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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연세대 법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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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NYT 베트남전 비밀보고서 보도 무죄
‘통비법’ 언론자유 제한법 아니다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가 전 국정원 직원이 가지고 있던 불법도청 테이프를 입수해 촉발된 ‘엑스파일’ 사건은 불법도청을 통해 내용을 획득했다는 ‘절차법적’ 문제와 대화 내용의 범죄성이라는 ‘실체법적’ 문제를 동시에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입장과 판단은 매우 중요하다. 공개된 내용 가운데는 당시 검찰 간부가 삼성 쪽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도 나타난 만큼, 검찰의 공정하고 국민 편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1971년 6월13일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기록인 국방부 1급 비밀보고서를 국방부 연구원 대니얼 엘즈버그로부터 입수해 보도했다. 이에 연방 법무부는 <뉴욕타임스> 및 며칠 뒤 이를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가 국가기밀을 누설함으로써 국가안보를 해치는 이적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간첩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보도를 하기 전에 <문화방송>과 마찬가지로 보도 여부를 놓고 무척 고심했고 법적 자문도 구했다. 그러나 결국 아서 설즈버거 사장이 보도할 것을 승인했다. 당시 닉슨 행정부는 보고서를 유출한 엘즈버그를 처벌하기 위해 ‘연관공(Plumbers)’이라는 불법도청조직(나중에 워터게이트 빌딩 안의 민주당 사무실을 도청한 조직)을 만들어 엘즈버그의 집을 도청하기도 했다. 안기부 도청조직팀 ‘미림’을 연상시킨다.
판결문에서 연방대법원은 자유롭게 정보를 입수하고 보도할 수 있는 언론자유가 보장돼야 시민이 국가의 권력남용을 감시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기밀은 자신의 이익 보호나 증대만을 도모하는 사람들에 의해 악용될 것’이라고 한 연방대법원 판결 내용은 정권교체 뒤 자신의 신분상 안전을 위해 도청 테이프를 유출한 도청팀장 공운영씨의 행위를 연상하게 한다.
국방부 보고서 보도사건과 안기부 도청사건의 차이가 있다면 베트남전 보고서가 당시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지시로 정당하게 작성된 문건인 반면 이번 테이프는 안기부가 불법 도청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곧 안기부 도청 테이프는 절차상으로나 내용상 국익을 보호할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 범죄행위의 증거물이고, 정·경·언의 불순한 유착관계가 주 내용이라는 점에서 더욱 보도의 필요성이 강하다.
언론중재법에서는 헌법과 법률에 의한 언론의 제한 가능성을 규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언론은 정보원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취재한 정보를 자유로이 공표할 자유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통신비밀보호법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일 수도 없으며, 불법 도청한 내용을 공개하는 행위에 중대한 공익과 관련된 언론보도도 모두 포함되는지 여부는 법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국가기관이 자신이 불법하게 도청한 내용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통신비밀보호법의 보호를 받을 정당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만일 기자가 직접 도청을 해 취재하고 보도한다면, 이는 당연히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도청한 내용을 입수해 보도하는 것은 그 내용이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가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언론의 책무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 사실을 알렸다는 점에서 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도청 테이프 공개는 도청 사실에 대한 완벽한 증거물에 해당한다.
‘엑스파일’은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인과 재벌, 언론의 관계를 이해할, 가장 적나라한 역사적 자료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청산해야 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검찰이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도청 사실을 폭로하고 그 내용을 세상에 알린 기자를 형사처벌하려고 한다면 검찰의 명예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고, 검찰의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는 국민에게 다시 한번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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