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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2 17:13 수정 : 2005.02.02 17:13

김대중 전 대통령이 2일 오전 연세대에서 '동아시아와 젊은 리더십'을 주제로 특별강연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현장] 연세대 특별강연 웃음 만발…죽음 위기도 유머로 승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미·일·중 네 나라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세대 리더십센터의 학생국제포럼 NEAN(Northeast Asian Network) 2005의 특별강연에서 특유의 ‘더듬거리는 달변’과 유머 감각을 유감없이 뽐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57분께 연세대 상경대 각당헌에 입장했다. 추운 날씨 탓인 듯 얼굴은 대춧빛으로 상기돼 있었다. 좌석은 물론 통로와 단상 앞 바닥까지 가득 메운 학생 1천여명이 큰 박수로 김 전 대통령을 맞았으며, 일부 나이 많은 청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도 했다.

양승함 연세대 리더십센터 소장은 김 전 대통령을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소개하며, “원래 전직 대통령 초청 시리즈를 기획했지만 학생들이 존경하는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며 “이번 강연은 연세대가 아니라 대학생들이 초청해 이뤄졌다. 우리가 초청했으면 안 오셨을 것이다. 아마 지난 선거때 대학생들이 김 대통령을 많이 찍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마이크 고장나고, 통역이어폰 안들리고…‘사고’ 속출

김 전 대통령은 밭은 기침을 몇번한 뒤 “날씨가 추워 감기에 걸렸다”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이크가 고장난 탓이었다. 주최쪽이 서둘러 마이크를 바꿔 달자, 김 전 대통령은 “많은 청중에 마이크가 압도된 것 같다”고 말해 일순 굳어진 분위기를 웃음으로 풀어냈다.

16절지 6장에 이르는 긴 원고를 30여분 가까이 읽어 내려간 김 전 대통령의 달변과 재치는 질의응답에서 더욱 빛났다.

첫 번째 질문자로 나선 미국인 여학생은 영어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북미 회담과 6자 회담’에 대한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20여초가 지난 뒤, 한쪽 귀에 통역이어폰을 낀 채 여학생의 얼굴을 진지하게 쳐다보던 김 전 대통령은 손가락으로 통역이어폰을 두드리며 한 마디를 날렸다.

“안들려.”

순간 각당헌 안은 뒤집어졌다. 젊은 대학생들은 ‘개콘’의 ‘사오정’이나 ‘웃찾사’의 한 장면을 보듯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진지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정치부 기자들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김 전 대통령 뒤에 앉은 정창영 연세대 총장의 얼굴뿐이었다.

주최 쪽은 또다시 서둘러 통역이어폰을 바꿨다. 그러나 결과는 또다시 ‘안들려’. 결국 여학생은 자기 이름부터 시작해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제급 콩글리시’로 통하는 김 전 대통령의 영어실력이라면 충분히 알아들을 수도 있는 수준의 질문이었다. 그러나 여학생의 말은 결코 느려지지 않았다. 사회자는 쓴 입맛을 다시며 직접 통역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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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아니되옵니다~” 사극 대사 흉내도

이어진 질문에선 소문난 독서광인 김 전 대통령의 요즘 소일거리가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대목이 여럿 발견됐다.

한 한국인 학생도 역시 영어로 “서구적 가치와 유교적 가치의 접목”에 대한 질문을 날렸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질문이 점점 어려워진다. 원래 연설문만 읽고 가버리면 좋은데…”라고 말해 청중을 또 한번 웃기더니, 동아시아의 민주적 뿌리를 설명하며 “텔레비전 사극을 보면 신하들이 ‘전하~ 아니되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며, 사극 대사를 실감나게 따라해 또다시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뒤이어 동아시아의 경제사를 얘기할 때는 “드라마 ‘해신’을 보면 장보고가 한·중·일 3국의 바다를 누빈다”며, 현재 한국방송에서 방영되는 퓨전사극 ‘해신’을 예로 들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달변은 ‘죽음의 위기’를 설명하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세계 다른 지역의 리더십과 동아시아 리더십의 차이’를 설명해 달라는 중국 학생의 ‘생뚱맞은’ 질문에 김 전 대통령은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해 질문한 학생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가더니, 곧바로 리더의 ‘이상과 현실 감각’에 대한 긴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김 전 대통령은 “이상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을 지키면 손해를 보고 때로 목숨을 잃을 때가 있다. 내 이야기를 해 죄송하지만 나는 일생에 5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말해, ‘인동초’로 상징되는 자신의 과거를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듯 했다. 당연히 박수가 터져나왔다.

