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7 19:37
수정 : 2005.08.0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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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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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도청 테이프 기고] 이은우 변호사
국정원은 8월5일 국정원의 불법도청에 대한 자체 조사내용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을 보면, 김영삼 정부는 물론,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3월에 이르기까지 국정원에는 불법도청을 하는 조직이 운영되었고, 광범위한 불법도청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국가권력에 의한 조직적 불법행위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의 가장 잘 훈련된 요원들이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전국민을 속이면서 수년 동안 조직적으로 불법도청을 해 왔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다. 그런데 이 발표를 보면서 1987년의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때, 진실을 은폐하던 치안본부의 발표가 생각났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는 대통령 직선제와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마저도 부정되던 시대였지만,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나름으로 민주화된 사회라고 국민들도 자부심을 갖던 시대라는 점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불법행위’라는 점은 20년 가까이 지났어도 달라진 게 없다. 발표 내용을 납득할 수 없다는 점도 똑 같다. 도대체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정보기관에서, 더군다나 김대중 정권 초기에 대대적인 인적 청산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상부의 허락 없이 실무자들이 사사로이 불법도청 조직을 운영하고, 불법도청 장비 개발을 지시하고, 외국에서 고가의 장비를 도입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2002년 정치권에서는 국정원의 휴대전화 통화 불법도청 문건이 나돌았고, 국정원의 해당 팀에 소속해 있지도 않은 중간 간부조차 국정원의 불법도청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는데, 국정원장과 대통령이 몰랐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마침내 2002년 3월 국정원장이 불법도청 장비를 폐기하고, 팀을 해체하라며 증거 인멸을 지시했다는데, 이때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을 누구에게 믿으라는 것인가? 국가 권력기관에 조직적 불법을 명령하고, 그 사실을 은폐한 중대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
뒷걸음질 치는 민주주의와 인권
이 사건은 우리가 왜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하고, 감시해야 하는지, 국가권력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교훈적인 사건이다. 권력 내부의 유착과 부패, 그로 말미암은 민주주의 후퇴의 가능성은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진전과는 관계없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우리는 그 보기를 민주주의 완성을 자부하는 미국의 석유재벌, 무기재벌, 언론, 정치인의 유착에서 잘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재벌과 언론과 권력의 유착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국가권력은 온갖 핑계를 들어가면서 권력을 강화하고, 세련된 통제와 감시 수단을 가지려고 한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전국민의 개인정보는 위치, 쇼핑, 통화, 이동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휴대전화 통화를 감청할 수 있도록 하고, 전국민의 휴대폰 통화 위치정보를 1년 동안 보관하게 하고, 인터넷 로그기록을 6개월간 보관하게 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시행령을 입법부의 눈을 피해 추진하고 있다. 테러방지법, 인터넷 실명제도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내세우는 논리는 ‘국가안보’, ‘테러위협 대처’, ‘질서유지’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는 자명하다.
국가의 무절제한 힘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권력집단의 유착과 부패가 더 심해지고, 그로 말미암은 남용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고, 감시의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권력의 통제는 더 절실하다. 이를 위해 분투하는 인권단체나 시민단체, 진보적인 정치세력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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