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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8 17:20 수정 : 2005.01.18 17:20

경기부양을 앞세운 정부의 규제완화와 개발정책에 따른 환경위기를 경고하며 지난해 11월 환경비상시국을 선언한 환경운동 단체들의 활동가 30여명이 지금 전국의 환경파괴 현장을 순례하고 있다. 지난 3일 이들은 “브레이크 없는 개발의 역사가 남긴 결과를 짚어보면서, 자연에 용서를 구하겠다”는 말과 “이 행진의 끝에서 녹색 희망의 싹을 찾아내겠다”는 각오를 남기고 서울을 떠났다. 순례가 종반으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그들은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보았을까. 이들의 여정을 뒤따라가 봤다.

#1 댐정책 실패의 표본 임하댐

상류 점토질에 누런물 가득
생태계 변이·상수원 부작용

▲ 5일 오전 안동 임하댐에서 초록행동단원 30여명과 안동지역 주민 30여명이 배 11척에 나눠타고 임하댐 탁수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선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초록행동단이 순례 사흘째 되는 날 찾은 경북 안동시 임하면의 임하댐은 환경단체들이 우리나라 댐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는 곳이다.

국내에서 8번째로 큰 다목적댐인 임하댐의 물은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 때 생긴 흙탕물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아 누런색을 띠고 있다. 임하댐에서 흙탕물이 이례적으로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점토질로 이뤄진 상류지역의 토질에 기인한다. 이점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애초부터 상수원으로 사용하기에 부적절한 곳에 댐을 지었다고 주장한다.

직접적 피해자는 댐 하류에서 취수한 물을 먹는 안동시민들이다. 흙탕물을 맑게 하려고 과다 투입하는 응집제 성분 탓에 알루미늄의 기준을 초과한 물이 공급되고 있다. 임하댐 흙탕물은 또한 멀리 구미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하류 하천의 바닥을 미세한 토사로 뒤덮어 생태계 변이를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주민들에게서 댐 해체 요구까지 터져나오자 건설교통부와 수자원공사는 2005년부터 3년 동안 3700억원을 들여 탁수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주민과 환경단체들의 반응은 차갑다. 지난 12일 경북 안동지역 70여 시민·사회단체가 출범시킨 ‘임하댐 탁수문제 해결을 위한 안동지역 범시민대책협의회’(가칭)는 임하댐을 다목적댐에서 홍수 조절용 댐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 골프장 광풍과 기업도시법

지자체 발전이라면 너도나도
재벌에 특혜 기업도시법까지

▲ 12일 오전 초록행동단과 전국골프장백지화 공대위, 해남골프장 반대모임 회원들이 전남 해남군 산이면 서초등학교에서 해남 제이(J) 프로젝트 공동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환경비상시국회의 제공



녹색희망을 찾아 나선 초록행동단원들의 순례길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지자체들이 골프장을 마치 지역 발전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골프장들은 자리잡은 국토 곳곳에 생채기를 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도 깊은 갈등의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순례 7일째 전남 구례를 찾은 행동단원들은 40~50여년 전 이념으로 갈라졌던 지리산 자락이 이제 골프장을 둘러싼 대립으로 또다시 갈라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 생명의 행진 10일째인 12일 초록행동단이 방문한 해남군 산이면은 지난 12월 국회에서 제정된 기업도시 개발 특별법이 적용되는 시범지구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이른바 ‘해남 제이프로젝트’의 핵심지역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주도하게 될 이 프로젝트가 실행된다면 산이면 지역의 40여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 온 2400여 가구 7000여명의 주민 대부분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 해남 제이프로젝트의 전체 개발계획에서도 골프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장은 “기업도시를 추진할 수 있는 대규모의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 재벌뿐인데, 이들에게 막대한 부동산 개발이익을 보장하는 초헌법적 특혜를 부여하는 기업도시법은 ‘재벌 특혜법’일 뿐”이라며 “재벌 특혜법인 기업도시법은 폐지하고, 해남 제이프로젝트는 백지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3 구멍 뚫리는 계룡산국립공원

단위 면적당 생물종다양성 최고
개발에 눈먼 그들에겐 야산일뿐

▲ 16일 오후 계룡산국립공원 관통도로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계룡산 자락에서 초록행동단원들과 전국에서 온 환경운동가 등 60여명이 ‘자연아, 미안해’라고 쓰인 펼침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자연아, 미안해!”

