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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선 열린우리당 사무총장(왼쪽끝)이 3일 오전 서울 영등포동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전날 “(도청 테이프에) 국민의 정부 당시의 의혹이 담겨있다”고 주장한 김무성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겨냥해, “증거를 제시하라”고 말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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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 “민간기구 만들어 테이프 공개 판단을”
한나라 “특검서 불법도청행위 중심 수사해야”
민주노동 “특별법·특검하되 모두 공개·수사해야”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불법도청 테이프 사건의 수사 주체와 그 내용 공개 여부를 놓고, 여야 각 당이 쟁점별로 뚜렷한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다. 크게 보면, ‘특별법 제정’에는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민주당·자민련이 동조하고 있고, ‘특별검사 도입’에는 한나라당 등 야4당이 힘을 합치는 모양새다. 또 큰 틀에는 견해를 같이하는 당들도 세부 사항에서는 조금씩 다른 주장을 펴고 있어, 절충점을 찾기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제3의 민간기구’를 만들 것인가=열린우리당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제3의 민간기구를 만들어, 테이프 내용의 공개 여부와 그 범위를 판단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불법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위법이 되므로,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해주기 위해선 이런 방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테이프 내용 공개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는 한나라당만 반대하고 있을 뿐, 민주노동당·민주당·자민련이 모두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제3의 민간기구’를 만들자는 열린우리당 주장에 대해선 민주당만 동조하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이나 특별검사 등 국가기관에게 현행법(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이유를 내놓고 있다. 반면,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원내수석부대표는 3일 “제3의 민간기구는 결국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거대 정당이 추천한 인사로 구성될 것이므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한나라당은 특별검사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누가 수사할 것인가=한나라당은 특검이 이번 사건의 수사를 맡는 것은 물론, 테이프 내용도 수사결과 발표 형식으로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이프 내용 그대로 공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사건 수사와 테이프 공개결정 모두 특검이 하는 게 옳다”고 밝히고 있다.
민주당은 절충형이다. 수사는 한나라당 주장대로 특검이 맡되, 테이프 공개 여부에 대한 판단은 열린우리당 제안대로 특별법에 의한 민간기구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는 “저명인사의 범죄 단서가 되는 발언은 물론, 정-경, 권-언, 경-언 유착 등의 사항은 공개를 해야 한다”며 “공개한 내용 중 범죄수사의 단서가 되는 것은 특검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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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마다 특검…무력감”표정뒤
“전형적인 특검 사안”기류도 검찰 반응은 “특검으로 가도 아쉬울 것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은 보안유지가 생명인데, 어수선한 특검에서 비밀 유지가 되겠냐. 수사 인력도 충분치 않고….” 불법도청 사건과 관련해 정치권의 특별위원회(특위)나 특별검사제(특검) 도입 논의를 지켜보는 검찰은 일단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골치 아픈 일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 한편으로, 조직과 수사 노하우가 확실한 검찰이 아니라 특검처럼 급조된 기관에서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겠냐는 불신도 있다. 검찰 수뇌부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특위나 특검을 환영할 검사가 어디 있느냐”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특검이 도입되면, 검찰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수사팀·수뇌부와 달리, 검찰 내부에서는 정치권의 이런 논의를 내심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특히 위법 논란이 많은 ‘특위’보다는 결국 ‘특검’ 쪽으로 가야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이번 사건의 특성상 검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특검’ 사안이라는 시각이다. 검찰이 테이프 내용을 다 듣더라도 실제 수사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는 판단도 검사들이 특검을 ‘선호’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테이프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에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은 1%도 안 된다”면서 “시효도 지났을 뿐 아니라, 대화 내용이란 게 정황만 잔뜩 들어있을 텐데 검사 입장에서 보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자료들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한 부장검사도 “검찰로서는 나중에 불법 증거물인 테이프를 폐기할 수밖에 없는데, 테이프 처리 여부를 검찰이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특검이 처리해야 뒷말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 수뇌부가 사건을 처음부터 공안부에 배당한 것을 두고 이미 특검을 염두해 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공안부는 예전부터 국가정보원과 협조관계를 유지했던 곳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하는 곳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검찰 수뇌부는 공안부가 국정원 수사를 제대로 하기를 기대한 게 아니라 보안유지에 더 무게를 뒀을 가능성이 크다. 한 검찰 관계자는 “도청 수사는 특수부가 하는 게 맞는데, 특수부에 맞겨 놓으면 검사들이 일을 많이 만들어서 통제가 잘 안 된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본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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