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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8 11:30 수정 : 2005.07.28 14:21

엑스파일의 두 주인공인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엑스파일은 두 사람이 정치권에 광범위한 불법자금을 뿌렸다고 증언한다. 엠비시 방송화면.

[분석] 엎치락 뒤치락 ‘엑스파일’ 감상법

불법 도청 테이프 사건은 얽히고 설킨 고구마 줄기와 닮았다. 캐면 캘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줄줄이 드러난다.

사건에 등장한 인물도 한두명이 아니다. 처음 엑스파일이 보도되었을 때 주인공은 전 중앙일보 사장인 홍석현씨와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인 이학수씨였다. 두 사람이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검찰을 가리지 않고 삼성의 돈으로 불법자금을 뿌렸다고 테이프는 증언한다. 두 사람은 <문화방송>이 이를 보도하려고 하자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자신들이 테이프의 주인공임을 ‘커밍아웃’했다. 그러나, 베일에 쌓였던 사건의 전모가 하나둘씩 벗겨지면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물론 이회창, 김대중 등 거물 정치인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실세인 천용택씨와 박지원씨 등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또 불법도청 테이프를 만든 안기부 미림팀의 실체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여러명 등장하는 사이 ‘삼성의 불법로비 사건’이라는 엑스파일의 ‘콘텐츠’는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대신, 테이프가 어떻게 유통되었는지가 관심의 초점으로 등장했다. 이 과정에는 검찰과 언론의 속내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적거리던 검찰은 느닷없이 도청 테이프를 보도한 것의 위법성을 조사하겠다고 한다. 언론도 미림팀장 공운영씨의 자해를 계기로 불법도청 테이프가 유출된 경로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검찰과 언론의 이런 태도는 도둑놈을 잡아야 하는데 난데없이 속도위반 딱지를 떼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와도 멀다. 엑스파일 사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국민이 얼마나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불법로비가 사건의 실체다”

참여연대가 고발한 것은 홍씨와 이씨가 불법정치자금을 살포한 엑스파일의 실체다. 엠비시 방송화면.
국민이 끝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으로는 삼성이 지난 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중앙일보 홍씨를 심부름꾼으로 세워 정치권에 광범위한 불법로비를 한 의혹이 첫손 꼽힌다. 테이프 내용을 보면 삼성은 이회창 후보뿐 아니라 김대중 후보에게도 보험성 불법자금을 돌렸다. 또, 당시 검찰 간부들에게도 떡값을 뿌렸다. 삼성이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이회창씨와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매수하려 한 시도가 ‘성공’했는지, 또 그런 시도가 외환위기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지난 25일 <인터넷참여연대> 칼럼에서 “삼성 재벌이 엄청난 자금력을 이용해서 최강의 정경유착을 이루고 이 나라의 경제를 주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났다”며 “이 나라가 정말 ‘삼성공화국’이 아니라면, 검찰은 삼성 재벌의 잘못을 철저히 징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의혹이 해결되려면 검찰이든 특검이든 삼성의 불법로비 의혹을 말끔히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삼성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은 정치자금법 등의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뇌물공여죄나 횡령, 배임죄 등의 공소시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검찰이 수사를 미적거린다면 ‘삼성공화국’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밖에 안된다. 엑스파일 사건 전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관전 포인트다.

떨어내야 할 불법도청이라는 야만

과거 정권이 어떤 식으로 권력을 유지해왔는지 엑스파일 사건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계, 재계, 언론계 인사들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캐고 도청했던 안기부 미림팀의 존재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통성이 없던 군부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댈 것이라고는 ‘자기편’까지도 의심하고 도청하는 안기부의 감시망이었던 셈이다.

