정하게 반론을 준비할만한 시간이 있었을지 의심이 든다”며 “보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명예훼손의 의미보다 언론의 권력감시에 더 초점을 맞춰 판단할텐데, 법원에서 사안의 비중에 견줘 너무 소극적으로 판단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박주희 이본영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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