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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내면의 월귤 자생지. 빙하기의 유산인 이 식물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나오는 풍혈 주변에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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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 군락지 가보니
차가운 바람구멍 ‘풍혈’로 여름에도 저온 유지생식력 서서히 약화…온난화 시대 보호 ‘특명’ 마지막 빙하기가 약 1만년 전 끝나고 기후가 온화해지자 찬 날씨에 익숙하던 한반도 식물들에 비상이 걸렸다. 살아남는 길은 두 가지였다. 북쪽으로 이동해 한랭지를 찾아가거나 비슷한 기후의 고산지대로 피하는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북극권과 고산지대에 널리 분포하는 월귤이 설악산 꼭대기에서 생존한 것은 이런 전략 덕분이었다.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 사이 암석지대와 귀때기청봉 일대 등 해발 1600m 고산지대에 적은 수의 월귤이 자란다. 그런데 2005년 이수원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팀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 방내리의 해발 350m 산기슭에서 월귤 군락을 발견했다. 고산식물이 깊은 산을 두고 마을 어귀로 내려온 까닭은 뭘까. 지난 26일 임종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실장 팀과 찾은 홍천의 월귤 분포지는 농가의 감자밭 고추밭에서 불과 20~3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산자락에 있었다. 유전자원 보호를 위해 입산을 통제한다는 안내판이 걸려 있는 철제 울타리 안에 들어서자 녹지 않은 눈밭 사이로 반짝이는 작은 잎을 지닌 식물이 융단처럼 깔린 모습이 펼쳐졌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무’라는 별명처럼 나무는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모습이었다. 키는 20㎝를 넘지 않고 잎은 가죽처럼 두껍고 윤기가 난다. 추위와 바람에 견디려는 고산식물의 특징이다.
월귤은 ‘풍혈’ 주변에 자라고 있었다. 찬 바람이 나오는 바람구멍인 풍혈은 얼음골이라고도 하는 독특한 지형으로, 산비탈에 쌓인 암석층과 지하수의 작용으로 여름에도 찬 기운이 새어나오는 곳이다. 임 박사는 “고도가 낮은 홍천에 월귤이 살 수 있는 것은 여름에도 저온상태를 유지시켜 준 풍혈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는 임 박사와 함께 <대한지리학회지> 최근호에 실은 논문에서 홍천 월귤 집단과 기온의 관계를 분석했다. 2005년부터 2년 동안 30분마다 자동측정한 온도 기록을 보면, 월귤이 자라는 지상 10~15㎝ 높이의 연평균 기온은 5.65도였다. 풍혈에서 나오는 찬 공기의 영향은 한여름에 가장 커 8월에는 지상 1.2m와 풍혈 출구의 기온차가 18.3도에 이르렀다. 논문은 홍천에 월귤이 분포하게 된 이유로 “풍혈 가장자리에 나타나는 낮은 여름 기온이 고온에서 생리적 스트레스를 받는 월귤이 생육하는 데 맞는 미기후 조건을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김치를 보관하기에 딱 좋은 월귤 자생지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김동춘(59·홍천군 내면 방내리)씨는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일하다 땀을 식히거나 일년 내내 김치를 묻어 보관할 때 풍혈을 유용하게 써 왔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홍천의 월귤 자생지가 고도나 위도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남쪽이자 낮은 곳이라는 생물지리학적 가치가 크다고 보고,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홍천 월귤이 지구온난화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자생지가 설악산보다는 넓지만 단독주택의 정원 크기인 약 200㎡에 불과하다. 고립된 월귤의 유전자가 근친교배로 쇠퇴할 가능성도 있다. 임 박사는 “꽃이나 열매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추운 지역에 비해 생식력이 떨어진 상태”라며 “경쟁자인 다른 관목이 확장하지 않도록 하고, 풍혈이 유지되도록 지형과 미기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천/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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