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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5 19:30 수정 : 2005.08.07 11:38

국가정보원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청사에서 연 ‘옛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 대국민 사과 및 중간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이 옛 안기부와 국정원의 과거 도청·감청 실태를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수뇌부·정권실세 정말 몰랐을까

국정원 “윗선에 보고 안했다”강조
당시 간부들 부인 불구 납득 어려워
관행·정보 질 불안탓 지속 했을 가능성

 ‘… 친지와 의논할 때도/ 라디오 FM 틀어놓고/ 도청을 막아가면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 ….’

고은 시인이 시집 <만인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표현한 한 대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가 정보기관이 저지른 야만적인 정치사찰과 불법도청의 폐해를 누구보다 뼈져리게 느낀 당사자였다. 이 때문에 그의 임기 5년 가운데 4년 동안이나 국가기관의 불법도청이 계속됐다는 점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부 때 왜 불법도청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책임은 정확히 누구에게 있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날 국정원이 발표한 내용을 곱씹어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 악습의 반복, 불안감도 한몫 = 국가정보원은 이날 민주화 이후에도 도청 관행이 쉽게 근절되지 않은 이유로 “국정원 지휘부가 쉽게 첩보를 얻을 수 있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당시 직원들 사이에서는 “정보기관은 합법성보다,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은 불법이어도 괜찮다”는 잘못된 의식이 남아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이나 정치권에서는 “국정원이 불법에 집착한 본질은 불안감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동안 도청으로 손쉽게 고급 정보를 손에 쥘 수 있었는데, 갑자기 도청을 중단하게 되자 ‘정보 금단현상’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이날 김승규 국정원장도 “(김대중) 대통령이 도청금지를 지시했는데, 그러다 보니 정보의 질이 떨어지는 등 정보요원들의 고민이 있었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위에 보고할 ‘알짜’ 정보가 없으면, 수준 낮은 정보력으로 대통령의 신뢰를 잃게 되고, 나아가 바뀐 정권에서 자신들의 위상이 심각하게 흔들린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 어디까지 알았을까? = 국정원은 “도청팀이 위에는 도청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며 “정보 수집 경로를 대통령도 원치 않은 게 확실했다”고 강조했다. 통상적인 보고처럼, 합법적으로 수집된 정보와 도청된 정보를 출처 없이 섞어놓았기 때문에 보고받는 윗선은 몰랐을 것이란 설명이다.

물론, 이런 설명은 옆 조직에서 뭘하는지 모르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99년 12월부터 1년4개월 동안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 세종재단 이사장은 이날 “원장 시절 불법감청에 대해서는 전혀 보고받은 바 없다”며 “국민의 정부에서 불법감청이 있었다는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문희상(98.5~99.6), 이강래(98.2~98.5) 의원도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문 의원은 “도청 사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했고, 이 의원도 “안기부 개혁을 주도했던 사람으로서, 도청이 없었다는 점은 지금도 확신한다”고 말했다. 배기선 열린우리당 사무총장도 “신건 원장이 2002년 3월 부임 뒤 원내에서 도청조직과 대규모의 도청기계를 찾아냈는데, 본인도 차장 때까지 그걸 몰랐다고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국회 등을 통해 끊임없이 도청 의혹이 제기됐던 상황에서 국정원 수뇌부가 이를 전혀 의심해보지 않았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또 국정원 간부가 아닌, 정권의 핵심 실세 등이 은밀히 고급 정보를 보고받았다는 점은 이미 정치권에서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불법적으로 생산된 정보의 최종 수혜자가 과연 누구였는지, 어디까지였는지 밝혀내는 것도 앞으로 수사기관의 과제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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