특히, 엑스파일 사건은 초원복집 사건의 피해자임을 자처하며 통신비밀보호법을 만들었던 김영삼 정부가 실제로는 안기부 도청팀을 부활시켜 광범위한 불법도청을 벌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일부 언론보도를 보면 김영삼 정부 시절 미림팀의 부활에 김현철씨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통신보호비밀법상 엑스파일 사건은 역시 공소시효가 지났다. 당시 불법도청을 한 안기부 요원이나 이를 지시한 권력의 실세도 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불행한 과거와 단절이다. 검찰이 하지 못한다면 국회라도 나서야 한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지난 27일 <한겨레> 기고에서 “국회는 안기부가 행한 불법도청의 목적이나 규모, 불법도청 조직의 규모와 활동기간 등을 철저하게 조사해 밝혀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정배 법무장관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가기관의 도청도 심각한 문제”라며 “범죄 의혹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어떤 식으로든 과거정권이 행한 불법도청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어정쩡한 검찰 ‘반쪽 수사’ 시늉만

김종빈 검찰총장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에게 `안기부 X파일‘사건의 서울중앙지검 수사 방침과 X파일에 거론된 검사들의 `떡값수수‘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밝힌 뒤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엑스파일의 진실을 어디까지 밝혀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검찰의 태도로 보면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검찰이 26일 참여연대의 고발사건을 특수부가 아닌 공안부에 배당한 것부터가 그렇다. 검찰이 사건의 실체인 삼성의 불법로비 행위가 아니라 안기부의 불법도청과 보도 행위의 위법성에 초첨을 맞춰 수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27일 “테이프의 제작과 보관, 유포 경위를 먼저 밝혀내는 것이 수사의 순서”라며 “이를 위해 남아 있는 도청 테이프를 모두 수거할 계획”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참여연대가 고발한 것은 홍씨와 이씨가 불법정치자금을 살포한 엑스파일의 실체다. 검찰이 고발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엑스파일의 유통경위만 수사한다면 반쪽 수사라거나, 삼성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검찰이 엑스파일 수사와 관련해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이라는 사건의 실체를 건드릴지, 아니면 테이프 유출과정에서 불법만 조사해 변죽만 울릴지 관심거리다. 검찰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특검제를 주장하는 여론은 더욱 높아질 것이 뻔하다.

‘다치고 싶지 않은 언론’ 꼬리내리나?

옛 국가안전기획부 비밀 도청팀인 미림팀장이었던 공운영(58)씨가 26일 오후 6시15분께 경기 성남시 분당 자택에서 자해를 한 뒤 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가고 있다. 성남/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엑스파일 보도에 열을 올리던 언론사들은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씨 등장 이후 주춤하고 있다. 공씨는 에스비에스와 인터뷰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흥분시키면 언론에 재갈 다 물려 놓을 것”이라며 “입 열면 안 다칠 언론사 없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26일 안기부 미림팀에서 불법도청을 한 과정과 유출된 경위를 담은 자술서를 배포한 뒤 자해소동을 벌였다. 이때부터 언론들은 엑스파일 사건의 실체보다는 엑스파일이 유출된 경로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공씨의 진술서를 토대로 “대통령 빼고 다 도청했다”(1면 머리), “94년 팀 부활 뒤 ‘도태’ 대비해 몰래 보관”(3면 머리)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도 1면 머리기사를 “‘엑스파일’ 도청 테이프 유출 경로 드러나, 도청팀장→재미교포→MBC”라는 제목으로 내보냈고, 엑스파일의 유출 경로에 지면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중앙일보>의 보도는 단연 돋보였다. 중앙일보는 ‘불법 도청 테이프 유출…드러나는 전모’라는 1면 머리기사에서 “사회정의도 국민의 알 권리도 아니었다.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가 MBC에 전달 되는 과정에 연루된 사람들의 목표는 금품갈취였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이에 앞서 이틀 전 “입 열면 안 다칠 언론사 없다”며 언론을 협박한 공씨의 말을 1면 머리기사로 상세하게 인용보도한 바 있다. 이틀 만에 공씨는 중앙일보의 ‘대변인’에서 파렴치한 ‘금품갈취범’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처럼 언론사들의 보도가 불법도청의 유출에 초점을 맞춘 것이 공씨의 자해소동으로 빚어진 우연인지, 아니면 “안 다칠 언론사 없다”는 공씨의 말에 스스로 꼬리를 내리는 것인지 매우 중요한 관전거리다. 엑스파일에는 이회창 후보를 위해 노력한 언론사가 더 있고, 미림팀이 언론계 인사들을 도청했다는 설도 파다하다.

