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에 있는 선흘곶자왈의 시작부 안쪽 모습. 초여름인 6월 12일 곶자왈 내부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돼 상록활엽수와 고사리와 같은 양치류 식물들이 용암이 굳어 생긴 바위 위에서 자라고 있었다.
|
지난 5일 세계환경의 날을 맞아 제주에서는 곶자왈 살리기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제주참여환경연대와 ‘평화를 위한 제주종교인협의회’는 곶자왈 살리기 캠페인을 벌였고, 제주환경운동연합은 곶자왈 답사에 나섰습니다.
곶자왈 지킴이를 자임한 ‘곶자왈 사람들’은 이날부터 25일까지 곶자왈의 훼손 현장과 생태 모습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있습니다.
바위에 나무 엉켜 숲 이룬곳
빗물 스며들어 지하수 풍부
제주 사람들 생명수 다름없어
곶자왈이 무엇이냐고요? ‘곶’은 천연림을, ‘자왈’은 자갈이나 암석을 뜻하는 제주말입니다. <제주어사전>에는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이라고 돼 있으나 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듯 합니다.
지질학적으로는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경사면을 흘러가면서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형성된 독특한 지형이라고 합니다. 흙도 없는 바위에 뿌리를 딛고선 각종 나무 등이 뒤엉킨 곶자왈을 볼 때면 마치 제주섬의 원시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답사에 나선 60여명이 이날 찾아간 곳은 선흘곶자왈입니다. 북제주군 조천읍 선흘리에서 덕천리로 연결되는 도로가에서 바라본 곶자왈은 끝간데 없이 이어진 초록빛 ‘숲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동·서로 7㎞, 너비 1~2㎞에 이르는 광활한 지대입니다.
관광지 개발계획이 있는 묘산봉 지구 부근으로 곶자왈에 들어서자 지천에 피어난 하얀 찔레꽃 향기가 방문객들을 취하게 합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상록활엽수림지대 답게 키낮은 초본류에서 커다란 구실잣밤나무 등 각종 활엽수들이 엉클어져 자라고 있습니다.
|
||||||
선흘곶자왈은 초지와 천연동굴, 자연습지, 희귀 동식물의 군락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도로가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는 ‘검흘굴’이라는 수직동굴이 있습니다. 입구가 수직으로 된 이 동굴 주변과 안에는 각종 나무들이 자라고 있지요.
곶자왈을 헤치고 들어가면 일부 난대림 지역을 빼고는 곶자왈에서만 자생하는 붓순나무와 식나무 군락이 눈에 들어옵니다.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각종 난류와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의 동백동산에는 유일한 제주특산 속 식물로 기록된 제주고사리삼도 한곳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환경부 지정 야생보호식물인 순채도 선흘곶자왈 습지에는 많이 자랍니다.
참여환경연대 이지훈 대표는 “관광개발과 골프장개발 등으로 곶자왈이 위기에 처해 있다”며 “1평씩 사서 지키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이날 답사에 참석한 신부님이나 목사님, 원불교 교무님들도 모두 곶자왈 보호에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곶자왈은 구좌-성산 곶자왈), 한경-안덕곶자왈, 애월 곶자왈), 조천-함덕 곶자왈 등 주요 4개 지대가 있고, 이 지대는 다시 10개 지역으로 나눠집니다. 면적만도 7700㏊로 한라산 국립공원을 제외한 전체 임야의 10% 정도를 차지합니다. 선흘곶자왈은 조천-함덕곶자왈에 속하지요.
4개 곶자왈지대 면적만 7700㏊
희귀동식물 어우러져 생태계보고
인간을 위한 개발 명문 파헤쳐
곶자왈 사람들 “파괴 막기” 나서
곶자왈을 ‘제주의 허파’라고 불립니다. 왜냐구요? 지질특성상 빗물이 그대로 스며들어 제주 사람들에게 생명수나 다름없는 지하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하수로 인해 보온·보습효과가 뛰어나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기도 합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현상이지요.
선흘곶자왈만이 아니라 제주도내 곶자왈 곳곳에는 한국 미기록종인 창일엽, 제주암고사리, 환경부 지정 보호야생식물인 개가시나무, 미기록 목본식물인 천량금, 환경부 지정 희귀식물인 붓순나무 등 희귀식물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곶자왈사람들’의 김봉찬(42·식물전문가) 공동대표는 한라산이나 일반 숲 등에서 볼 수 없는 생태학적 특성들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1천m 이상의 고지대나 두만강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좀고사리나 왕지네고사리 등의 식물이 해발 200~300m의 곶자왈 지대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곶자왈에서만 미기록종 고사리 10여종을 찾아냈고,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목본류의 천량금 60개체를 곶자왈에서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
||||||
제주도가 ‘골프의 천국’이 돼가는 동안 오랜 세월 지켜온 ‘제주의 허파’는 야금야금 생채기가 나고 있습니다. 한경-안덕 곶자왈지대는 그렇게 파괴되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골프장 개발로 파괴되고, 골프장의 조경을 위해 곶자왈의 희귀 나무며 용암석이 파헤쳐지고 있지요.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올해 1월 8일 ‘곶자왈 사람들’(상임대표 송시태)을 결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0여년 동안 지방지 기자로 근무하면서 곶자왈 취재반장을 맡았던 김효철(40)씨는 제주에 부는 개발의 논리 앞에 곶자왈이 파괴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합니다.
취재를 하면서 곶자왈이 제주도의 보물처럼 느껴졌다는 김 처장은 이제는 많이 이해해주지만 가족과 직장 동료들의 반대를 뒤로 하고 상근 사무처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 시작한 사진전 전시에 바쁜 그는 단체 활성화와 조사 및 교육활동에 힘을 쏟겠다고 합니다.
푸르름이 더해가는 6월. 드넓은 선흘곶자왈 상록활엽수림지대의 고요가 눈을 찌릅니다. 바람도 이 속에서는 평온합니다. 곶자왈 속의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를 보면서 인간과 자연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위한 개발을 명분으로 ‘제주의 허파’가 망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천연의 숲을 돈으로 살 수도 되돌릴 수도 없겠지요.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