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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생활을 하면서 얻은 과학적 지식이나 과학적 사고방식, 문제 해결 능력은 지금의 공부를 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심지어 실험을 직접 해야 하는 치의학 실습 시간에는 내가 조교 선생님을 도와드린다." 사진/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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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의 “실험실의 좌충우돌 일상” (12, 마지막회)
실험실 생활을 되돌아보며
석사과정을 마치고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 생각해 봐도, 실험실 생활만큼 뭐라 설명하기 어렵게 독특하면서도 힘든 일이 어디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 졸업 때까지는 정해진 수업 듣고 과제 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지내왔다. 물론 대학생이 되면 ‘어른’이 되면서 전에 없던 자유를 더 누리고 그에 따른 책임도 커지지만, 실제로는 시간표를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소박한 변화만 느끼게 될 뿐이지 내 또래의 과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고 교수님이 하시는 강의를 들으며 시험 때 되면 공부를 하는 주요 패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에는 수업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하루 종일 지도교수님이나 실험실 동료와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해야 하고, 심지어 동료들은 10살이나 차이 나는 박사과정 선배부터 사회 경험을 해 본 언니, 오빠들까지 다양해 대학생 시절의 동료와는 영 달랐다. 무엇이든 스스로 찾아내고 생각하고 고민해서 결정해야 하며 그 선택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그냥 잠깐 찜찜함으로 끝나는 ‘학점’ 정도의 책임이 아니라, 즉각적이고도 지속적이면서 마침내는 해결해야만 하는 그런 책임이다.
실험실 생활? 안 해봤으면 말을 마세요~^^ 처음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 나는 꽤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건 정말 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실험실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실험실의 힘든 점을 말로 설명하면 별 일 아닌 것처럼 들리지만, 해 본 사람들은 바로 안다. 석사과정 시작 무렵, 몸과 마음이 지쳐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꿋꿋하게 참았다. 부모님께 툴툴대기도 했지만, 사회에 나가면 그것보다 더 힘드니 잘 견디라고만 하셨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실험실 생활을 해도 자꾸만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일들이 생겨 사회 생활을 하다 온 동기 언니를 붙잡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언니, 사회 생활은 지금보다 더 힘들다던데 이것도 못 견뎌서 나 어떡해’라고 하니, 언니 왈, ‘야, 누가 그래? 사회 생활이 실험실 생활보다 훨씬 쉽다!’ 그렇다.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애매한 그런 일들 때문에 연구실에 있다 보면 짜증이 나기도, 화가 나기도 한다. 실험이 잘 안 돼서, 화학약품 때문에 피부가 나빠져서 힘들기도 하고 때로는 교수님이나 실험실 동료와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나의 경우,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편인 데에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다소 게으른 면이 있어 더욱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학부 때에는 나의 이런 성향을 합리화하면서 내 취향대로 모든 것을 조절하며 지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의 생활은 그것이 일단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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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 안 미생물을 종류별로 검출 방법을 달리해 확인하는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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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고민, 일상, 결실, 보람… 나는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 보람 있는 결실을 맺기도 하며 2년 넘게 열심히 생화학 연구를 했다. 이후, 더 깊은 학문 연구의 길을 뒤로 하고 치의학이라는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청춘 스케치’의 필진으로서 이공계 실험실 생활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다. 웹사이트에 처음 올라간 내 글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신 웹진 운영자님의 걱정 어린 문자 메시지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 밤낮으로 열심히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연구자가 내 프로필을 본다면 내가 ‘동고동락하던 동지를 매몰차게 떠난 변절자’ 정도로 보일 수도 있으리라. 이러한 에피소드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내가 대학원을 졸업할 때 그 어느 누구보다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깊고, 치열하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마 현재의 대학원생들도 정부 정책의 변화나 시대의 변화로 인해 늘어난 진로의 선택지 때문에 심사숙고하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경험자로서, 그리고 요즘 시류에 함께 혼란해하는 젊은 선배로서 충고하자면, 그냥 머리에 쥐가 날 때까지 마음껏 고민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서 정해진 결정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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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의학대학원 1학년 입학 전, 두개골을 비롯해 인체의 뼈에 대해 배우던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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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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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에는 학교 도서실에서 밤새 공부하다가 잠깐 쪽잠을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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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에서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장래 희망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과학인이 되는 것.
이메일 : areumhan24@gmail.com 트위터 : @areumhan24
블로그 : http://plug.hani.co.kr/areumhan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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