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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미국 콜로라도대학 등 연구팀이 건강한 사람의 평상시 몸에 사는 미생물(세균, 박테리아)의 분포를 가장 폭넓게 조사해 ‘인체 세균 지도’를 작성했다며 그 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밝혔다. 최근에는 장내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분포와 기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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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체질엔 장내 미생물도 한몫” 후속연구 활발
유럽연구팀, 장내 미생물 분포별 ‘장 유형’ 규명 계기로 큰 관심
미생물-면역력 상관성 연구…미생물체 ‘제2 게놈’ 중요성 부각
▷ 사이언스온 바로가기|“장내 미생물에도 혈액형처럼 유형 있다”
“아~ 나는 왜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건지 모르겠어.” “쟤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대.”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같은 음식을 먹어도 그것을 소화하고 영양소를 흡수하는 대사 효율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 자세한 원인은 밝혀지지는 못했는데, 1년 전 쯤에 그 원인을 인간 유전자 외에 미생물에서도 찾아내려는 연구가 나와 크게 주목받았다. 인간의 장내에 사는 미생물의 주요 군집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른바 ‘체질’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하이델베르그 소재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의 피어 보크(Peer Bork) 박사 연구팀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연구팀이 이름을 붙인 이른바 ‘장 유형(enterotype)’은 장내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미생물을 주요 종류에 따라 세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여러 미생물들이 어울려서 체내 대사에 작용하는 여러 가지 효소들 사이에 어떤 균형을 이루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장내 미생물에도 혈액형처럼 유형 있다”
논문을 보면, 제1형은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라는 미생물이 가장 많이 사는 장 유형이다. 이런 형에서는 주로 탄수화물을 분해하고 바이오틴(biotin)으로 알려진 비타민 B7을 만드는 효소를 많이 생산된다. 제2형은 프레보텔라(Prevotella)라는 미생물이 가장 주요한 기능을 하는데 점액을 분해하고 타이아민(thiamine)인 비타민 B1에 필요한 효소들을 더 많이 생성한다. 제3형은 루미노코커스(Ruminococcus) 미생물이 주가 되는데 세포가 당분을 흡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달리 말하면, 제3형에 속하는 사람은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고, 제1형의 경우는 먹는 양이 많더라도 체중으로 가는 양이 비교적 적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에 이런 연구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지 와인스톡(George Weinstock) 미국 워싱턴대학 유전학 교수는 <사이언스 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인터뷰에서 “왜 사람들의 체질이 각자 다른지, 약물이나 식이요법에 제각각 달리 반응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연구성과의 의미를 평가했고, 롭 나이트(Rob Knight) 미국 콜로라도대 생물학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체내 미생물이 만든 생태계가 인간의 체질과 관련이 있다는 첫 번째 발견이자 생물학과 의학계의 큰 진전” 이라며 극찬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장내 미생물이 형성하는 이른바 ‘체질’은 평생 이어지는 것일까? 장 유형(enterotype), 이른바 ‘체질‘에 대한 후속 연구 중 하나로 지난해 10월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보면, 오랜 기간의 식습관이 장 유형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연구팀은 탄수화물, 지방, 아미노산과 콜린, 식물성 섬유 등을 섭취하는 경향에 따라 미생물 군집 분포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밝혀냈다. 한 마디로 먹는 것과 장내 미생물 분포, 그리고 체질이 연관을 맺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후천적으로 그것을 바꿀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자세한 메커니즘은 아직 규명 중에 있다 하니, 앞으로 그 결과에 많은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1900년대 초에 A형, B형, AB형, O형 혈액형의 발견은 의학계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혈액형의 발견은 환자가 수혈이 필요할 경우 혈액형이 맞지 않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저항성을 줄일 수 있게 했다. 연구팀은 ‘장 유형’의 발견도 개인에 대한 맞춤 의료의 요구가 점점 더 커지는 시대에 새로운 의학적 용도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만일 ‘장 유형’이 의료계에 쓰인다면, 의사들은 음식이나 약물의 투여를 개인의 장 유형에 맞춰 할 수 있을 테고, 항생제의 대체품을 찾는 데에도 장 유형 정보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장내 생태계의 균형을 망가뜨려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제거하는 대신, 유익한 미생물의 생태계를 강화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식으로 항생제 요법을 대신해서 질병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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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 주로 탄수화물을 분해하고 비타민 B7을 만드는 효소를 생산하는 장내 환경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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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도 있다. 첫째는 장내 미생물이 긍정적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물론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도 있으니, 역시 중요한 것은 이로운 미생물과 해로운 미생물 사이의 ‘균형’인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이 연구에서 밝힌 장내 미생물 군집에 대한 규명이 인간 유전자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에는 인간 유전체(게놈)와 장 유형의 연관성을 찾는 게 훨씬 더 근본적인 과제가 될 수 있으며 이번 연구 결과는 인간 유전자의 전모를 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숲이 아닌 나무를 보는 정도의 의미만을 지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가 인간 체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중요한 한 걸음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까지는 빙산의 일각을 보여주었을 뿐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2의 게놈’ 장내 미생물의 유전체
