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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재난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고통의 기억이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 적극적인 치유를 하지 않으면 정신적 장애를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출구에서 소방대원들이 화재로 사망한 주검을 들고 나오고 있다. 대구/강창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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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 생존자들 후유증 심각
2003년 2월18일. 192명의 인명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화재사건에서 148명이 생존했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한 여학생은 “(학교 갔다) 지하철을 타고 오라”는 말에 아빠의 뺨을 때리는가 하면, 극장에서 다른 관객과 함께 컴컴한 입구로 나오던 한 생존자는 갑자기 기억이 없어지면서 발작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들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상담원에게 말했다. 뇌 일부 훼손으로 감정조절 어려움
아버지 뺨 때리고 갑자기 발작하고
아기 잊어버리고 집중력 떨어지기도 대구지하철 사건처럼 큰 충격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사람들은 고통의 기억이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 적극적인 치유를 하지 않으면 영원한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세월이 약’이 아니라는 얘기다. 13일 재난·재해 피해자의 심리적 상흔(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서울내러티브연구소(소장 최남희 서울여자간호대학 간호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대구지하철 생존자들은 충격으로 뇌의 일부가 훼손된 것으로 조사됐을 뿐더러 이로 말미암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안행동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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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내러티브연구소가 대구지하철 생존자 20여명과 일반인 20여명의 뇌 영상을 합성해 비교한 사진. 왼쪽 일반인들의 뇌에서는 회로 모양의 백질이 뚜렷이 보이는 데 비해 생존자들의 뇌에서는 이 부분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서울내러티브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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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 생존자들 후유증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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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희 소장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당시의 기억을 회피하도록 하면서 세월이 흐르면 치유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방법이 아니다”라며 “가족 등 주변에서 그들이 당시 겪은 경험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후속 경험을 충분히 설명하도록 유도해 자신의 경험 전체 속에서 사건을 해석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 입은 화상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자라면서 화상이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연구팀의 연구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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