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등의 장점으로 인해 식물학 연구는 과거 수백여년간 생물학 연구의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으며 이는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아윈의 경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다아윈은 그의 유명한 진화론 이외에도 실은 식물생리학에 아주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다아윈은 그의 저서 “식물의 운동 능력 (Power of movement in plants)”라는 단행본을 통해 식물은 빛과 같은 환경 요인에 반응하여 자람으로써 유연하게 운동한다는 사실을 설파한 적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인체 생물학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집중적인 투자는 식물보다는 비교적 정교한 생명체인 사람 자체에 대한 연구로 학문적 관심이 이동되도록 하였다. 즉 식물을 통해 동물을 보는 시대가 변해 동물을 통해 식물을 보는 시대로 전이된 것이다. 현대 생물학이 밝힌 연구 성과 중 다양한 생화학적 대사 과정이나 신호전달 경로 및 유전자 발현 과정 등은 꼬마선충, 초파리, 마우스 등 모델 동물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대는 동물 시스템을 통해 얻어진 과학적 사실들을 식물에 적용하여 이해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다시말해 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이나 여타 모델 동물 시스템에서 얻은 지식을 알지 못하면 식물학 자체를 연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학자들 사이에는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도 오간다 “식물학자는 생명과학 전체에 관해 교수할 수 있지만 동물학을 전공하는 분들은 식물을 가르치지 못한다”. 식물학자는 생명과학 전체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지 않고서는 식물학 자체를 연구하기 힘들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식물생명공학은 식물이 갖는 우수한 생물학적 특성으로 인해 인간생명과학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정도의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면도 무시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으로 식물에서의 복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인 “줄기세포에 의한 복제”는 이미 식물에서 1970년대에 이루어졌다. 또한 손상된 유전자를 온전한 새로운 유전자로 대치하여 정상적인 개체를 탄생시키는 진정한 의미의 유전자 치료기법이 완성된 역사도 식물에서는 벌써 20년이 넘는다. 이러한 식물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인해 현대 식물 생명공학은 고염분이나 가뭄 등의 스트레스에 내성을 갖는 작물 개발, 수확량이 증가된 벼, 알러지를 유발하지 않는 과일의 개발, 비타민이 풍부한 토마토의 개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분야로 그 응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현재 인류가 식물에서 얻은 생명과학적 성과를 인간을 비롯한 동물 시스템에 그대로 적용 시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연구비가 투여되어야 가능할지 상상하기 조차 힘들다. 햇빛이 화사하게 비칠 때 사물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에따른 그림자도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식물 생명공학의 놀라운 발전은 학문적 발전이 부여하는 여러가지 이로운 점이외에 유전자변형 작물이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유해물질에 대한 두려움 또한 일반인들의 마음 속에 증대시키기에 이르렀다. 지난 20여년간 식물학자들은 이러한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하고 파악가능한 모든 유해성을 검사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수행하였다. 특정 유전자변형 상품은 10년 이상 소요되는 안전성 검사를 거쳐 안전성이 입증된 경우만 시장에 유통되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식물생명과학자들이 이러한 과정에서 인식한 사회적 책임은 이들이 “생명윤리 (Bioethics)”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되었다. 유전자 변형에 의한 작물의 형질 개선은 “생명공학에 의한 인간의 질병치료”라는 명제 보다는 시급성이 덜하기 때문에 일반인의 관심이 과열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식물생명공학이 불러 올 수 있는 생명윤리 문제를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시간을 두고, 파악하여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생명윤리에 대한 관심은 식물학자가 먼저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문제로 사회가 어지럽다. 관련된 세간의 기사중에 어느 식물학자가 빈번히 등장하는 것을 본다. 내용은 주로 이 식물학자가 과학적 범죄행위를 한 특정 과학자와 이해하기 힘든 과정을 통해 연루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사를 읽고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식물학자가 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기때문에 의생명윤리에 대해 연구하고 자문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논리가 갖는 문제점이다. 마치 식물학자는 식물밖에 아무 것도 모르니까 생명윤리 등을 논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사고를 바탕에 두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분들께는 위에서 언급한 생화학적 동일성이나 식물 생명공학의 발전 도상에서 전개된 유전자변형 작물에 대한 생명윤리 문제를 체험한 식물학자들의 입장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길 바란다. 식물학은 연구 대상으로하는 재료만 동물과 다를 뿐 생명과학 그 자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인간 줄기세포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식물학 연구자이기 때문에 보다 더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생명윤리 문제를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야 했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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