“재판장 입나오면 무기형, 찢어지면 사형…입모양만 봤다”

그러나 상황은 곧바로 바뀌었다.

“한번은 6·25때 공산주의자 손에 죽을 뻔했다가 탈옥해 살았고…(청중 진지) 다음은 정식으로…죽을 때 정식은 없지만…”(웃음)
“80년 신군부 고위층 인사가 감옥에 있는 나를 만나러 왔다. 그는 ‘협력하거나 죽어주든지 해야겠다. 재판은 요식행위다. 죽지말고 협력하라’고 내게 말했다…(청중 진지) 저도 죽는 것은 겁났다.”(웃음)
“많은 생각을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바르게 살자’고 결심했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당신과 협력하면 지금은 살겠지만 국민과 역사 속에 영원히 죽을 것이다.(청중 박수) 그러나 당신과 협력하지 않으면 지금은 죽더라도 국민과 역사 속에 영원히 살 것이다.(청중 진지)…큰 소리는 쳤지만 살고 싶어서…”(웃음)

자신의 죽을 뻔한 위기를 웃음의 경지로 승화시키며 청중을 좌지우지한 김 전 대통령의 달변은 절정에 이른 듯 했다.

“큰 소리는 쳤지만 살고 싶어서 재판장에서 재판관 입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기징역만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기만 받으면 언젠가는 나올 테니까. 왜 재판관 입을 쳐다봤냐하면, ‘무’하면 (재판관) 입이 (앞으로) 나온다. 사형의 ‘사’하면 (재판관) 입이 (옆으로) 찢어진다. 입이 ‘나오면’ 살고 ‘찢어지면’ 죽는다.”

절박한 생존의 갈림길이 ‘나오면 살고 찢어지면 죽는다’는 말로, 그렇게 웃음으로 넘어갔다.

“국민보다 반걸음 앞서 손잡고 가는 지도자 돼야”

김 전 대통령이 겪어야 했던 죽음의 순간들을 웃어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각당헌을 채운 1천여명의 대학생들은 역사의 중력과 자장을 벗어 던질 수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지도자가 아무리 좋은 생각과 이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오지 못하면 소용없다”며 “국민보다 반걸음 앞서 국민의 손을 잡고 설득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강연에 참석한 대학생들은 딱딱하기만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뜻밖의 웃음을 선사한 김 전 대통령에게 아낌 없는 박수로 화답했다. <한겨레> 사회부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강연 전문] 동아시아와 젊은 리더십

존경하는 정창영 총장과 교수 여러분, 젊은 지도자 여러분,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연세대 리더십센터 특강’과 ‘동북아네트워크(NEAN) 포럼’에 참석하신 젊은 지도자 여러분과 더불어 ‘동아시아와 젊은 리더십’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2005년은 동아시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입니다. 첫째 금년은 이 지역의 평화를 가늠할 북한 핵문제 해결의 고비가 될 것입니다. 둘째 금년에는 한·중·일 동북아시아 3국간 또는 동북아시아 3국과 동남아시아 국가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을 위한 튼튼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셋째 이와 더불어 금년 12월 말레이시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리게 됩니다.

먼저 한반도 평화와 북한 핵문제 해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 핵문제는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가장 긴박한 과제입니다. 이 문제야말로 동북아시아에 있어 평화냐 파국이냐를 결정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 핵을 단호히 반대합니다. 북한의 핵 보유는 남한과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위배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진행중인 6자회담은 꼭 성공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6자회담 내에서건 직접대화이건 관건은 북미간에 해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완벽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주고 받는 협상을 할 때 비로소 북핵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나는 2000년 6월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북한의 안전과 경제재건이다. 세계에서 이 일을 해 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해야 한다.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미국에 당신의 뜻을 전달 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김정일 위원장의 동의를 얻어 서울로 돌아와 클린턴 대통령과 직접 전화통화를 해서 북한의 의향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의 실질적 제2인자격인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하여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고,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양국간에 국교정상화 원칙에 합의하고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으로 미사일 문제까지 최종합의하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말에 있었고 중동평화문제 등으로 북한을 가지 못한 채 정권교체가 된 것입니다. 새로 들어선 부시 정부는 클린턴 정부와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북미관계는 진전되지 못하고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으로 들어가고 또 북한 핵문제까지 대두되어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북한은 지금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 국제적으로나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과 관계개선만 이룰 수 있다면 핵을 완전히 포기할 것으로 믿습니다.

