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안기부 도청팀장이었던 공운영씨가 4일 오후 자해 뒤 입원 치료를 받던 경기도 성남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해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는 승용차에 앉아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성남/김정효 기자
|
당시 여권 관계자 “삼성 불법자금 파악”
“천용택·박지원씨가 모두 알고 있어”
공운영씨 구속…오늘 MBC기자 소환
김대중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 1999년,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 지원과 관련한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도 이를 숨긴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당시 삼성은 불법도청 테이프 내용에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현 주미대사)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현 부회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늙은이’ 등으로 부른 것에 대해 사과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삼성의 불법자금과 로비 등 범죄사실을 파악하고도, 김 전 대통령이 관련된 사실 때문에 덮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옛 여권의 한 관계자는 4일 “99년 박인회(58·구속)씨가 삼성 관련 녹음 테이프와 녹취록을 들고 삼성 쪽과 박지원 전 장관을 만나러 다니면서 당시 여권의 핵심 실세들이 97년 대선 때 삼성이 불법자금을 뿌린 사실을 알게 됐다”며, “천용택 전 국정원장과 박 전 장관은 그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도청 내용상 삼성의 자금 제공은 주로 이회창 후보 쪽이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된 대목도 있어 이를 서둘러 덮어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안기부 불법도청팀인 ‘미림팀’이 홍 대사와 이학수 부회장의 대화를 녹음한 내용을 보면, 삼성은 97년 당시 이회창 후보 쪽에 몇 차례에 걸쳐 수억원~수십억원씩을 건넸고, 구체적인 액수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김 전 대통령 쪽에도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돼 있다. 이 관계자는 또 “삼성 쪽이 김 전 대통령을 ‘늙은이’ 등으로 비하해 부른 것에 대해 사과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녹취록(97년 10월7일치)에는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지시를 홍 대사에게 전달하면서 “늙은 사람은 누구를 통하느냐,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물으셨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늙은 사람’으로 지칭한 것으로 돼 있다. 또 홍 대사가 이 부회장과 대화를 하면서 “반면에 우리가 지난번 늙은이한테 한 것은 일체 얘기가 안 나오잖아요”라고 언급한 대목도 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장관은 3일 “박인회씨가 인사청탁을 하면서 테이프와 녹취록을 건네줘 천 원장에게 이를 전달했다”며, “당시에는 김 전 대통령이나 우리와 관련된 얘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천 전 원장은 이번 사건이 불거진 뒤 “퇴직한 직원한테서 도청 테이프를 회수해 폐기했다는 보고만 들었다”며, “내용은 전혀 모른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서창희)는 이날 사건 관련자 3명을 추가로 출국금지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검찰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출국금지한 인원은 모두 9명으로 늘었다. 검찰은 또 이상호 <문화방송> 기자를 5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미림팀장이었던 공운영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공씨는 이날 오후 영장실질심사에서 “도청 내용은 오정소 전 대공정책실장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광섭 이춘재 기자 iguassu@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