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5 19:33
수정 : 2005.08.05 19:34
검찰 9일 피고발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 “소환 4일전 발표는 대비 시간 주는 것”
검찰이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을 피고발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하기로 한 것은 일단 ‘엑스파일’에 등장하는 삼성의 불법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을 뜻한다. 검찰이 고발 사건을 처리할 때 고발인 조사를 한 뒤 사건이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피고발인 조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5일 “(이 부회장이) 검찰에 나왔는데 유출 부분만 조사하고 끝낼 수는 없지 않느냐. 당연히 고발된 내용에 대해서도 조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소환을 삼성 관련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 착수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다. 검찰은 아직 이 부회장을 추궁할 수 있을 정도의 사전 조사를 충분하게 해놓지 않았다. 특수수사 경력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주범을 직접 조사하려면, 부인할 경우를 대비해 확실한 ‘무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며 “수사팀이 이 부회장 주변을 상대로 ‘기초공사’를 얼마나 잘 해놨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삼성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를 위해 수사팀에 특수부 검사 2명을 파견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수사에 투입돼 있지 않은 상태다. 이 부회장을 압박할 수 있는 무기는커녕 추궁할 단서조차 확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 관계자도 “특수부 검사 1명은 유전의혹 사건 공판 때문에 바쁘다”며 기초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내비쳤다. 삼성 관련 의혹을 본격 수사하려면 사건을 분할해 특수부로 넘기는 것이 효과적일 텐데, 아직 재배당의 움직임이 없는 것도 본격 수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소환은 다분히 ‘면피용’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검찰이 여론의 압박에 밀려 마지못해 선택한 카드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소환 사실을 무려 4일 전에 발표한 것도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특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부회장이 삼성의 막강한 법무팀의 도움을 받아 ‘완전무장’할 시간을 충분히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2003년 불법대선자금 수사 때도 검찰 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이 부회장은 ‘엑스파일’에 나오는 불법로비 의혹에 대해 “기억이 없다”고 부인할 가능성이 크다. 이 부회장을 압박할 특별한 무기가 없는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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