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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하고 다중적인 바닷속 소음’ 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그 중 하나다.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선박의 엔진 소리와 물고기를 더 많이 잡기 위해 사용하는 음파탐지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증가가 고래에게는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미국의 켄 발콤 같은 해양학자들이 대표적인 주창자인데, 그는 바하마 해안에 하루에만 14마리의 고래가 떠밀려 온 사건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인근에서 군함들은 대략 235dB(데시벨) 정도의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인간으로 따지자면 지진에 버금가는 소음이라는 것. 실제로 그는 자살한 고래의 머리 부분을 해부해 보기도 했는데, 고래의 귀 주위에 상처가 나 있었고 이 때문에 뇌출혈이 일어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바닷속 소음이 바다생물의 생존에 치명적이라면, 작은 물고기부터 고래까지 모두 해안가로 떠밀려와 자살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점을 설명해 줄 수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방향감각에 이상이 생긴 탓’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살하려는 고래들을 어렵게 바다로 되돌려 보내도 대부분 다시 해변으로 되돌아 오는데, 이것은 고래들의 의지라기보다 방향감각의 이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살'을 감행하는 일부 고래의 경우, 방향감각 기관이 있는 귀 부근에 염증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 적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고래들이 방향감각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리더 격인 고래가 해변으로 향하면 다른 건강한 고래들도 그 뒤를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고래가 방향감각을 상실하는 것이 ‘지구 자기장의 교란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와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 킬 대학 클라우스 판젤로브 교수 팀이 1712∼2003년 사이에 북해 해변으로 몸을 던진 향유고래를 조사했는데, 흥미로운 결과를 찾아냈다. 고래들의 '자살' 중 상당 수가 8~17년의 일정한 주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즉 지난 3백년간 북해에서 '자살'을 선택한 97마리의 향유고래 중 87마리가 태양활동이 왕성해진 시기에 자신의 몸을 해안으로 던졌다는 것이다. 판젤로브 교수는 이를 '고래가 비둘기처럼 자기장을 감지해 이동 경로를 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향유고래가 장거리를 이동할 때 시각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 만큼 자기장 감각 기관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둘기의 경우에도 태양활동이 활발할 경우 길을 잃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고래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도 북해의 향유고래에 한정되어 있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결국 몇 년을 주기로 지구촌 대양의 해변 이곳 저곳에서 고래들이 집단적인 죽음을 선택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명쾌하게 그 원인을 설명해 주는 연구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함께 작용할 지도 모른다. 한가지 분명하고도 중요한 점은 이러한 연구들이 산업혁명 이전에 대양의 주인으로 군림해 왔던 고래들이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 유상연 -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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