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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는 피해자와 가족들한테 길고도 깊은 마음의 상처를 던져준다. 이들이 겪는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며 보듬으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 절실하다. 사진은 세월호 사고 엿새째인 4월21일 경기도 안산시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촛불모임에서 세월호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시민들.
안산/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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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온] 뇌 과학으로 보는 ‘외상 후 스트레스’
4월16일 병원에서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시간에 텔레비전 속보 뉴스를 통해 세월호 침몰 소식을 처음 들었다. 400명 넘는 탑승자들이 구조의 손길을 기다린다는 뉴스에 놀랐고,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에 잠깐 안도했지만 오보였다는 소식에 다시 좌절했다.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구조된 생존자는 없고 갈수록 사망자 수만 늘어갔다. 어처구니없는 엄청난 재난 앞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며 향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앞으로 이 참사가 우리 사회에 어떤 상처의 그림자를 드리울지 내다보기는 어렵다. 지난 역사는 오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으니, 11년 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가 남긴 상처를 돌아보며, 앞으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에 대처하는 지혜를 찾아보도록 하자. 깊고도 긴 고통, ‘외상 후 스트레스’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들어오던 열차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미숙한 초기 대응으로 여러 인재가 겹치면서 화재는 대형 참사가 됐고 450여명 승객 중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 수습이 끝난 뒤에도 상처는 계속됐다. 생존자들이 구조 뒤에 느낀 안도는 잠시뿐이었다. 이들은 신체 부상과 함께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는데 가장 큰 고통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었다. 두 달 뒤인 2003년 4월 생존한 부상자 12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50%에 달하는 64명이 이런 증후군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비율은 보통의 경우에 나타나는 20~40%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대형 참사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었다. 심리적으로 정상인 이는 13%(17명)에 불과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자연재해나 화재, 전쟁, 사고, 폭행, 학대 같은 신체 손상이나 생명 위협의 사건을 당한 뒤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고통을 일컫는다. 피해자들은 사건의 공포 회상, 사건과 관련한 행동 회피, 인지와 정서의 부정적 변화, 그리고 과도한 각성을 경험하며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대구지하철 화재의 생존자들은 유독가스가 가득 차고 어두웠던 참사 현장이 시시때때로 떠올라, 작은 불조차 피하고 어둡거나 밀폐된 곳에는 가지 못했다. 또한 분노, 죄책감이나 세상에 대한 원망과 울분으로 힘들어했고, 마음을 집중하기 힘들고 쉽게 놀라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11년 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생존자들의 뇌 신경회로에선
공포 처리 과정이 작동 안했다
뇌는 위쪽 맨앞부분 두껍게 해
심리적 고통 억제에 나섰다
5년 뒤에야 뇌는 정상 회복했다 뇌 변화시킬 만큼 큰 마음의 고통
장기간 보살피고 다독여주는
사회적 지원과 도움 절실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심리적 고통은 사라졌을까? 화재 참사 뒤 1년 6개월과 2년 8개월이 지나고서 다시 생존자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두 차례의 조사에서 53명 중 37명(70%)과 37명 중 21명(57%)이 여전히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심리 검진을 받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족도 심각한 마음의 고통을 겪었다. 유족 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유족이 겪은 심리적 스트레스가 ‘경고’와 ‘위험’ 수준을 넘어 거의 2배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 12명을 불안장애·기분장애 환자들과 비교한 다른 조사에서도, 유족들은 이들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생존자 가족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존자를 보살피는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점점 지쳐갔으며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이들도 역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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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 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은 생존자의 뇌에서 5년에 걸쳐 두께 변화가 나타난 배외측 전전두엽 부분(주황색). 엄습하는 공포 기억을 극복하려는 우리 뇌의 처절한 싸움의 흔적이다.
출처: 류인균 교수 논문(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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