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10 11:21
수정 : 2016.10.10 15:28
[미래]슈퍼태풍 대비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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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태풍에 해당하는 허리케인 ‘앤드루’(1992년)의 강풍에 날아가 야자수에 꽂힌 각목이 슈퍼태풍과 강풍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미 국립항공우주국(나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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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따라 점점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기상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는 별도 대책을 마련해 추진해오고 있다. 2011년 기획재정부와 환경부 등 13개 부처가 함께 만든 제1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 세부시행계획(2011~2015년)과 올해 수립한 제2차 세부시행계획(2016~2020년)에는 방재기준과 제도를 강화하고 재해 복구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등의 다양한 정책들이 나열돼 있다. 하지만 실제 이행 실태를 들여다보면 너무 굼뜨고 심지어 거꾸로 간 부문마저 없지 않다.
2014년 2월 경북 경주의 마우나리조트 지붕이 붕괴해 1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친 것은 남부 지방에서는 이례적인 폭설이 불러온 참사였다. 이를 계기로 시급히 건물 설계기준을 재점검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국토교통부는 지금까지도 급할 것이 없다는 태도다. 제2차 기후변화 적응 대책 세부시행계획에 ‘적설 하중을 고려한 건축물 설계기준 개선’을 포함했으나, 실제 기준 개정은 2019년까지 마무리하겠다는 ‘느긋한’ 추진 일정을 잡고 있는 것이다.
태풍 때 가장 광범위한 피해를 일으키는 강풍에 대비한 건축물 설계 풍속 기준은 심지어 지속적으로 후퇴시켜 왔다. 국토부는 지난 5월 건축물 구조 설계에 적용되는 건축구조기준을 개정하면서 건축물이 받게 될 풍하중 계산의 기초가 되는 지역별 기본풍속을 대대적으로 낮췄다. 서울의 기본풍속이 초속 30m에서 26m로 낮아진 것을 비롯해 전국 6개 특·광역시 가운데 대구를 뺀 5개 도시의 기본풍속이 이전 기준보다 완화됐다. ‘양간지풍’(양양과 간성 사이의 바람)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을 만큼 강풍이 심하기로 유명한 양양과 속초 지역의 기본풍속도 초속 40m에서 34m로 15%나 낮췄다. 속초는 우리나라 최대순간풍속 극값인 초속 63.7m의 강풍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국토부는 앞서 2000년과 2011년에도 건축물 설계 풍속 기준을 완화시킨 바 있다. 1970년대 이후 태풍의 강도가 꾸준히 증가해온 것으로 나타난 관측 결과와 기후변화에 따라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예측이 모두 무시된 것이다. 우리나라 전국 최대순간풍속 1위에서 4위까지는 모두 2000년 이후 기록됐다.
강풍은 태풍 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강원도 속초의 우리나라 연간 최대순간풍속 극값 기록은 태풍과는 무관하게 2006년 10월 하순에 작성됐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에서 부는 바람의 강도는 갈수록 강화되리라고 진단하고 있다. 독일 알프레트 베게너 연구소의 연구진이 중심이 된 6명의 과학자는 지난 6월 저널 <지구물리학 연구>에 실은 연구 논문에서 해수면 온도와 해수의 유속, 해수면 압력 등 다양한 변수와 위성 관측자료, 기후 모델 등을 이용한 분석 결과 한국이 포함되는 북서태평양 중위도 지역의 폭풍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태평양 서안을 따라 적도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구로시오 해류와 같은 서안경계류(western boundary currents)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점점 더 많은 열을 지닌 채 북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대서양의 멕시코만류 다음으로 규모가 큰 난류인 구로시오 해류 일부는 오키나와 서쪽에서 쓰시마 해류와 제주 해류로 갈라져 나와 동해와 서해로 북상하면서 한반도 기후에 큰 영향을 끼친다.
논문의 공동 저자인 독일 브레멘대 환경물리학과 게리트 로만 교수는 연구소가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다음 수십년 동안 일본과 중국, 한국은 구로시오 해류가 더 많은 열을 가지고 북쪽으로 올라올 것이기 때문에 특히 겨울철에 더 높은 대기 온도를 예상할 필요가 있다. 이 열은 그 지역에 폭풍을 더 많이 만들어내도록 대기 조건을 변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풍뿐 아니라 겨울 강풍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다.
채여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기후융합연구실장은 “정부의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보면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정책들이 모두 포함돼 있기는 한데, 이들이 시행돼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 평가와 점검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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