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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선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왼쪽)과 블라디미르 드 세미르 세계과학커뮤니케이션회의 의장이 17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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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선〈과학문화재단 이사장〉 대담 제9회 세계과학커뮤니케이션회의(PCST-9)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막을 올렸다. 과학 및 과학자와 일반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세계 40여 나라 과학커뮤니케이션 관련자들이 모여 19일까지 토론을 벌인다. 스페인 명문 폼페우 파브라 대학에서 과학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있는 블라디미르 데 세미르 세계과학커뮤니케이션회의 네트워크 의장과 공동조직위원장인 나도선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을 17일 행사장에서 만나 이번 회의의 특성과 의미를 들어봤다. -세계과학커뮤니케이션회의는 어떤 행사인가? 나도선 이사장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와 일반 대중들 사이에 아직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일반 대중은 과학에 대해 정확히 들을 권리가 있고, 또 과학자들은 정확히 말해줄 의무가 있다. 황우석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소홀했던 이 부분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은 과학과 일반대중의 간극 좁히려는 노력” 과학은 ‘유니버설 랭귀지’다. 또 과학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을 사실상 지배한다. 앨빈 토플러도 얘기했지만 지식이 힘의 원천이다. 과학기술에서 소외되는 과학문맹 없이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과학 용어, 개념을 이해할 수 있고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세미르 교수 과학을 적용하고 응용하는 데 있어 문화와 지역, 국가별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부분들에 대한 공유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피시에스티 네트워크가 구축됐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적용사례를 공부하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로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은 아직 대중들에게 생소한 단어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도선 한국은 문맹률이 낮고 교육열이 매우 높은 나라다. 하지만 최근 몇년 동안 과학기술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과학은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큰 문제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은 사회 양극화 문제의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미르 시민과 젊은 사람들이 과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건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적 경향이다. 우리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우선 과학커뮤니케이션이 ‘삶의 방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넘어오면서 지식을 보유하고 제대로 적용하는 사람이 더 나은 일자리에서 더 높은 수익을 올리게 됐다. 또 그 지식을 통해 민주적이고 건설적인 사회참여로 더 높은 시민의식을 발휘할 수 있다. 가령 연구비 책정의 우선순위를 두고 어떤 프로젝트를 후원할지는 정치인들이 결정하겠지만, 그 결정에 시민들이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참여해 정치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시민들에게 이런 지식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하나의 현대적 사조’라고 해석했는데? 세미르 젊은이들에게 비치는 과학의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다. 이들은 신문보다 라디오나 비디오 매체를 보고 사회에 대한 생각을 형성한다. 이들 매체를 통해 과학자가 되면 오랜 기간 연구만 해야 하고 연구비 확보도 어렵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전달된다. 이는 세계적인 경향이다. 텔레비전 등에서 과학자들의 성공적인 이미지, 과학자들의 보람과 성취감을 전달할 수 있다면 과학이 매력적인 분야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도선 과학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어떤 선을 넘어가면 과학은 쉬운데 너무 어렵게만 가르쳐 중간에 주저앉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현대에는 영상을 이용한 교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러 기술을 이용해 만져보고 경험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한국은 지난해 ‘과학적 부정행위’ 홍역을 한 차례 치렀다. 이 사건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과 희망은 무엇인가? 세미르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고 과학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이를 포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리 과학자라도 타인이 이룩한 연구 업적에 함부로 토를 달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이언스·네이처라도 무조건 신뢰 말고 비판적으로 봐야” 언론도 분명 책임이 있다. 〈사이언스〉 〈네이처〉를 대표적 과학잡지로 꼽는데, 이 잡지들도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큰 건 터뜨리기 경쟁을 한다. 때때로 과학자들에게 압력도 넣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잡지에 연구성과가 게재되면 무조건 신뢰한다. 다른 과학자들도 사전에 알아내기 어려운데 기자들이 더 빨리 오류를 잡아내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항상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미디어들은 큰 건 터뜨리기 경쟁하기보다 ‘생활 속의 과학’에 더 충실했으면 한다. 즉 삶의 공간을 개선시키는, 생활과 밀착된 과학에 더 관심을 갖고 보도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보도는 너무 부족하다. 나도선 기자들이 비판적 시각으로 보기보다 과장해서 보도하는 측면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암 치료제 연구 성과가 〈사이언스〉에 실렸다고 하자. 그러면 기자들은 ‘암 치료제가 몇년 이내에 나오냐’ ‘돈은 얼마나 벌 수 있냐’고 묻는다. 미디어가 대중의 마인드와 영합하고 대중의 주목을 원하는 과학자까지 있으면 상당히 위험한 상태까지 간다. 이런 상황을 막아야 하는 언론의 어깨가 무겁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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