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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05 17:13 수정 : 2006.07.05 17:13

로플린 카이스트 총장 14일 임기만료 앞두고 기자회견
“한국서 갈등원인은 과학아닌 정치적 소통, 노조와 사회주의”

“한국인들과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교육자들과 과학자들에게 현 시대는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있었던 갈등의 원인은 과학·물리 따위가 아닌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이 문제였습니다. 또한 노조와 사회주의(소셜리즘)의 문제였습니다.”

14일 임기가 끝나는 로버트 로플린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원장은 5일 최근 발간한 <한국인, 다음 영웅을 기다려라>(한스미디어) 출판기념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은 기자회견 전문이다.

-책을 쓴 배경은?

=한국인들과 대화하고 싶었다. 4~5월에는 연임에 대해 말이 많았던 시기였고 과학기술부에서 대외적으로 의견을 표명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다. 나는 당연히 상급기관의 권고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 기간 동안에 대신 책을 써서 한국인들에게 내 생각을 알리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강의를 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위한 책이다. 한국 독자가 책을 잃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 생각에 공감하는지, 아니라면 어떤 의견이지도 듣고 싶다.

-한국과 카이스트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한국에 부임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미래와 현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카이스트와 나와의 관계는 ‘비즈니스’ 관계였다. 정치적인 입김도 많이 작용했지만 비즈니스 관계였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매우 긍정적이다. 카이스트와의 비즈니스 관계는 종결됐다는 것 이외의 나쁜 감정은 없다. 퇴임 뒤에도 자문 역할을 맡도록 얘기가 되고 있는데, 신임 총장과의 대화로 결정될 것이라 생각한다. 상황을 봐서 수락하고 싶다. 또 기회가 되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

“교육자는 교육(educate)을 해야지, 훈련(train)시켜서는 안돼”

-책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교육자들과 과학자들에게 현 시대는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교육자들은 다방면에 식견이 넓어야 하고 사람들을 교육(educate)해야 하지, 훈련(train)시켜서는 안 된다. 나는 물리학자로서 훈련 받았지만 살다보니 글도 쓸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 있었던 갈등의 원인은 과학, 물리 따위가 아닌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이 문제였다.

한국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데 갈등이 있었다. 책을 통해 교육자와 시장에 주고 싶은 메시지는 넓게 생각하고 한 부분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정부에 너무 의존하지 말았으면 한다.

-카이스트 총장에서 물러난 뒤 어떤 계획이 있나?

=많은 사람들에게 카이스트 총장직 이후를 질문 받는다. 카이스트 부임 전의 국제적 삶(International life)으로 돌아가겠다. 카이스트에 총장으로 부임한 것도 정치적 야망으로 온 게 아니다. 과기부에서 나를 필요로 해 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총장직 재임하면서 과학적 삶과 가족들을 뒤로 하고 총장직을 수행했다. 한국에서 있었던 시간들은 나에게 여가가 아닌 힘든 일이었다. 미국 동료 과학자나 중국, 일본 등에서 자란 친구들도 왜 이곳에 왔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정부가 부르면 ‘네, 알겠습니다(Yes, sir)’라고 대답하는 게 가장 좋은 거라고 말해줬다.

-카이스트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하자면?

=한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인들이 ‘위대한 사람(great man)이 와서 우리를 구출해주기를 바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은 해결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 거다. 카이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와 교수들 사이에 누가 카이스트라는 기관을 소유하느냐에 하는, 누가 주인이냐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다른 나라의 국공립대학에서도 소유권 문제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더 심하다. 아직도 해결을 못하고 있는데, 법적 제도 기반이 미비해서라고 생각한다. 서남표 엠아이티 석좌교수가 카이스트 차기 총장으로 임명됐다. 교수들은 반대했다. 이걸 보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거다. 카이스트를 어떻게 할지, 시스템을 어떻게 잡을지는 외부인이 아닌 여러분의 몫이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일의 책임은 한국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도 책을 쓴 목적 가운데 하나다. 차기 총장이 학교를 개선시키고 발전시킨다면 한국에서 있었던 기간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카이스트가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한국은 한국민 생각 이상으로 선진국에 근접해 있다”

-책 제목을 Looking for a hero라고 했는데?

=한국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 있다. 그럼에도 커다란 영웅을 기다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영웅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바로 한국인들 자신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카이스트와 겪었던 갈등의 예를 들어달라.

=총장 부임하기 전에 학장들 사이에 열린 비밀 회의가 있었다고 들었다. 내용은 예산과 관련해 내가 일정 금액 이상은 결재를 못하도록 못박는 거였다. 따라서 어떤 결재서류도 받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카이스트는 학부모들에게 학교 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한 학기 80만~100만원씩의 돈을 학부모에게 걷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부임한 지 4개월이 지나도록 몰랐다. 카이스트 설립특별법의 규정을 보면 카이스트 대학생들에게는 수업료를 걷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학교 발전기금이라고 이름만 바꿔 돈을 걷었다. 이렇게 조성된 70억원 정도의 기금이 있다는 걸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다른 장부에 따로 기록한 것 같다.

