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히어로도 가을엔 힘 못 쓴다?
|
과학향기
하늘은 청명하고 나무마다 과일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가을, 과학시티는 오늘도 평화롭게만 보인다. 그러나 해가 짧아지면서 집으로 향하는 과학시티 시민들의 발걸음은 쫓기는 사람처럼 급해졌고 자물쇠를 채우는 손은 떨렸다. 최근 과학시티에 입에 담기 힘든 흉악범죄가 연달아 일어났고, 시민의 희망이던 슈퍼히어로들은 통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슈퍼맨, 뭐하고 있는 거야? 오늘 총기 든 강도가 은행에 나타났다는 거 몰랐어? 아니 스파이더맨에 배트맨까지 다 여기 있었구나. 시민들이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고. 너희가 나서서 과학시티의 평화를 지켜야지!” 헐크의 호통에도 아랑곳없이 슈퍼맨과 스파이더맨, 배트맨은 낙엽이 우수수 쌓인 벤치에 축 늘어져 있다. “기운 내서 악당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어쩐지 기운이 없어. 내가 나서서 강도 하나 해치운다고 세상 모든 악당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악당은 점점 많아지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하는 건지….”“거미줄 뿜는 것도 영 기운이 딸려. 난 더 이상 히어로 일은 못하겠어. 그냥 남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고 싶네.”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답지 않은 회의와 우울에 빠져 있었다. 헐크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줄은 몰랐네. 보통 남자들이야 가을이면 울적해진다고들 하지만, 설마! 너희들까지 가을 타는 거니? 너희 같은 슈퍼 히어로들이? 이럴 수가!” 가을을 타다니? 지칠 줄 모르고 세상을 구하던 영웅에게 다소 어울리지 않는 물음에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이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을 바라보며 헐크가 말을 이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 들어 봤겠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길에 코트 깃을 세우고 고독에 빠지는 남자들은 가을이 되면 우수에 젖게 마련이지. 사실 가을엔 이유 없이 우울해지는 사람이 많아. 보통 계절성 우울증(SAD)이 원인이지. 계절성 우울증은 주로 일조량의 변화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유 없이 축 처지고 우울했던 원인이 바로 햇볕의 양에 있었다는 말에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이 헐크에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헐크는 이들을 바라보며 자세한 설명을 이었다. “해가 짧아지면 인체의 호르몬에도 변화가 나타나는데 항우울 효과가 있는 뇌의 갑상선 호르몬 대사가 줄고 대신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과 같이 정신을 차분하게 만드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증가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우울에 대한 면역은 약해지고 기분은 자꾸 가라앉게 돼. 또 멜라토닌은 주로 밤에 많이 분비되는데 점차 밤이 길어지면서 그 양이 과다하게 만들어져 생체리듬이 흔들리고 우울증이 생기기 쉬워지는 거야.”
|
우울증의 원인은 햇빛, 달빛, 출산, 가사, 과로, 스트레스 등이다. 특히 가을에는 일조량이 줄어들어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늘어난다. 사진 제공. 동아일보.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