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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을 재현하라! 동물원의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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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할리우드 톱스타인 마이클 더글러스와 발 킬머가 주연한 1996년 작 ‘고스트 앤 다크니스’에는 거대한 식인 사자가 나온다. 1898년 동아프리카 철도 공사장에 자주 나타나 인부 140여명을 살해한 고스트(Ghost)와 다크니스(Darkness)라는 실제 사자 두 마리가 이 영화의 모티프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벌이는 사투는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것으로, 이 사건에서 발생한 대규모 인명 피해는 서구 사회에 널리 알려질 만큼 큰 충격을 던졌다. 이 영화는 개봉 이듬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며 괜찮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아름다운 연인도, 신기한 로봇도 아닌 성난 사자에 관객의 눈과 귀가 집중된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야성이 현대 문명인들 사이에선 대단한 볼거리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도심 동물원이 제공하는 안락함에 취해 늘어진 사자만 봐오던 사람들은 거칠게 포효하며 극단적 야성을 뿜어내는 사자를 보기 위해 기꺼이 영화표를 샀다. 이는 문명의 결과물인 동물원이 동물답지 않은 동물을 양산했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 한다. 광폭한 사자만큼은 아니지만 현대 동물원의 화두가 동물의 야성을 재연하는 데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야성은 단순히 사나운 동물이 아닌, 동물다운 동물을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원래의 서식 환경과 가까운 사육 공간을 제공하는 ‘생태주의 전시’는 이런 목표를 구체화한다.동물원에 자연을 모방한 사육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오래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동물원은 동물을 가둬 두고 구경하는 공간에 불과했다. 기원전(BC) 1300년 경 이집트에서 출현한 인류 최초의 동물원은 희귀한 동물을 단순히 가둔 뒤 왕과 귀족들이 관람하는 곳이었다. 18세기 경 등장한 대중을 위한 동물원이라 할 수 있는 서커스단에서는 동물을 노골적으로 학대하기까지 했다. 조련사가 휘두르는 채찍에 따라 곰은 공을 굴리고 코끼리는 앞발을 치켜들었다. 1829년 문을 연 영국의 런던 동물원은 동물원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됐다. 당시 동물학계가 뜻을 모아 설립한 이 동물원은 동물의 기관, 조직, 세포의 기능을 연구하는 동물 생리학의 발전을 설립 이유 가운데 하나로 천명했다. 동물 생리학은 동물의 생사에 관심이 없다면 진척이 안 되는 학문이다. 런던 동물원의 설립은 동물을 인간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공개적 선언이었던 셈이다. 동물을 인간적으로 대하려는 노력은 1970년대 시작된 생태주의 전시 방식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인조 바위와 콘크리트 바닥이 난무하던 이전의 사육장 대신 실제 서식 지역의 기후와 흡사한 생활 조건이 동물들에게 주어졌다. 미국 우드랜드 동물원은 1977년부터 동물원 전체를 툰드라, 타이가, 산악지대, 온대 강우림, 온대 낙엽수림, 사막, 열대 강우림 등 10개 지구로 구분해 조성했다. 캐나다 토론토 동물원은 동물원 안에 초지, 숲 등을 만들어 각 동물이 자신의 습성에 맞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미국 뉴멕시코 주에 있는 살아 있는 사막의 동식물 공원에서는 멕시코 국경 주변의 건조한 고원과 초지를 모래 언덕, 석회암 언덕, 냇물 유역 등으로 나눠 동물이 각자 여건에 따라 살 수 있게 했다. 이는 1970년대 이전까지 고양이과에 속하는 동물, 또는 같은 대륙에 사는 동물을 집단 수용한 전시 방식에서 크게 진일보한 것이다. 생태주의 전시가 실행되기 전까지는 한 지역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원숭이와 북극곰이 지척에서 사육되는 일도 있었지만 이 같은 문제가 개선된 것이다. 철창이나 해자(관람객과 동물을 격리하는 도랑)를 통해 인간에게 구경 당하던 동물들은 이제 우거진 숲속에서, 두껍게 쌓인 흙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동물에게 자연의 향기를 제공하는 또 다른 노력은 ‘동물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이다. 자연을 닮은 서식 환경을 조성해 줄 뿐만 아니라 동물원의 안락함 때문에 나태해진 행동 방식을 바꾸는 데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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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에 전시 중인 기린. 관객의 눈 앞에서 나뭇잎을 뜯어 먹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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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비행기를 경계하고 있는 미어캣의 모습. 동아사이언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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