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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한나라당 사무총장(왼쪽)이 25일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당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불법 도청 녹음테이프와 관련해 김기춘 여의도연구소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 총장이 보고 있는 발언자료에는 “수많은 테이프 중 왜 이것만 공개했는가” “누가 어떤 의도로 공개했는가” “불법 도청이 더 큰 문제”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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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파편’ 어디로 튈 지 몰라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불법도청 사건에 대한 처리 지침을 제시했다. 국정원 자체조사를 통해 불법도청의 실태를 먼저 파악한 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에 나서는 ‘2단계’다. 노 대통령, 수사 염두 “테이프를 통제권 안에”
DJ, 겨냥 추가테이프 존재 가능성 높아 ‘곤혹’ 노 대통령은 먼저 국정원의 신속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도청이라는 불법행위를 뿌리뽑아 국민들의 불안감을 씻어주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론 외에도 이후 검찰이 수사할 대상을 먼저 확정지을 필요성도 작용했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다. 청와대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이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는 ‘불가측성’이다. 현재 남아있는 도청 테이프의 규모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을 하지 못하고 있다. 8000개에서부터 200개가 남아있다는 설도 있고, 천용택 국정원장 시절 모두 폐기됐다는 얘기도 있다. 언론에 공개된 3건의 테이프 녹취록만으로 검찰수사에 나섰다가 제2, 제3의 테이프가 터져나올 경우 정국이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의 조사는 뇌관이 될 테이프를 모두 수거해 통제권 안에 놓아두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국정원 감찰실은 ‘미림팀’ 팀장인 ㄱ아무개씨 등 주요 인물의 소재 파악에 나서는 한편, 천용택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조사의 속도를 내년 앞으로 1주일에서 열흘 사이에 테이프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다음은 검찰 수사다. 노 대통령은 “사회적 공론을 들어가며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지만,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해 검찰 수사가 예정된 수순임을 내비쳤다. 법무부와 검찰도 수사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들은 이번 수사로 큰 손해를 볼 것이 없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은 주로 한나라당과의 연관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림팀의 팀장인 ㄱ아무개씨가 24일 <에스비에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도 다 똑같아”라고 말한 대목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노 대통령과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이날 이번 사건을 모두 ‘정·경·언 유착’이라고 표현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추가 테이프의 내용이다. 여권은 최소한 2개 이상의 테이프가 추가로 존재하며, 그 내용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ㄱ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디제이 정권으로 바뀐 뒤, 쫓겨나면서 당한 게 서러워 (테이프를) 들고 나왔다”며 “나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추가 테이프의 내용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 일단 국민 여론을 바탕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현 정부로서도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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