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실용화된 기술이 세계 첫 개발로 둔갑 과장된 발표 많아…언론, 검증자세 가져야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 결과물이 발표 과정에서 부풀려지거나 언론들의 이해 부족 등으로 의미가 과장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경우, 연구 결과물의 의미가 퇴색되면서 거꾸로 연구자가 학계에서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 1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김현탁 박사팀은 “절연체가 갑자기 금속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며, “56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물리학의 숙제를 풀었다”고 밝혔다. 이 가설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모트 박사가 1949년 예언한 것이다. 김 박사는 “일본의 유명한 물리학자 야스모토 다나카 박사가 ‘한국도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는 뛰어난 후보자 한 명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보내 왔다”고 밝혔다. 이에 신문과 방송들이 김 박사팀의 연구결과를 ‘노벨 물리학상 수상감’, ‘100조원짜리 신기술 개발’이란 제목으로 1면 머릿기사로까지 다뤘다. 유명 학술지의 보도 내용을 받아 쓰는 게 아닌 만큼 검증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대다수 언론이 묵살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연구결과물이 너무 지나치게 해석해 보도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 박사팀의 연구결과는 과학기술과 물리학 분야를 각각 대표하는 학술지 <사이언스>와 <피지컬 리뷰>에는 실리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뉴저널 오브 피직스>(2004년 5월치)와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2005년 6월치)에 실렸을 뿐이다. 국내 학자들 사이에서도 “독창적인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노벨상 후보 얘기도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보통신부도 “관련 학자들의 자문을 받아본 결과, 아직 학문적으로 완성되지 않았고, 상용화는 거론하기조차 힘든 상태라는 의견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 박사 쪽은 “<사이언스> 쪽으로부터는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라 싣기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발표자가 ‘세계 최초’란 표현을 써, 언론이 과장 보도한 사례도 있다. 200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종이처럼 얇은 음향기를 국내 벤처기업과 공동으로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며, 이르면 1년 뒤 상용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다수 언론이 ‘두루마리 스피커 세계 최초 개발’ 등의 제목을 달아 크게 보도했다. 하지만 서울대 김승조 교수가 “이미 실용화된 기술을 과대 선전했다”고 비판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를 개발해 상용화 과정을 밟고 있던 미국 업체가 세계 최초 개발이라고 보도한 언론사들에 정정보도를 신청하기도 했다.학계 전문가는 “기업 가치를 높이거나 연구비를 타기 위해 연구결과를 동료 과학자들의 검증을 받지 않은 상태로 발표하거나 연구결과의 의미를 부풀리는 경우도 있다”며, “언론들도 유명 학술지에 게재되지 않은 채 어느 날 갑자기 발표되는 것은 보도하기 전에 검증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근영 기자, 김재섭 정보통신전문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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