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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4 20:06 수정 : 2005.08.14 21:20

(주)싸이더스픽쳐스 대표

기고/차승재 영화제작자

요즘처럼 덥고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날씨에, 불쾌지수가 드높아가는 때에 숲 속에서 부는 바람처럼 시원한 뉴스가 있었다. 이번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쪽 당국과 민간 대표단이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한 것이다. ‘그래 맞아, 그렇게 해야지. 아무리 철천지원수라도 화해의 손을 내밀면 잡아야지.’ 뭐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현충탑에 향을 올리고 잠시 고개를 숙인 북쪽 대표단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쟁과 분단과 역사와 미래를 떠올렸을까? 이 단어 속에 담긴 인간의 피와 땀과 눈물과 대성통곡을 그들은 느꼈을까?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에서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헤어져 살아온 긴 세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라고도 할 수 있는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겠다고 결단을 내리진 못했을 것이다. 국립묘지 참배에 대해 북쪽 민간대표단의 안경호 위원장은 대결과 반목의 냉전의 때를, 과거의 관습을 해결하겠다는 결단으로 보아달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 결단을 높이 평가해야만 한다.

보수세력은 불안한가 낡아버린 언어로 왜곡말라
아무리 철천지원수라도 화해의 손 내밀면 잡아야지
평화로 가는 남북 꿈결같은 사건 통쾌하다

 그런데 남쪽 일부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이런저런 고약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나아가 8·15 민족대축전을 방해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목청을 높이고 있다. 90%가 넘는 네티즌들이 북쪽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를 긍정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는데도 이들은 끝까지 대결과 증오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은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으로 나가면 존재 자체가 불안해지는 모양이다.

 “참배를 위해 묘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죽인 시체를 구경하기 위해, 기만적인 적화통일 술책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현충원에 기어들려고 하는 것”, “8·15의 의미를 더럽히려는 자들이 감히 국립현충원에 발을 디딜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에 대해 일부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의도적으로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

이제는 갈등과 대립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에 고개를 숙인 북쪽 대표단의 모습은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6·15 시대의 상징으로 우리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다. 냉전체제의 눈높이로 변화된 남북관계를 보면,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탈냉전체제, 평화구축을 위한 눈높이로 남북관계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한다면,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마음을 움직이는 섬세한 숨결 속에 진실은 그 큰 모습을 숨기고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엄연한 현실마저도 왜곡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태도를 고수하면 갈등과 대립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적화통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비웃음을 사고 있다는 것을 보수세력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알고 있다. 낡아버릴 대로 낡아버린 언어로 아무리 선동해도 속지 않는 시대가 우리 곁에 와버린 것이다.

영화는 가끔 비현실을 마치 현실처럼 그려낸다. 반면에 현실이 영화보다 더욱더 비현실로 느껴질 때가 있다. 9·11 테러의 순간,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중의 하나가 바로 북쪽 대표단의 동작동 국립묘지 참배인 것이다. 어느 누가 상상이라도 했던가? 상상의 허가 찔릴 때의 통쾌함이 있었다. 비무장지대에 평화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발표와 같은, 꿈결 같은 사건들이 남북 사이에 자주 터졌으면 좋겠다.

영화제작자/㈜싸이더스픽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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