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다르파의 도전
코앞 현실 다가온 자동운전시대
다르파의 무모한 도전에서 싹터
출발은 미래 군사기술 개발이나
대중 경진대회로 파급효과 키워
2015년 로봇대회선 한국팀 우승
빨간풍선 찾기 등 이색 과제도
올해의 주제는 ‘스펙트럼 협업’
각국 정부도 혁신수단으로 도입
고속 조립이 가능한 군용차량 설계부터 바이러스 전파 예측, 트위터 봇 찾아내기까지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내놓은 챌린지(경진대회)는 주제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혁신을 자극해왔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져온 다르파의 도전과제 역사를 통해 혁신의 변화상을 짚어봤다.
사람 없이 혼자 달리는 자동차는 이미 현실이다. 미국 피츠버그나 애리조나 주민들은 지난해 9월부터 앱으로 부르면 혼자 와서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우버’ 자율주행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만약을 대비한 비상 운전자는 앉아 있다). 총 300년이 넘게 자율차 도로 운행 실험을 수행한 구글은 곧 주행 범위를 미국 4개 도시에서 “전세계로 확대하겠다”는 포부다. 무인자동차는 1920년대부터 수십년 동안 이어진 인간의 판타지이지만, 드디어 코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 여정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 가운데 하나는 2004년 3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남서부의 외진 사막에서 열린 한 자동차 경주대회였다. 비록 코스를 완주한 참가자는 아무도 없었지만, 당시 열정을 불태웠던 젊은이들은 훗날 이를 현실로 일궈낸 씨앗이 되었다. 바로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다르파)이 마련한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다.
다르파는 1958년 설립된 미국의 첨단군사기술 개발 연구소다. 냉전시절 맞수인 소련의 인류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에 자극받아 설립된 이 연구소는 당장의 군사적 필요를 넘어 미래의 방위에 큰 영향을 줄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하지만 돈벌이나 연구실적에 구애받지 않고 ‘세상을 바꿀 기술’에 집중한 다르파의 도전은 전장뿐 아니라 삶의 현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민간의 도전정신을 자극한 다르파의 ‘챌린지’(경진대회)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2004년 열린 그랜드 챌린지는 다르파의 첫 대중적 경진대회였다. 미국 의회는 당시 “2015년까지 모든 지상군 차량의 3분의 1을 자동화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우승 상금 100만달러의 대회 주최를 승인했다. 하지만 원대한 꿈과 달리 첫해의 현실은 엉망이었다. 예선을 통과한 차량 15대 가운데 2대는 시작 전에 기권했고, 1대는 시작과 동시에 전복됐으며, 3시간 넘게 달린 차는 4대뿐이었다. 가장 멀리 간 차가 고작 11.9㎞를 달렸다.
하지만 이런 대실패는 강한 자극이 되었다. 다시 열린 2005년 대회에선 1등을 한 스탠퍼드 팀의 자율주행차 ‘스탠리’를 비롯해 5개 자동차가 결승점 통과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구글의 자율주행차를 선도한 서배스천 스런이나, 우버에 영입된 앤서니 레번다우스키 같은 이들이 이 대회에 참가해 자율주행차의 꿈을 키운 ‘챌린지 키드’들이다.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대회라면 2012~2015년 열린 ‘다르파 로봇 챌린지’(DRC)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뒤이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재앙을 목격하면서 다르파는 방사능 유출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인간형 로봇을 만들자는 과제를 내걸었는데, 우리나라 카이스트 대학교의 ‘팀 카이스트’가 내놓은 로봇 ‘휴보’가 당당히 1위를 해 국내외의 주목을 끌었다. 휴보의 우승 외에 이 대회가 주목을 끈 큰 이유는 참가 로봇들의 ‘몸 개그’였는데, 최첨단 로봇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고꾸라지는 모습은 대중에게 안도감과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회를 밑거름으로 한 최근의 로봇 발전은 눈부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지난 2월 공개한 로봇 ‘핸들’은 2m가량 크기의 발에 바퀴를 달아 고속 이동이 가능한데, 그 가공할 움직임에 ‘악몽 유발 로봇’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자율주행차나 로봇 같은 ‘전형적인’ 미래 기술 외에 색다른 과제를 내건 것도 여럿이었다. 2009년 열린 ‘네트워크 챌린지’는 2.4m 높이로 미국 전역 10곳에 달아둔 빨간 풍선을 누가 빨리 찾느냐가 과제였다. 군사연구소가 아이들 숨바꼭질 같은 경진대회를 연 이유는 당시 떠오르고 있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때문이었다. 요즘 이른바 ‘바이럴 마케팅’(소셜네트워크의 입소문을 통한 마케팅 기법)이라고 하는 정보의 전파·수집이 얼마나 빠르게 이뤄지는지 확인하고자 이런 대회를 기획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다르파는 이틀에서 최대 일주일은 걸리리라고 예측했는데, 1등을 한 매사추세츠공대(MIT) 팀은 시작 7시간 만에 모든 풍선을 다 찾아버린 것이다. 우승팀은 “풍선을 직접 찾은 사람에게는 2000달러, 이 글을 그 사람에게 소개한 사람은 1000달러, 그 사람에게 소개한 사람은 또 500달러” 하는 식의 ‘다단계 마케팅’ 기법을 이용했다.
2011년 열린 ‘서류분쇄기 챌린지’도 흥미롭다. ‘인질의 위치가 적힌 종이를 테러리스트가 최신 서류분쇄기로 갈아버렸다면?’이란 상상에서 비롯된 이 대회에서, 다르파는 수수께끼가 적힌 종이 5장을 갈아 종잇조각 1만개의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 조각을 무슨 수단을 쓰든 짜맞춰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과제였다. 당시 색다른 주제만큼 영화 같은 일도 벌어졌는데,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캘리포니아-샌디에이고 대학 연합팀이 진행하던 성과가 방화로 의심되는 사고로 날아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승팀이 연루됐다는 전자우편까지 나왔지만, 우승팀은 “엉덩이가 닳도록 열심히 하느라” 그런 짓을 벌일 틈이 없었다고 강하게 부인해 사건은 미해결로 남았다.
10년 넘게 10개가량의 챌린지가 이어지면서 당대의 큰 기술적 관심사를 반영해 챌린지도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초반에는 자동차나 로봇같이 ‘하드웨어’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해킹이나 인공지능같이 ‘소프트웨어’로 중심이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다르파는 과거 ‘그랜드 챌린지’가 열렸던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해 8월 해킹을 주제로 ‘사이버 그랜드 챌린지’를 개최했다. 앞서 수많은 해킹 대회와 구분되는 다르파 챌린지의 특징은 인간 해커가 아닌 컴퓨터가 서로 겨룬 사상 최초의 대회였다는 점이다. 해커는 각자 자신의 컴퓨터가 스스로 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공격하거나 방어하도록 설계할 뿐,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팔짱을 끼고 컴퓨터 간 접전을 관측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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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경기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제1회 미래성장동력 챌린지 데모데이’ 행사장에서 한 참가팀이 개발한 자율주행 차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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