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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르네상스서울호텔 브이아이피룸에서 박용향 재프랑스과협 회장, 유승덕 재독과협 회장, 김진일 재영과협 회장이 만나 재외과협 현황과 발전 방향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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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경제적인 방법·개개인 창의성으로 승부
거대 자본·인력 필요한 ‘미국식’ 추종 재고하길
재독일·프랑스·영국 과학기술협회장 좌담
동포 과학기술자 300여명을 포함한 국내외 과학기술인 1000여명이 한자리에 모인 ‘2006 세계한민족과학기술자대회’가 18일부터 22일까지 닷새 일정으로 서울을 비롯한 강원·전북·충남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회장 채영복) 40돌 행사와 더불어 개최됐다.
이 대회는 세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내고 있는 동포와 외국인 석학들이 강연과 학술발표회, 토론회을 통해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토의하는 자리로, 올해로 16번째를 맞았다. 특히 11개 재외과학기술자협회(재외과협) 회장들이 참석하는 ‘세계한민족과학기술자 공동협의회’에서는 한민족 과학기술인의 교류 협력을 통한 네트워크 구축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18일 오후 대회 환영리셉션이 열린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박용향(56·파리자연사박물관 교수) 재프랑스 과협회장, 유승덕(52·컴퓨터 프로그래머·전산유체학) 재독 과협회장, 김진일(46·보건건축설계사) 재영 과협회장 등 유럽 3개국 과협 회장들을 만나 재외과협 현황과 발전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이들은 “한국 과학기술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는 유럽 쪽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재외과협은 일반인에겐 낯설다. 어떤 단체인지 먼저 소개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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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덕 재독과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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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덕=재독과협을 중심으로 설명하면, 독일 안의 유학생이나 박사후과정(포스닥)을 비롯해 연구원으로 영주하는 사람들을 모두 아우르는 한국 과학기술인들의 학술 및 친목단체다. 미국과 유럽 쪽 과협은 1970년대 초반에 생겨났다.
김진일=재영과협의 역할은 영국내 한국 과학자들이 서로 연대하고, 한국과의 관계를 넓히는 다리 구실을 하는 것이다. 다른 과협도 마찬가지다. 애초 학술단체로 출발했지만, 서로 모여 교유하고 직장 등의 정보도 나누는 등 친목단체 성격을 겸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자연과학공학 분야 박사학위 취득자를 정회원으로 한다. 최근에는 근접학문 분야와 관련 사업분야 연구자들도 준회원으로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재외과협, 네트워크 구실 톡톡히
애초 한국 과학기술인들 사이에 모임이 있었지만, 과협의 발족에는 과총의 지원이 촉매 구실을 했다. 과총의 지원금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과협들 사이, 또 한국과 관계를 맺는 큰 끈임은 분명하다.
-한민족과학기술자대회에서 재외 과학자들의 네트워크 구축이 강조되고 있다. 과협의 역할은 무엇인가?
유=지난해 정기총회 때 조장희 가천의대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청중은 1960대 독일에 온 광부와 간호사들의 아들딸들인 2세 동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대단히 감명을 받았다. 과협이라는 형태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다른 외국 과학자들이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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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일 재영과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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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외과협은 상당한 과학네트워크 잠재력을 갖고 있는 잘 갖춰진 플랫폼이다. 한국 안의 과총과 비슷하게 모든 분야와 인적 자원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늘려주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핵심 구실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회원들 가운데 유학생들이 많으면 협회 활동이 유동적이지 않은가?
박용향=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재프랑스 과협은 올해 30돌이다. 그런데 신입회원이 별로 없어 걱정이다. 예전에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한국 정부가 장학생을 뽑아 보냈는데, 이제는 한국이 발전해 지원제도가 없어졌다. 고등학생들이 프랑스어를 기피하면서 이공계 유학생들이 많이 줄고 있다.
김=아쉬운 점은 영어 연수나 석사 과정으로 외국에 나온 학생이 계속 남아 공부하려고 할 때 유럽 자체에서 신청할 수 잇는 장학금이 매우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과협으로 문의가 들어와 국내 담당자들에게 물어보면 안타깝게도 과학재단 등이 주는 장학금을 한국에서 신청하면 문이 열려 있는데 영국에서 한국에 신청하면 문이 닫혀 있다. 외국에서 나와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신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약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학금 혜택 크지 않아 아쉬워
유=독일의 경우 예전에는 유학 뒤 정착하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 귀국했다. 독일 학제 특성상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면 35~40살이다. 과학기술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한국 정부와 기업 차원의 배려가 아쉬운 상황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공부 끝나면 독일에 남아 있으려는 회원들이 많아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해부터 독일 회사와 계약을 하면 독일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일전에 과협 홈페이지에 한 독일 회사 신입사원 모집공고 안내를 했더니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회사 쪽에서 공고문을 내려달라고 부탁을 해오기도 했다.