북한은 지금 제2의 중국이 되고자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는 시장경제를 실현하여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필수불가결합니다. 이것 없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고 외국으로부터의 투자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도 받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관계개선에 대한 전망만 확실하다면 핵을 완전히 포기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 내에서는 지난 4년 동안 북한과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는 세력과, 강력한 제재정책을 주장하는 세력간의 견해 차이가 있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 뚜렷한 반대급부의 입장이 제시되지 않은 채 4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의 ‘국민의 정부’와 현 ‘참여정부’는 계속해서 미국에 대하여 북한과 대화를 통해서 양측의 요구를 주고 받는 일괄타결을 주장해 왔습니다. 나는 내가 재임했던 임기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의 안전보장과 경제제재 해제를 실현함으로써 핵문제는 원만히 해결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이런 나의 생각을 미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관계 국가에 충분히 전달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중요한 우방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안보와 경제적 발전 그리고 국제사회의 진출을 위해서 미국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미안보동맹은 한미 양국에 다같이 도움이 되는 윈윈의 협력체제입니다. 우리는 또한 미국의 북한 핵 보유 반대 정책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북한 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어떠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냐에 대해서 한국의 의사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반도는 우리의 땅일 뿐만 아니라, 북한 핵은 우리 민족의 생명과 재산의 안위가 달려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주고받는 평화적 협상으로 핵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만큼 어떠한 강경조치나 무력행사에 대해서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미국은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소련과 40여 년 동안 냉전을 치르고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소련과 대화하고 데탕트 정책을 추진해서 개방과 개혁으로 유도함으로써 성공했습니다.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했던 공산 대제국이 외부에서 총 한방 쏘지 않고 스스로 무너지는 기적 같은 성공을 가져왔습니다. 동구라파도, 동독도 그러했습니다. 미국은 중국과 한국 전쟁 이래 극한대립을 했지만 아무 변화도 못 시켰습니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모택동을 만나고 국제사회의 진출을 유도함으로써 등소평이 등장하고 오늘과 같은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베트남과는 전쟁까지 했지만 오히려 패배했습니다. 미국은 지금 외교와 교역을 통해서 베트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아주 상징적인 것은 쿠바입니다. 미국은 바로 눈앞에 있는 쿠바를 50년 동안 봉쇄했지만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미국이 얻을 교훈은 명백합니다. 공산국가는 압박하고 고립시키면 더욱 강해지고 대화하고 개방으로 유도하면 스스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점을 부시 대통령에게도 말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미국은 공산국가를 다뤄온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2월 서울을 방문하여 나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고 하면서도 대화를 했다. 나도 북한과 대화하겠다.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 그리고 식량을 지원하겠다.”

나는 그때 부시 대통령의 이러한 말씀을 매우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후의 상황은 기대만큼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제2기의 임기를 시작하는 부시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참여국 특히 직접 당사자인 한국과 긴밀하게 협력해서 북한과 대화 속에 주고 받는 협상을 성공시켜 올해가 한반도 평화 실현의 해가 되도록 결단을 내릴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다음에는 동아시아의 역사적 발전과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1세기는 세계화와 지역화가 병행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주에서는 미국 중심의 NAFTA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유럽은 역사상 최대의 공동체인 EU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동아시아에서도 공동체의 기운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금년 12월 말레이시아에서 제1회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려 동아시아의 공동체 형성에 대한 정치적 논의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역사적인 일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 재임시 1998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3 회의에 참석하여 동아시아정상회의(EAS)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우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동아시아비전그룹(EAVG)을 결성할 것을 제안해서 채택된 바 있습니다. 그후 동아시아 각국은 논의를 거듭한 끝에 2003년과 2004년에 서울과 말레이시아에서 동아시아포럼(EAF)을 개최했습니다. 저는 그 회의에 모두 출석하여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동아시아는 NAFTA, EU에 비해서 손색이 없는 지역공동체를 형성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역내 교역비율은 전체 교역량의 52%를 차지합니다. NAFTA는 46%, EU는 62%입니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교역에 있어서 한·중·일 동북아 3국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중·일 3국은 선도자 또는 동반자가 되어 아세안 국가와 긴밀한 협력 속에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고 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정보기관 협의체인 국가정보위원회(NIC)는 21세기는 중국과 인도 중심의 아시아 시대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이라고 해도 그것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국은 7세기 당나라 이래 19세기 중엽 아편전쟁에서 패배할 때까지 언제나 세계 최대의 GDP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1842년 중국의 GDP는 세계 전체의 27%였고, 인도는 14%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5%였습니다. 영국, 독일, 미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이 된 것은 근자 150년 정도입니다. 이제 다시 아시아의 시대가 오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동아시아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에서 많은 다양성과 여러 가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는 지금 매우 안정되어 있고 서로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ASEAN+3, APEC, ASEM, ARF 등을 통해서 동아시아와 미국을 포함한 태평양 연안 국가 그리고 유럽 국가들이 정치, 경제, 외교 문제 등에서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우 긍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아직 동아시아 지도자들 사이에서 공동체 발전을 위한 열정과 비전을 가지고 선두에서 노력하려는 경향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EU의 성공도 1950년 ‘슈망-아데나워 선언’과 같은 선견지명을 갖춘 지도자들의 계속된 노력의 성과라 할 것입니다. 국민의 지지, 탁월한 지도자의 리더십, 이 두 가지가 결합하여 기적과 같은 대 EU를 만들어 냈습니다.