이런 기금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사용내역이 공개돼 있지 않아 학생들도 불만이라는 걸 알았다. 학생 대표를 만나 학생들에게 탄원서를 받으라고 했다. 탄원서를 냈더니 그제서야 사용내역을 밝혔는데, 돈의 일부가 교수들의 봉급(compensation) 명목으로 지급되고 있었다. 학생들이 ‘이건 불법’이라고 하더라. 비슷한 예는 이것 말고도 많다. 이런 문제들을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는 신문 등 언론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부임전 비밀 학장회의서 로플린이 일정금액이상 결제못하게 막아”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내가 한 일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카이스트의 모든 학생을 중국에 교환학생 보내려고 했었다.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과학지식보다 언어습득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한글로만 발행되던 카이스트 신문을 영문으로도 발행하게끔 했다.(http://times.kaist.ac.kr) 또 시장성 없고 정부 예산만 까먹는 프로그램을 중단시켰다. 카이스트 국제화 기금으로 지난해에 200억원을 정부로부터 받았다. 내가 나서서 국회를 설득했기 때문에 그런 금액의 액수를 받을 수 있었다. 연구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전공들에 대해 압박을 가했다. 성과를 내지 않으면 공경에 처할 것이라고. 한국 최초로 교내에 법률 자문가도 뒀다. 개인적으로 교수들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았다. 또 카이스트 테크노 MBA를 재정적으로 독립시켰다.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했다.

교내 직원들의 임기를, 하는 일이 없어도 무기한 확정해주겠다는 말은 안 했다. 제대로 평가받지 않은 업적에 지원금을 줄 수 없다고도 했다. 내가 겪었던 상황이 나의 지도력 결핍에서 비롯된 것인지, 학내 노조문제와 교수들의 평가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시사프로에서 대학 교수들이 연구실 비용(lab fee)을 걷는 형태로 학교 자금을 전횡한다는 걸 봤다. 사회적으로 카이스트뿐만 아니라 여러 대학에서 그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도 보고받지 못했고, 언론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내가 대학 당사자고 책임자인데도 말이다. 그 뒤 랩피를 걷지 못하도록 했는데, 어떤 교수는 계속 걷어서 청와대에 항의도 들어갔다고 알고 있다.

어떤 언론사에서는 나와 인터뷰를 원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쪽 언론사에 내가 인터뷰를 원하지 않는 걸로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많았다. 학생들이 만나고 싶다고 해도, 나는 항상 만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 못 만난다는 식으로 잘못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쓰고 칼럼을 연재하는 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었던 건 매우 중요했다.

이런 식의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더 얘기할 수 있지만 일일이 얘기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는 노조들이 장악하고 있는 기관에서는 어느 기관에서나 국적 불문하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예로,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는데, 노조가 노조에게 유리한 뉴스만 내보내고 그러지 않은 뉴스는 차단하는 식이다.

나는 이들을 처벌하고 싶었지만 나에게 권리가 없어 그렇게 못했다. 해고권이 없어서 취했던 방법은 교직을 개편하는 법밖에 없었다. 힘이 센 기관을 분리해서 나누는 방법밖에 없었다.

학생신문인 카이스트 타임즈에도 학교 노조가 개입해서 내용을 그들이 원하는 취향으로 만들려고 했다. 카이스트 타임즈를 인터넷에 올리려했던 이유도 내 나름대로 그런 실정을 제대로 알리려고 했던 것이다. 만약 웹페이지가 갑자기 업데이트가 안 되거나 하면 거기엔 틀림없이 뭔가 숨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처했던 상황에 대해 호소만 하려고 이 자리를 만든 건 아니다. 책을 읽고 한국인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음 좋겠다. 문제는 바로 고쳐야 한다.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당신은 우리 문화를 이해 못해요’라고 얘기하는데 이건 다 거짓말이다. 내가 진짜로 한국인들을 이해 못하고 한국문화를 이해 안 했는지는 책을 보고 판단해달라.

덧붙여, 이건 모두 사회주의(socialism)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조 문제는 특히 유럽에서 심하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노조에 강경대처하기 때문에 좀더 문제가 약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문화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책에 정치적인 얘기를 일부러 안 쓴 이유도 당신들에게 설교하는 것처럼 들릴까봐 그랬다.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보편적으로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세계적 대학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두가지 이유는…

-당신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는 10년 뒤에 알게 될 거라고 그랬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중국이 한국에 도전해오고 한국 시장을 잠식하는 때가 길어야 10년 뒤라고 생각했다. 한 분야만 계속하는 카이스트 같은 대학교에서는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위기가 올 것이고 체질 개선하는 기간이 적어도 10년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대학과 비교해 카이스트의 수준은?

=상위5~10% 학생의 수준은 엠아이티나 스탠포드 대학생들과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계 수준에서 떨어지는 나머지 부분이 미국보다 많다. 연구실적과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오는 비율이 스탠포드 등보다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큰 차이는 안 난다고 생각한다. 부임 뒤 학교에서 일할 교수들을 일일이 면담했다. 최근 들어온 교수들은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세계적인 대학과의 경쟁에서 조금 떨어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기술적인 측면은 동등하지만, 재산권(property law) 보장이 잘 안 돼 있다. 교수들이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동시에 캠퍼스 밖에서도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수들이 캠퍼스 밖에 벤처회사(spin-off company) 등을 많이 세워야 바람직한데 이런 것들이 제대로 안 갖춰져 있다. 대전은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땅값도 싸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발전시킬 수 있다. 두번째로, 한국사람이 MIT에 가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수준을 높이려면 학교에서 이중언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중 캠퍼스 만들고 법으로 보장한다면, 엠아이티가 갖고 있는 시장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중 국어 캠퍼스는 영어로만 얘기하고 강의하는 게 아니다. 과기부는 영어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표했지만 난 반대했다. 중요한 건 문화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해외 시장을 끌어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마지막으로 책 읽는 몇 시간만이라도 평범한 한국인들이 나의 생각에 공감해줬으면 좋겠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앞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면 하와이에서 부인과 시간을 보내고 피아노를 칠 것이다. 지프 타고 카우보이 모자 쓰고 놀러다니고 싶다.

<한겨레>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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