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15 15:00
수정 : 2018.08.1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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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에서 고공농성중인 강주룡.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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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경축사서 “여성들, 가부장제와 불평등 속에서도 불굴의 독립운동”
“일제의 임금 삭감에 반대해 여성, 노동해방 외친 을밀대의 강주룡”
1932년 일제의 수탈에 맞서 해녀항일운동 이끈 5명의 해녀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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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에서 고공농성중인 강주룡.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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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친일의 역사는 결코 우리 역사의 주류가 아니었다”며 독립투쟁에 대한 자긍심을 강조하면서, 특히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역할과 헌신을 부각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며 1931년 일제의 임금 삭감에 반대해 을밀대 지붕에 올라 여성, 노동해방을 외쳤던 평양 평원고무공장 여성노동자 강주룡과 1932년 제주에서 일제의 착취에 맞서 항일운동을 벌인 고차동·김계석·김옥련·부덕량·부춘화 등 5명의 해녀들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평양 평원고무공장의 여성노동자 강주룡”은 한국 최초의 여성노동운동가로 불리는 인물이다. 문 대통령은 그에 대해 “1931년 일제의 일방적인 임금삭감에 반대해 높이 12미터의 을밀대 지붕에 올라 농성하며,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외쳤습니다“ “당시 조선의 남성 노동자 임금은 일본 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조선 여성노동자는 그의 절반도 되지 못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저항으로 지사는 출감 두 달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지만,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라고 소개했다.
평북 강계에서 태어난 강주룡은 서간도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이 숨진 뒤, 평양에서 평원고무공장 여공으로 일하며 가장 역할을 했다. 1929년 대공황으로 고무공업이 타격을 입자, 공장주들은 임금 인하를 결의했다. 1930년 8월1일 평양고무공업조합이 임금 17% 삭감을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고하자, 노동자들은 일제와 그에 결탁한 자본가들을 비판하며 반대투쟁을 일으켰다. 파업을 주도했던 강주룡은 일제 경찰의 간섭으로 공장에서 쫓겨나자 을밀대 노동생활의 참상을 호소하며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로 인해 1주일의 구류처분을 받자 54시간 단식을 결행했다. 강주룡은 투옥 중 건강이 악화돼 보석 출감되었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출감 두 달 만에 서른두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박서련의 소설 <체공녀 강주룡>은 겹겹의 굴레에 맞선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으로 그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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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련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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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연설에 등장한 또다른 여성 독립운동은 1932년 제주에서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해녀 대표 5인의 주도로 시작된 해녀 항일운동(제주잠녀항쟁)이다. 식민통치를 시작한 일본 어업기업가들의 남획으로 제주를 비롯한 국내 어장들이 황폐화됐고, 1930년대 들어 해녀들에 대한 일제의 수탈이 더욱 심해졌다. 일본 물산회사 등은 어용 해녀조합과 결탁해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매입했다. 해녀들은 이에 반발해 2차례 항의서를 제출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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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춘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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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1월7일부터 제주 구좌읍 해녀들은 호미와 비창을 들고 장터까지 행진하며 시위에 나섰다. 이들의 투쟁은 3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연 인원 1만7000여명이 참가했다. 해녀 수백명은 만세를 부르고 집회를 열고 연설을 했으며, 해녀 대표 20여명은 지사와 직접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항쟁을 주도한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등은 고문을 당하고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이 쓴 소설 <바람 타는 섬>(1989)은 이들의 투쟁을 다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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