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13 18:01
수정 : 2006.02.1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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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에 근적외선을 쬐면 내부 분자들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스펙트럼이 달라진다. 이런 원리를 이용한 청과물 선별기가 당도가 높은 토마토만 골라 상자에 담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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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적외선 쬐면 과육 분자운동
스펙트럼 분석 당도 알아내
시간당 1만개 처리 9배 빨라
맛있는 귤을 고르려면? 만졌을 때 물렁물렁한 것을 선택하면 된다. 당도가 높으면 점성도가 높아져 끈적거려서다. 하지만 요즘 이런 비결을 몰라도 된다.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감귤은 모두 농협 집하장 등에서 당도를 측정해 선별·출하되기 때문이다. 모든 작물의 생장 필수 조건인 빛은 현대 농법에서는 ‘쟁기’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근적외선으로 과일 고르기=농촌진흥청 농업공학연구소는 근적외선을 이용한 청과물의 비파괴 선별기를 개발하고 있다. 이 기계는 근적외선을 과일에 쬐어 투과나 반사되는 빛의 스펙트럼을 이용해 당도와 내부 결함 등을 선별해낸다. 근적외선은 가시광선에서 빨간색 바깥에 있는 파장이 770~5000나노미터(㎚·10억분의 1m)인 빛이다. 과일에 근적외선 영역의 빛을 쬐면 과일 내부의 분자들이 그 특성에 따라 다양한 분자운동을 일으키고 이 분자운동에 의해 발생되는 스펙트럼을 분석해 과일의 당도 등을 알아낸다. 이 방식을 쓰면 시간당 1만개 이상의 과일을 선별해낼 수 있어 사람보다 9배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농업공학연구소는 도시락 만한 ‘배 당도·숙도 판정기’를 개발해 시판을 준비하고 있다. 판정기 센서를 배에 갖다 대기만 해도 당도가 바로 측정된다.
분광기에 GPS부착 생육측정
땅·작물에 쬐어 화합물 분석
‘맞춤시비’ 로 땅심·밥맛 돋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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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농업기계화연구소 직원들이 시험장에서 분광을 이용한 생육측정기로 작물들의 건강상태 등을 관찰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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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농사짓기=빛은 작물을 재배하는 데도 이용된다. 식물은 태양 빛을 받으면 초록과 근적외선 영역은 거의 다 반사해버리고, 청색과 적색 영역은 엽록소가 흡수해 광합성을 하는 데 이용한다. 우리 눈에 작물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이유다. 건강한 식물은 가시광선을 조금 반사하고 근적외선을 많이 반사하는 데 비해 죽은 식물은 가시광선을 많이, 근적외선을 조금 반사한다. 이를 이용해 예전에는 ‘색표’를 가지고 다니면서 초록의 강도를 관찰해 작물에 비료를 얼마나 줄지를 결정했다. 1980~90년대에는 초록과 적색 파장대에서 질소함량 차이에 따른 반사강도의 차이가 뚜렷한 점을 이용해 식물의 발육 상태를 측정해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광센서가 많이 필요하고 구름이 끼면 광양과 광질이 달라져 편차가 큰 단점이 있었다. 근래 들어서는 분광기를 이용한 측정기가 개발돼 좀더 정밀한 측정이 이뤄지고 있다. 농촌진흥청 농업기계화연구소의 성제훈 박사는 분광기를 이용한 식물 생육측정기에 위성항법시스템(GPS)을 부착해 ‘똑똑한’ 기계를 만들어냈다. 분광은 빛을 파장에 따라 배열한 스펙트럼을 작은 파장대 단위로 쪼개는 것을 말한다. 물질에서 방출하는 스펙트럼과 흡수하는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성분원소나 화합물의 종류와 양을 알 수 있다. 가령 작물이 생육단계에 필요한 질소량이 5㎏인데 분광기로 분석해 땅에 1㎏이 있고, 잎사귀에 3㎏이 들었다면 부족분 1㎏만 더 주면 된다. 질소를 많이 주면 땅속으로 스며 오염되거나, 작물이 더 흡수하면 쉬 넘어진다. 위성항법시스템으로 땅을 잘게 쪼개어 질소량을 측정하면 같은 논이나 밭이라도 부분부분 비료 주는 양을 조절할 수 있다. 우리나라 벼에 권장되는 질소비료 시비량은 10a(300평)에 7㎏이다. 그러나 실제 뿌려지는 비료는 평균 15㎏에 이른다. 성 박사는 “비료를 많이 주면 일시적으로 수확량은 늘어나지만 밥맛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나 미래에 수입쌀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며 “분광을 이용한 식물 생육측정기를 지난해 농진청 시험장에서 실험한 결과 2~3년 뒤면 실제 농업에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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