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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있는 낡은 페인트 통 안에서 박새가 어린 새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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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 10남매 태어나 오롯히 둥지 떠나
“녹슨 페인트 통아, 고맙다”
지난 4년 동안 겨울 끝자락에서 이른 여름까지는 강원도의 한 숲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지리산 자락에서는 까막딱따구리를 만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 2년은 아예 집을 떠나 그 숲에서 살았고, 최근 2년은 매주 오가는 형편입니다. 동료 교수들의 배려로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그 숲에 머물 수 있으니 한 주의 반 이상을 고스란히 까막딱따구리와 동행하는 셈입니다. 숲 곁에는 노부부가 사는 집 한 채가 있습니다. 두 분에게 숲의 생명은 가족이며, 때로 벗이기도 합니다.
숲 속에도 아주 작은 집이 하나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내가 딱따구리를 관찰할 수 있는 움막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도와주신 것이고 재료도 많이 들었기에 비용을 어림잡아 드렸더니 버럭 화를 내셨습니다. 나중에 움막을 그대로 떠가야 하며 그 때 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밥을 지어 주십니다. 숟가락 하나만 더 놔달라고 아무리 부탁하여도 언제나 독상을 봐 주시며 밥은 언제나 새로 지어 주십니다. 그리고 날마다 반찬 하나가 어김없이 바뀝니다. 두 분은 나 역시 그 숲 생명의 하나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숲에는 까막딱따구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딱따구리가 깃들어 있으며, 다른 숲새들도 다양합니다. 4월 초, 집 앞의 숲 언저리에 놓여있는 녹슨 페인트 통으로 박새가 들락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이끼를 물어 나르는 것이 페인트 통을 둥지로 삼을 요량인 것 같았습니다.
잠시 두고 보기로 했습니다. 하루에 한두 번 슬쩍 지나치며 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에도 박새 한 쌍은 여전히 이끼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조처는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지나는 사람들이라면 그 곳이 차마 박새가 둥지를 튼 곳인지 알아차릴 수 없는 노릇입니다. 발로 툭 차버리기 십상이고, 쓰레기 처리장으로 보내질 수도 있습니다. 적당히 그늘이 드리워질 작은 나무 옆으로 통을 옮기고, 통 위에는 돌을 쌓아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잊고 지내다 두 달 남짓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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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새들이 먹이를 나르느라 분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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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새들이 꽤 많은 모양입니다. 배설물을 무척 자주 받아내 물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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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가져온 어미 새 너머로 어린 새의 노란 부리가 슬쩍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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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어린 새 첫째가 둥지를 박차고 날아 세상과 만납니다. 이어 8마리의 동생들이 꼬리를 잇듯 둥지를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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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와 여덟째만 나의 눈이 닿을 곳에 잠시 머물었으며, 나머지는 눈으로도 좇아가기 어려울 만큼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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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동안 혼자 남아있는 막내에게 어미 새가 먹이를 가져와 둥지 떠나기를 재촉합니다. 막내에게도 때는 찼습니다. 드디어 막내마저 둥지를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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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둥지를 나서 페인트 통을 눌러놓았던 돌 위에 잠시 앉아 인사를 하고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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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박새와 더불어 박새 10남매를 함께 키워낸 녹슨 페인트 통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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