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23 21:29
수정 : 2006.03.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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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스위스 취리히에 세워진 취리히연방공과대학(ETHZ) 본관 건물. 당시 스위스 칸톤 대표들은 베른을 수도로 정하는 대신 취리히를 교육도시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취리히연방공대는 2004년 <더 타임스>의 세계대학평가에서 10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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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대학도시로 지속가능 발전 꿈꾼다
스위스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 하느님께 빌었더니 하늘에서 소와 양이 한마리씩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다. 이 소와 양을 잘 키워 스위스는 치즈의 나라로 발전했다. 이 전통적 낙농국가는 한때 1인당 국민소득 1위의 최고 공업국으로 성장했지만, 20여년간 성장률이 둔화하고 2002년부터는 경기 침체까지 이어지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방안 찾기에 나서고 있다. 개혁의 한 가운데는 스위스 과학기술의 본산인 취리히연방공과대학(ETHZ)과 로잔연방공과대학(EPFL)이 있다. 지난주 찾은 취리히연방공대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사이언스파크나 스웨덴의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를 본보기로 주거지와 학교와 연구소가 어우러진 ‘사이언스 시티’를 추진 중이었다. 이들 대학은 또한 대학의 세계화인 ‘볼로냐 개혁’(볼로냐 선언)을 도입해 ‘국경 없는 대학’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었다.
20년간 성장경제 스위스 과거영광 회복 몸부림
학교·집·연구소 합친 ‘사이언스시티’ 가 새 동력
전세계 학생에 ‘러브콜’…대학 세계화도 추진
사이언스 시티 스위스에는 대학이 27개가 있다. 연방정부가 100% 재원을 조달하는 2개의 공대와 우리의 광역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칸톤(주) 단위의 10개 대학, 그리고 7개 응용과학대학이 존재한다. 두 공대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쿠르트 뷔트리히(2002년 화학상) 등 노벨상 수상자를 21명이나 배출한 ‘유럽의 MIT’로 불리는 명문대다.
취리히공대는 5억 스위스프랑(약 3800억원)을 투자해 대학 본부에서 8㎞ 떨어진 홍게르베르크 지역에 ‘지속가능한 대학 도시’인 사이언스 시티를 2010년 완공을 목표로 조성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미트 취리히연방공대 부총장은 “교육과 최첨단 연구, 사회와 산업이 함께 어우러진 독특하고 역동적인 대학도시를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이언스 시티의 목표는 취리히를 지식의 도시로, 스위스를 미래세대를 위한 과학과 교육의 국가로 자리잡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은 자동차가 없는 구역, 이산화탄소 배출이 제로인 지역으로 만든다는 의미라 한다. 완공 뒤 연면적 60만~70만㎡의 건물들은 모두 하나의 망으로 연결된다. 시민들의 주거지와 대학 건물, 기업체 연구소가 함께 어울려, 심도 있는 과학이 24시간 진행되는 대학도시라는 설명이다. 슈미트 부총장은 “사이언스 시티는 과학적 토론 수준이 한단계 향상된, 시민들이 연구자에게 직접 와서 질문도 하고 제안도 하는 새로운 사고문화를 정착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학 쪽은 취리히공대 출신인 우르스 홀체가 부회장으로 있는 구글 유럽본부가 지난주 사이언스 시티에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역시 동창인 기업가 브랑코 바이스가 2300만 스위스프랑(170억여원)을 기부해 한층 고무돼 있다.
그러나 사이언스 시티의 성공 여부는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인재들을 영입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취리히공대는 학기당 등록금 40만원, 기숙사비 30만원이라는 저렴한 학비로 세계의 우수 학생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다.
볼로냐 선언 스위스는 4개 언어가 국어인 독특한 나라다. 세계화 시대에 아직도 제1외국어를 무엇으로 할지를 놓고 논쟁 중이다. 칸톤 단위의 철저한 분권화는 연방정부에 취학연령, 의무교육 기한, 학위 등에 대한 결정권 등을 맡기자는 교육개혁안을 계속 겉돌게 하고 있다. 오는 5월 이 안은 국민투표에 붙여질 예정이다. 하지만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의 상징인 국민투표는 100년 동안 단 4건만 통과한 터여서 결과는 불투명하다.
스위스 교육당국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보다도 고등교육 체계가 프랑스 등 유럽국가나 북미권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유럽국가들도 마찬가지여서 29개국 교육부장관들이 이탈리아 볼로냐에 모여 2010년까지 각국 대학을 ‘공존가능하고 비교가능한 구조로 만들자’는 이른바 ‘볼로냐 선언’을 했다. 이 개혁안은 우리 대학체제와 같은 학사·석사의 이원화를 기본으로, 학점제를 도입해 학사는 3년간 180학점, 석사는 1.5~2년간 90~120학점을 이수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수잔 오베르바이어 스위스대학총장협의회 볼로냐협력국장은 “스위스에서는 일반대학의 경우 중간단계 없이 바로 석사를 따고, 응용과학대학에는 석사과정이 아예 없었다”며 “올해 가을학기부터는 모든 대학이 볼로냐시스템을 시작해 내년에는 모든 학생들이 이 체제로 공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리히·로잔/글·사진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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