2003년 인간 유전체(게놈) 프로젝트가 공식 종료하면서 게놈 이후 시대(post-genome era)가 열린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 뒤를 잇는 후속 연구 중 하나가 바로 미생물 연구 분야이다. 지난해 초 영국 과학저널 <네이처>는 뉴스 해설에서 우리 몸에 있는 제2의 게놈(second genome)에 주목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게놈이란 말에는 많이 익숙해졌으나 제2의 게놈이라는 말이나 그 뜻은 아직 생소하다. 게놈은 우리 몸에 있는 염색체의 유전물질 정보를 통틀어 말하는데, 제2의 게놈은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 전체의 유전 정보를 뜻한다. 인체 미생물은 주로 소화기관에 많고 호흡기나 생식기, 입 속, 피부의 상피세포에도 많이 분포한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도 표현하는 제2 게놈에 대한 연구는 최근 높은 관심을 끌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국제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콘소시엄(IHMC)‘이다. 이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에 이은 대규모의 국제 연구로서 이에 참여한 국가별로 자국민에 질병을 일으키는 특이 미생물들의 유전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공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다. 2008년 정식으로 출범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에 사업단 등록에 실패해 콘소시엄에서 배제되는 아픔이 있었으나 2011년 5월에 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회원국으로는 유렵연합(EU), 캐나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싱가포르 등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인 특유의 제2 게놈을 연구하기 위해서 일란성 쌍둥이 1100쌍의 성인들을 모집해 관련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중이다.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쌍둥이의 인간 유전자 정보는 똑같더라도 비만이나 발병율, 그리고 체내 미생물 군집에서는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사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미생물에 대해서는 주로 질병과 관련된 연구 분야에서 연구되어 왔다. 그 정도로 미생물에 대해서는 그동안 대체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의 원인’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주 작지는 않은, 과학계에서 일종의 사각지대였던 미생물이었지만, ‘국제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콘소시엄’을 비롯해 국내외의 여러 과학자들은 그동안 인체와 공존하는 미생물의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속속 밝혀내고 있다.
면역력, 신경전달물질 등 관련성 연구 잇따라
그동안 미생물 연구는 대체로 세 갈래 방향에서 이뤄져 왔는데, 기존에 많이 연구되었던 질병 관련 미생물에 대한 연구, 미생물의 빠른 번식과 성장을 이용한 실험기법 또는 진화론 연구, 그리고 최근 몇 년 새 주목을 받고 있는 장내 미생물 연구가 그것들이다. 그 중에도 장내 미생물과 면역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최근에 많이 발표되고 있다. 어떤 장내 미생물을 없앴더니 면역 관련 물질도 줄어들어 면역력이 약화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었고, 장내 미생물의 한 종류인 클로스트리디움(Clostridium) 속의 균을 제거했더니 알러지에 대한 감수성이 증가한다는, 한마디로 미생물이 알러지 방어 작용에도 관여한다는 연구도 있었다.
또 장내 미생물이 신경전달 물질에 변화를 일으켜 성격을 변하게 할 수도 있다는 연구도 눈길을 끌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연구팀이 행한 이 실험연구에서는 보통 쥐와 장내 미생물이 없는 무균 쥐를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있는 곳에 놔두고 움직임을 측정했더니 보통 쥐는 대부분 어두운 곳에 머문 반면에 무균 쥐는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오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무균 쥐가 모험심이 강하고 불안을 덜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실제로 미생물이 없는 무균 쥐는 불안과 관련된 신경전달 물질(Norephinephrine과 Dopamine)의 기능이 떨어져 있음이 확인되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연구도 있다. 어린 시절에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만 자란 아이의 면역력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선가 한번쯤 들어본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어느 정도의 미생물에 노출되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를 ‘위생 가설(hygiene hypothesis)’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위생 가설을 지지하는 논문이 최근 <사이언스>에 실렸다. 그 내용을 보면, 어릴 적 미생물에 노출된 경우자연 면역과 관련한 중요한 면역세포(Natural killer T Cell)의 여러 기능에 긍정적 영향이 나타나며, 그 영향이 상당히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어릴 때 흙장난을 하거나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처럼 미생물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강한 면역 능력을 지닌 세포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에 너무 어릴 때에 항생제 치료를 받는다면 오히려 반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지금까지 이런 연구들은 미생물을 주로 질병의 원인인 병원체로 바라보았던 많은 이들한테 인간과 미생물 사이에 있는 ‘공생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미생물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미생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생물과 인체의 상호작용에 관련하는 물질이 발견되고 개발됨으로써, 병원성 미생물을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자연계에 존재하는 미생물 중에서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비율은 불과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한때 인간 게놈 프로젝트 덕분에 인간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의 거품이 꺼진 지금,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읽어내는 것만으로는 획기적인 수명 연장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인간 유전자의 150배에 달하는 규모의 장내 미생물 유전자가 존재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동안 미생물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점차 개인의 맞춤의료가 요구되는 시대에서, 우리 몸의 또 다른 제2 게놈인 인체 내 미생물체(마이크로바이옴, microbiome)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주목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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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중
"과학과 철학은 같은 곳을 바라본다"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대학원생 | 수의사 | “지구는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다” , 최대 다수 생명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 | 트위터 @jjjo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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