한나라당 특검 주장 속에 숨겨진 물타기 전술

김무성 한나라당 사무총장(왼쪽)이 25일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당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불법 도청 녹음테이프와 관련해 김기춘 여의도연구소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 총장이 보고 있는 발언자료에는 “수많은 테이프 중 왜 이것만 공개했는가” “누가 어떤 의도로 공개했는가” “불법 도청이 더 큰 문제”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

엑스파일의 또 다른 주인공은 정치권이다. 특히, 부패정당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타격이 크다. 엑스파일에서 언급된 정치자금 대부분이 한나라당에 흘러갔고,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씨의 당선을 위해 불법자금을 돌린 것이 엑스파일의 내용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상처가 덧나기 전에 덮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우리들에게 불리한 내용만 짜깁기로 까지고 있다”며 “즉각 특검제를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로비와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분이 엑스파일에서 누락되었다는 것이 <한겨레>의 보도로 드러나면서 한나라당은 돌연 공세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한나라당은 “도청파문이 명백한 정치공작임이 드러났다”고 펄쩍 뛰며, 중앙일보 보도와 박자를 맞추고 있다.

한나라당의 특검제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한나라당이 특검을 통해 밝히고 싶은 건 엑스파일의 콘텐츠가 아닌 듯하다. 녹취록 내용 누락에 현 정부가 개입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 천용택 당시 국정원장과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도청 테이프의 존재를 알고도 아무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은 현 정부 들어서도 불법도청이 자행되고 있는지도 특검을 통해 밝혀야 한다며 사뭇 쌩뚱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특검이 도입되면 이 사건이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을지도 두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국민 46% “삼성 불법자금 제공이 ‘X파일’ 본질”
한국사회여론연구소 7월 정기조사…‘불법도청’보다 높게 나와

우리 국민 과반수는 ‘불법도청 테이프 사건’의 본질은 ‘삼성이 불법대선자금을 제공하고 사건의 보도를 막으려고 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결과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소장 김헌태)가 지난 26일 전국의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여론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 조사에서 ‘엑스파일 사건과 관련해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45.8%가 ‘삼성의 불법대선자금 제공과 보도 저지’라고 밝혔다. 이에 견줘, ‘안기부의 불법도청행위’라는 응답은 37%였으며, ‘문화방송의 불법도청 테이프 보도’라는 응답은 9%에 그쳤다.

이는 국민 과반수가 이번 사건의 본질을 삼성그룹이 중앙일보 홍석현 전 사장을 심부름꾼으로 정치권에 광범위하게 불법자금을 뿌린 것을 사건의 본질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밝히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삼성이 엑스파일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불법행위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 차원의 보도임으로 소송을 해선 안 된다’는 응답이 51.3%였으며, ‘불법 과정을 거친 보도이고 특정 회사에 큰 피해를 주었으니 소송할 수 있다’는 응답은 40.6%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엑스파일과 관련한 국민의 여론이 삼성보다는 이를 보도한 문화방송 등 언론의 편에 서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정당지지도는 열린우리당이 20.5%, 한나라당 26.9%, 민주노동당 10.2%, 민주당 2.6% 등이었으며, 모름·무응답 층은 39.1%로 나타났다. 6월 조사와 비교하면 한나라당이 소폭 상승(0.8%포인트)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2.8%포인트, 민주노동당은 0.8%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특히 부동층이 6월보다 4.7%포인트 상승하면서 40%대에 육박해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잘하고 있다’ 23.1%, ‘잘못하고 있다’ 60.8%로 6월 조사와 비교해 긍정평가는 1.8%포인트 하락하고, 부정평가는 4.5%포인트 상승했다.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4·30 재보선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국정운영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이번 조사의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7%이다. 박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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