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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9 14:44 수정 : 2006.01.19 14:44

미국인들이 촌각을 아끼며 연구하는 대표적인 모습은 'Brown Bag Series'라는 명칭에서 찾아 볼수 있다. 90년대 중반 필자는 과학계에 속해 있었다. 그 시절 필자가 공부하던 미국의 어느 학교 컴퓨터과학대학원에서는 촌각을 아끼며 '온갖 종류의 인공지능구상'들을 해내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점심으로 흔히 먹는 햄버거나 샌드위치는, 재활용(Recycle)된 종이로 만들어진 누런 봉투, 즉 Brown Bag에 넣어서 준다. 'Brown Bag Series'는 결국,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도시락 강의'이다. 이에는 관련 연구자들과 대학원 학생들이 도시락을 들고 와서 초청된 연사의 강의를 듣게 되는 것으로, 가벼운 음료수와 쿠키정도는 제공되니 몇몇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쿠키점심 강의가 되기도 한다. 암튼 점심먹는 시간조차 아끼며 지식을 추구하는 그네들의 열성을 보여주는 일단이다. 'Brown Bag Series'에 초청되는 강사는 소화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가벼운 주제가 주를 이룬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야흐로 절기가 한여름으로 접어들던 90년대 중반의 어느날인가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 미국과학재단)의 사무총장이 그 주의 연사였다. 그의 주제는 'Future Education(미국과학교육에 미래)'였던 것 같다.

그는 강의서두에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여기 우리가 서있는 북반구는 한여름의 열기로 뜨겁다. 그렇다면 남반구인 호주도 똑같은 여름인가요?". 대략 이런 것이었던 것 같다. 청중들 중 몇몇은 그곳도 여름일 것이다, 몇몇은 아니 겨울일 것이다라고 의견이 갈렸고 나머지는 머뭇거리기 시작했다(부끄럽지만 필자 또한 확신이 없어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이다).


얼마 간에 시간이 지난후, "남반구는 북반구와 달리 겨울이다"라는 해답을 말해준 그는 연이어 우리에게 인터뷰 화면을 보여준다. 화면에는 MIT, CalTech, Harvard, Princeton 대학의 졸업식장이 등장하면서 방금 천문학분야와 관련된 학위를 받은 박사모를 쓴 학생들이 등장하여, 위와 똑같은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말한다.

놀랍게도 그들 또한 의견이 갈리면서 정답보다는 오답이 많다. 방금 CalTech에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어떤 이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타원형의 공전궤도를 설명하면서, 일년 중 지구가 태양과 가까운 위치에 있을 적에는 전체지구가 여름이고 태양과 가장 먼거리에 있을 적에는 전체지구가 겨울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면서 '오답'을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고 아주 많다는 것을 계속하여 보여준다. 때로 나름의 과학적(?!) 설명을 부연하면서까지. 웃음이 쏟아진다. 그리곤 참석자들 모두가 미국과학교육의 현실을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다.

곧이어 그가 제시한 통계치에는 이러한 미국식 최고급과학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70%이상이 오답을 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시적 지식(Microscopic Knowledge)을 추구하는 과학이 거시적(Macroscopic) 수준에서는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음을 코믹하게 보여주는 일례이다.

당시 필자가 속한 컴퓨터과학 대학원부설 연구소에서는 유럽 CERN에서 시작된 인터넷 통신도구인 웹브라우저의 역할와 가능성에 대한 것이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라 있던 차였다. 본래 인터넷 웹브라우저의 미국식 도구는 X-Mosaic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으며, 초기 미국과학계의 주된 관심사는, 모든 것을 잘게 자르는 환원주의(reductionism)에서 오는 정보단절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으로, <통합도구(Intergration Tool)로서의 웹기능>이 주된 관심사였던 것 같다.

암튼, 놀라운 것은 미국의 최첨단 교육을 받은 수많은 연구자들이 지극히 세분화되어 깊이를 추구하는 사이, 과학교육의 전체성은 깨어지고 지극히 단순한 진리조차도 왜곡하여 인식하는 미국과학교육의 현실을 반성하려는 보고서였던 기억이다.

곧이어 연사는, "우주개발에서 <컬럼비아호>나 <챌린저호>참사가 지극히 작은 소프트웨어적 에러나 작은 나사와 외장타일에서 시작되는 것은, 사물에서 상대적 연관성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임을 강조한다. 전체성의 보존은 차후 미국과학교육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여야 한다는 연사의 결론이었다.

오늘날, 황우석 사태라는 우리의 현실속에도 그러한 환원주의적 폐단을 보게된다. 결론적으로 배아줄기세포가 없다하는데, 그러한 사고가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온 것인지 아직도 그 실체가 오리무중이다. 자신은 자신의 나누어진 임무에는 충실했을뿐이라 어디서 줄기세포가 증발했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다는 연구자들의 항변은 그저 단순한 발뺌을 넘어 환원주의 과학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체성의 추구!". 이는 동양을 사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임에도, 너무도 오래 우리 것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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