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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3 19:24 수정 : 2005.08.04 11:04

송기춘 전북대 교수(헌법)

안기부 도청 테이프 수사는 누가 어떻게 해야 하나?

극히 일부만 공개된 안기부의 도청 테이프는 한국사회 정치·언론·재벌 등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강고한 부패사슬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과연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을 통신비밀보호법상의 도청자료공개 및 누설 행위로 보아 전 안기부 도청팀장과 엠비시의 기자를 조사하고자 하지만, 참여연대에서 고발한 특가법상의 뇌물죄 위반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압수한 테이프의 진위 여부를 밝히기 위한 조사가 이뤄지는지 알 길이 없으며, 안기부의 불법도청행위에 대한 조사도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검찰 내부의 고위인사들이 ‘떡값’을 받았다는 내용도 있고 보면 과연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겠는가 걱정이 앞선다.

수사·처벌 앞서 과거사 규명·청산 접근을

검찰의 수사의지와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에서는 특별검사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 동안 주요한 정치 사안에 대해 특별검사제가 실시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여러 한계에도 특별검사를 임명함으로써 수사의지와 공정성의 확보는 나름대로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검찰의 수사이건, 특별검사를 통한 수사이건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하여 수집된 테이프를 근거로 수사가 이뤄지고 공소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외가 인정될 가능성은 있어도 원칙적으로 도청 테이프와 같이 위법수집 증거에 결정적으로 기초하여 수집된 2차 증거는 증거능력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 결과 공소제기를 향하여 진행되는 수사절차는 근본적인 장애에 부딪힐 수 있다. 물론 도청에 의하여 수집된 자료라도 인격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므로 이를 단서로 하여 추가수사를 하여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지만 법리적으로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야의 합의에 의하여 특별검사제를 실시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도청을 용인하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의 근본 해결과제인 정치-언론-경제의 유착관계의 해소라는 두 가지의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방법의 하나로 불법도청에 의한 자료를 기초로 수사하여 형사처벌을 추구하는 데 집착하지 말고, 일차적으로 과거사 진상조사활동의 차원에서 국가기관에 의해 광범위하게 이뤄진 불법도청활동을 조사하고, 그 과정에서 이 사건의 테이프를 포함한 자료를 조사하고 그것이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경우 개략적 내용을 공개하여 역사적 반성의 자료로 삼는 것은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공개되어야 할 것은 중요한 공익에 관한 사항이며 공인이라도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한다. 이 경우 조사기관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함은 당연한 요청이다. 여기서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수사, 소추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공공 이익’ 보도마저 재갈 물리려나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이 사건에 관하여 언론기관이 도청 테이프 내용을 보도한 것이 통신비밀보호법 제17조에 위반된다는 주장에 대해서이다. 이 법상 도청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는 범죄로 규정되어 있으며, 형법상 명예훼손죄와 달리 위법성 조각사유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 유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할 경우 언론기관의 보도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규제의 장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언론의 자유가 취재 중에 저지른 불법행위나 범죄로 인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고 위법하게 수집된 내용을 제한 없이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렇지만 위법하게 수집된 자료라 하더라도 적어도 그 보도목적이 개인의 이익추구 목적이 아니고 그 발표로 인하여 침해되는 개인의 불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이 중대한 것이 명백할 경우까지 위법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우 언론인의 업무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진실은 알려지고 감춘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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