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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손안대고 ‘불모지’ 개척
의원 반발 무마 정당 타협여지
직접선거 원리 어긋나 위헌 시비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기자 간담회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대연정보다 선거제도의 개혁”이라고 말해, 연정 제안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한층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한마디로, 지금의 지역분할 구도를 깰 수 있는 선거제도라면 무엇이든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선거제도가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28일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굳이 중·대 선거구제가 아니라도 좋다”고 말한 것의 연장선에서 여러 방안에 문을 열어놓은 상태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관계자들, 그리고 여권과 의견을 나눈 정치학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청와대 쪽은 최근 ‘각 정당의 전국 득표율을 근거로 권역별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변형 선거구제에 부쩍 관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국을 4∼5개 권역으로 쪼갠 뒤, 예를 들어 어느 정당이 50%의 전국 득표율을 기록했을 경우 그 정당이 영남권이나 호남권 등 각 권역별로 비례대표 의석의 50%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지금처럼 국회의원 정수를 299명으로 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그대로 2 대 1로 하더라도, 지역분할 구도를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판단이라고 한다. 이런 방식은 지금의 지역구를 크게 손대지 않는 것이어서 현역의원들의 반발 가능성이 낮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불모지’에 해당하는 영남과 호남에서 일정한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는 형태여서 이론적으론 두 당 사이에 타협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은 이 방안이 위헌시비를 피해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지역구 후보에게 던진 표를 곧바로 정당에 대한 투표로 간주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직접투표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김형준 국민대 교수(정치학)는 “그런 발상은 선거의 대표성을 인위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라서, 한마디로 위헌”이라고 말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지역구도 완화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각 당이 얻은 전국 득표율을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입할 경우,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차지하는 의석수는 4석에 불과하다. 열린우리당도 영남권 의석수가 늘긴 하지만 증가폭은 10석 정도다. 특히나 역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호남 득표율이 3%대를 넘지 못한 사실을 감안하면, 어떤 선거구제를 선택하든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의미 있는 의석수’를 얻는 일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식이나 일본식 혼합제에 대입해 보면, 전국득표 권역배분제보다 지역구도 완화 효과가 되레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독일식의 경우에 가장 큰 혜택은 민주노동당에 돌아간다. 전국적으로 41석의 의석이 돌아가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김영태 목포대 교수(정치학)는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얻는 득표율이 지금처럼 낮은 상태에서, 선거제도를 바꾸는 정도로는 지역구도 타파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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