초록행진 14일째인 16일 계룡산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터널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관암봉 자락과 입체 교차로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삽재 현장을 찾은 초록행동단원과 환경단체 회원 등 60여명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북한산 국립공원을 마지막으로 국립공원에 다시는 관통도로를 내지 않겠다고 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진행되는 공사다. 교통량이 줄어들고 있는데도 환경영향 평가서에는 엉뚱한 곳의 교통량 측정자료가 제시됐던 공사, 환경부조차 환경영향평가의 부실을 인정했던 공사가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며 이들은 우선 미안하다는 말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리산과 경주에 이어 세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룡산은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숲을 지니고 있어,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단위 면적당 생물종 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4차로 관통도로의 결정에 계룡산공원의 이런 특수성에 특별한 대접은 없었다. 그저 이름없는 야산을 지나가는 일반 도로와 조금도 다름없이 “2차로 국도의 통행량 기준이 넘었으니 4차로로 확장해야 한다”는 기계적 판단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국장은 “계룡산 국립공원 관통도로가 국립공원 절대보존 공간인 자연보존지구를 200m나 통과하는 것은 명백히 자연공원법 위반”이라며 “건교부는 지금이라도 즉각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환경파괴 현장 순례길서 보내온 편지

인간 이기심 치가 떨린다

▲ 초록행동단에 참여하고 있는 환경운동연합 생태도시센터 박상호(37) 간사는 지난해 3월까지 회사 생활을 하다 늦깎이로 환경운동에 뛰어든 새내기 활동가다.
전국에 환경비상등을 켜고 초록희망을 찾겠다는 결의로 농성중인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을 출발한 지 오늘로 14일째다. 초록행동단원들과 함께 내디딘 첫걸음은 부슬거리는 빗속에서 시작되었다. 원주 군기지 환경오염 현장에서 자병산, 임하댐, 고리 원자력발전소, 마산만, 지리산까지 순례단의 눈에 비친 우리 땅은 거대한 토목공사장이었다. 산이 이어져야 할 자리에 휑한 석회가루가 날릴 뿐, 더는 생명과 초록의 공명이 없었다. 초록행동단은 겨울 찬바람보다 더 차가운 석회 바람 속에서 깊이 머리 숙였다. 자연아, 진심으로 미안해….

산이 사라진 곳이 있는가 하면 물길이 막힌 곳도 있다.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 저수량 5억9500만톤으로 국내 8번째인 초대형 임하호였다. 잠겨버린 고향의 물 위에서 선상시위를 하던 안동 임하댐 주민들의 눈을 보며 말문이 막히기 시작했다. 고향을 삼킨 물 위에서 배를 몰며 고기를 잡는 심정이 얼마나 아릴지, 물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어떻게 달래고 있는지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고향을 되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기능도 못하고 탁수만 만들어내는 댐 문제를 해결해서 제대로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 거기에 있었다.

그런가 하면 시골마을 한가운데 하늘을 찌르는 듯한 다릿발을 세워 고속도로를 만들고 있다. 어떤 마을은 이중 삼중의 하늘도로로 온 마을이 다릿발 아래에 잠겨버렸다. 도로를 지붕에 이고 사는 마을들.

초록행동단이 마주치는 가장 처절한 모습은 바로 파괴의 현장에 남아 싸우고 있는 주민들의 고통이었다. 농촌마을에는 온통 힘없고, 나이든 어르신들만 남았고, 법 좋아하는 개발업자들은 이 촌로들이 평생에 구경도 못한, 아니 듣도 못한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지리산온천랜드 골프장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지리산 산동면 사포마을 주민들은 80명밖에 안 되는 주민들 중 63명이 7억2천만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순례길 내내 우리는 거대한 자연에 깊이 상처를 내고도 득의만만한 인간의 이기심에 떨었으며 생명이 사라진 자연의 비명에 귀를 막아야 했다. 힘없는 지역 공동체의 운명도 자연의 운명과 다르지 않았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파괴 현장에는 공동체의 붕괴와 지역주민들의 서러움이 녹아 있었다. 전국 환경파괴 현장 순례는 우리 모두에게 숨막히는 고민을 안겨주고 그 이상의 빚을 짊어지게 했다.

환경연합 박상호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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