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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청사에서 연 ‘옛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 대국민 사과 및 중간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이 옛 안기부와 국정원의 과거 도청·감청 실태를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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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김 시대 상징인 지역주의 극복 서막인가 정치권 인적청산, 새판짜기 수순밟나 주목
김대중(.DJ) 정부 시절에도 도청이 이뤄졌다는 국정원의 발표로 `안기부 X파일' 정국이 새국면으로 진입하면서,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안개정국이 펼쳐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영삼(.YS) 정부 시절의 불법도청 및 도청내용 공개 중심으로 진행되던 정치 공방은 당장 DJ정부 불법도청에 대한 전면적 조사는 물론 현정부의 도청 여부에 대한 공방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는 등 사태전개의 방향과 끝을 예측하기 매우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YS정부 도청의혹 때는 `열린우리당 대 한나라당'이라는 대립전선이 뚜렷한 편이었으나, DJ정부 도청의혹으로까지 사건이 확장되면서 `우리당내 신.구세력'의 갈등양상으로 번질 조짐마저 나타나는 등 도청정국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즉 DJ 핵심 인사들을 상대로 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참여정부와 DJ 정부간의 관계, 여권 내부의 이상기류 여부, 호남 민심의 동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발표의 숨겨진 의도가 있든 없든 간에 결과론적으로는 향후 정치적 지형에 미칠 실질적 영향이 일반의 상식과 상상의 범위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우선 YS, DJ정부를 거치면서도 불법도청이 있었다는 이번 발표는 구 정치에 대한 염증을 불러일으키며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과거 정치'와의 단절을 재촉하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이번 국정원의 `고해성사성' 발표 이후 야당에서 제기된 `음모론'에서 감지된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국지적으로 지지기반을 나눠갖고 있는 민주당은 도청파문의 전개가 새판짜기를 염두에둔 여당의 고도한 전술전략일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즉 불법도청에 대한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고, 이 과정에서 YS, DJ 정부의 치부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구시대, 구정치에 대한 혐오가 심화되면 정치권의 인적청산과 새판짜기가 자연스럽게 진행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른바 지역주의에 기댔던 정치권의 `올드보이'를 2선으로 후퇴시키면 상대적으로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신진기예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한 초지역적 연대를 통한 새로운 정치세력과 정치문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한 셈이다. 여당의 한 핵심 인사는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과거에 흠집이 있던 샌이 물갈이가 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간에 `오래된 샌들'이 제일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도 "판을 흔든 뒤 여권이 지역을 초월해 젊은 개혁세력들을 자기 지지세력으로 흡수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양김 시대 도청파문 확산-지역주의에서 비롯된 도청문제 극복-인적 청산- 선거구제 개편 등을 통한 지역주의 극복으로 정국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도청이라는 구시대 유산의 청산과 지역주의에 대한 종언이 가능하다는 그랜드 디자인을 여권에서는 상정하고 있음직하다는 것이다. 이는 당장 1년도 남지 않은 내년 지방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며, 나아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지역주의를 벗어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권 이합집산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만 지난 2003년 대북송금 특검 이후처럼 현 여권에 대한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역풍'도 예상할 수 있다. DJ에 대한 흠결내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이번 발표에 호남 여론이 악화되면 DJ 적자를 자처하고 있는 민주당에 오히려 더 큰 힘이 실리고, 현 여권에는 예상 이상의 타격이 가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대북송금 특검이 DJ 통치권에 대한 논란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도청이라는 명백한 범법사실의 공개였다는 점에서 여론의 동향이 다르게 움직일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 청와대나 여당 핵심에서 "어느 정도의 호남민심 이반도 각오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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