-국내의 많은 부문과 마찬가지로 과학기술 쪽도 미국 편향이 지적되곤 한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유럽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김=영국은 1970~80년대 한국과 많이 비슷하다. 굉장히 보수적이다. 영국엔 고속철도가 없다. 기술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필요성을 못 느껴서다. 도시간 열차 속도가 200㎞ 정도인데, 굳이 속도 올리면서 추가비용 무엇하러 들이냐고 생각한다. 자연과학 등 모든 분야가 그런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 온 많은 분들이 영국 사회를 보자마자 ‘한국보다 못한 후진국’이라고 서슴지 않고 얘기한다. 교환교수로 온 분이 1주일 조금 넘어 “국비로 왔는데 양심상 이 돈 쓰면서 머물 필요를 못 느낀다”며 보따리 싸겠다고 하더라. 성급한 결정이라고 말해줬다.
유=유럽 특히 독일의 과학기술을 알려면 최소한 6개월 이상은 살아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품목을 생산하는 독일의 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기업 연구소에 가서 연구해야 쓸 만한 기술을 얻어올 수 있다. 에어버스380은 유럽 국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비행기인데, 이들의 노하우를 가져오려면 제작 기업에 가서 공동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에서 논문 쓰고 학위 받는 것만으로는 독일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한 나라의 과학을 알기 위해서는 문화·언어를 알아야지 논문만 쓴다고 알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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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향 재프랑스과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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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럽과 미국은 연구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아이디어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의 과학 연구는 팀의 장이나 지도교수의 강력한 지도로 이끌어지고 나머지는 도와주는 구실을 한다. 많은 논문을 내지만 지도교수의 아이디어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하나의 큰 기업 같은 시스템이다. 유럽은 이 시스템으로 미국을 공략하기에는 자본·인력 등이 달리기 때문에 방법 자체를 달리한다. 팀장, 교수의 아이디어 아래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낸다. 미국에서 연구원들은 논문을 두세 배 더 낸다. 안 내면 쫓겨나기 때문에.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창의성을 중요시해, 비록 지도교수와 의견이 달라도 추방시키지 않고 가능성 있으면 키워준다. 미국은 문제를 풀기 위해 컴퓨터 엄청 돌리고 계산 과정 많이 해서 시행착오 많이 겪어 결과 얻어낸다면, 유럽은 시도하기 전에 가장 경제적인 방법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려 한다. 방법론이 다르다. 이게 우리 스타일에 맞는다. 지금 미국 방식을 많이 따르고 있는데, 우리는 그만큼의 스케일이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공부한 교수들도 미국보다 유럽 스타일이 우리에게 맞는다고 느끼더라. 과학 마인드를 유럽식으로 잡을 것이냐, 미국식으로 잡을 것이냐를 한번 조사해보고,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파스퇴르연구소를 필두로 외국 연구소의 국내 설립이 잇따르는 등 과학기술계의 대외협력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다만, 일부 연구소의 연구원 자질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정부·기업배려 부족해 귀국 기피
박=상당히 긍정적이고 긍지를 갖고 있다. 우리가 파스퇴르 수준까지 가려면 엄청난 재원과 축적된 기술이 필요하다. 돈 주고 산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10년, 20년 뒤 국산화한다면 그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다만, 우리가 물주로 돈을 내든 만큼 연구원들의 자격을 심사해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돌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김=우리 돈 다 주고 요구 제대로 못 하는 저자세가 문제다. 지난해 가을 런던에서 한영 공동학회가 왕립학회(로열소사이어티) 주최로 개최됐다. 다섯개 분야별로 한국 과학자들을 초청해 비공개로 열렸는데, 종래에는 이런 행사는 늘 한국에서 시작해 돈도 댔다. 이번 행사는 왕립학회 주최로 영국 과기부가 한국 과기부와 접촉해 이뤄졌다. 이제 우리도 챙길 건 챙기고 따질 건 따져야 한다.
사회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정리 김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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