동아시아 국민들은 아시아가 다시 영광의 시대를 되찾을 것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레이시아 회의를 계기로 동아시아 지도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은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발전의 필연이고 동아시아 국민들의 열망이자 공동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동체 실현을 위한 노력은 인도 등 남아시아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젊은 지도자 여러분들은 앞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에 각별한 관심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공동체를 이룬 동아시아는 여러분의 미래에 찬란한 꿈과 희망을 안겨줄 것입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마지막으로 리더십 문제에 대해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 시대나 국가의 발전은 역사적 필연성과 국민의 열망 등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탁월한 지도자의 출현입니다.

시이저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없었다면 대로마제국의 형성은 어려웠고 팍스 로마나의 평화의 축복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시황이나 한고조가 없었다면 중국이 서구사회보다 2000년이나 앞서서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근대적인 군현제도를 실현시키는 일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관용을 주장한 링컨의 신념과 희생이 없었다면 미국이 남북의 두 나라로 갈라지는 것을 막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처칠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정복의 칼날을 무찌르고 영국과 유럽을 구하는데 훨씬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떠한 민주국가라도 다수 국민의 열망을 집결해서 정책화하고 이를 실천하는 선도적 역할을 하는 지도자가 없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는 회사나 정부기관 등 모든 조직에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성공한 지도자는 어떠한 덕목을 갖춰야 합니까?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아울러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과 이상을 간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냉철하고 세심한 계산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풀고 실천해 나가는 실사구시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상에 치우치면 현실과 유리된 공허에 흐르게 되고, 현실에 치우치면 타락과 실패의 길로 가기 쉽습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동전의 양면과 같은 필수 불가결의 덕목입니다.

21세기는 지식기반 경제의 시대입니다. 인류는 그 출현 이래 다섯번의 혁명을 겪었습니다. 첫째는 400만년 전의 인류의 탄생이요, 둘째는 1만년 전의 농업경제의 실현입니다. 셋째는 5천년 전의 도시국가의 형성이며, 넷째는 2,500년 전의 사상혁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는 19세기 후반의 산업혁명 시대의 출현입니다.

그리고 이제 21세기와 더불어 세계는 여섯번째의 지식기반 경제혁명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은 발전하고 세계화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5년 후가 어떤 세상이 될지 10년 후가 되면 어떤 세상이 될지 예측하기 힘듭니다. 유사 이래 최대의 격변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젊은 지도자 여러분이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 실현의 대열에 동참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식의 세기, 첨단기술의 세기, 세계화의 세기 속에서 21세기 신지식인이 되어 세계로 나아가고 세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계와 경쟁하고 세계와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 평화와 번영과 협력의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젊은 여러분의 특권이자 사명입니다.

동시에 젊은 지도자 여러분이 깊이 명심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세계의 질병과 빈곤에 관한 문제입니다. 세계 60억명 인구의 약 20%의 사람들이 하루 1불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12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 극빈층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2년에는 5세 미만의 어린이 약 2천만 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98%가 저개발국가에서 발생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에이즈가 창궐하고 있고 말라리아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중남미 지역에서 빈곤의 바다는 넓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빈곤과 질병에 절망한 사람들이 분노의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세계는 결코 안전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공염불이 될 것입니다. 모든 테러의 배후에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빈곤문제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가난에 절망하고 분노한 사람들이 테러에 협력하고 테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빈곤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세계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평화도 번영도 누릴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젊은 지도자 여러분!

한반도의 핵문제가 대화 속에 평화적으로 해결되도록 주장하고 협력합시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실현되어 20억 명의 사람들이 안정과 공동의 번영 속에 행복을 누리는 아시아의 시대를 만드는데 적극 동참하고 선도합시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갖춘 리더십과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신지식인이 되어 번영과 빈곤퇴치의 선도자가 됩시다.

역사는 여러분에게 인류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소명을 부여하고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건승과 성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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