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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이 22일 밤 ‘뉴스데스크’를 통해 이학수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왼쪽)과 홍석현 주미대사(오른쪽),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이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불법 대선자금을 주고받은 사실 등을 보도하고 있다. <문화방송> 화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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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97년대선때 이회창씨 100억안팎 지원
<중앙> 간부, 대통령 측근에 “이후보 밀어야”
이후보 쪽 “삼성 기아차 인수 돕겠다” 약속
안기부 도청테이프에서 드러나
지난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 때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사 사장(현 주미대사)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삼성이 건네는 100억원 안팎의 대선자금을 직접 전달했거나, 전달하려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당시 <중앙일보> 고위 간부가 대선후보 교체를 비밀리에 고민중이던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에게 “이 후보를 계속 밀고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등, 이 신문사가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위해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다.
홍 사장은 또 추석을 맞아 당시 검찰 고위 간부 10명에게 500만∼2천만원에 이르는 삼성의 떡값을 전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런 사실은 홍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이 97년 4월7일과 9월9일, 10월7일 등 세차례 만나 나눈 대화를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비밀 도청 조직인 ‘미림’팀이 도청한 녹음테이프의 녹취록과, <문화방송>이 입수한 녹음테이프 등에서 드러났다. <한겨레>도 이 녹취록을 입수했다.
녹취록을 보면, 홍 사장은 9월9일 만남 때 “그동안 고흥길(현 한나라당 의원)을 통해 18개(18억원)를 줬다”고 말했으며, “(이 후보 동생인) 이회성을 집으로 오라고 해서 2개를 차에 실어보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 “서상목씨가 당과 별개로 이 후보 이미지 작업을 위한 11억원과, 별도의 1억원을 요청하고 있으니 도와줘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홍 사장은 이와 함께 10월10일을 전후로 이 후보 쪽에 30억원을 전달하기로 이 실장과 합의(10월7일 회동)하고, 당내 후보 경선 때 이 후보를 위해 15억원 가량을 준비(4월7일 회동)하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홍 사장이 이 후보의 측근을 통해 이미 30억원을 줬는데 다 써버렸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와 함께 홍 사장은 “10월3일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이 김 대통령과 독대를 한 뒤 중앙일보 (고위 간부) ○○○을 찾아와 ‘이회창씨가 힘들 것 같다’며 대책을 묻자, ○○○이 ‘지금 와서 다른 방법이 없다. 이회창씨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밝히고 있다. 홍 사장은 9월3일 이 후보를 만나 기아자동차와 관련된 자료를 직접 주며 “노조와 호남한테 아무리 아부해봤자 절대로 안 되니, 확실하게 보수편에 서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두 사람의 대화에는 삼성이 추석을 맞아 검찰 고위 간부 10명에게 500만원 이상의 떡값을 주자는 내용도 담겨 있다. 금액이 큰 간부의 경우에는 2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나타난다. 홍 사장은 “검찰 쪽 ‘K1’(경기고 출신)들한테는 직접 줄테니 5천만원을 보내달라”고 이 실장에게 요청했다. 홍 사장은 또 이 후보와 만났을 때, 이 후보가 기아자동차 문제와 관련해 “삼성이 갖고 있는 복안을 당당하게 밝혀 공론화하면 당 정책위에 검토시켜 가능한 한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홍 주미대사는 22일 오전(현지시각) 주미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북핵 6자 회담을 비롯해 주미대사로서 해야 할 현안들이 많기 때문에 조금 시간을 갖고 내 입장을 정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고 대사관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안홍진 상무는 문화방송이 녹취록을 보도한 데 대해 “법원 결정에 의해 녹취록 인용이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안기부 비밀문건이라는 이름으로 위법 방송을 했다”며 “문화방송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안기부의 비밀 도청 조직인 미림팀의 존재를 처음 언론에 공개한 것으로 알려진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41)씨는 21일(현지시각) 미국에서 <한겨레>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도청의 주요 내용은 청와대 핵심관계자 ○○○씨와, 당시 정권의 핵심 실세인 ○○○씨에게 즉시 보고가 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 해리스버그에 살고 있다. 정재권 기자,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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