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저장고·작은 하수처리장 곳곳 설치해 ‘물테크’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애들레이드에서는 빗물을 연못에 가두어 정화시킨 뒤 거대한 지하 대수층에 저장했다가 생활용수로 꺼내 쓰는 ‘빗물 저금통’이 활발히 건설되고 있다. 솔즈베리시 기술자 콜린 피트먼이 연못 물을 지하에 채워 넣는 시설을 가리키고 있다.

물관리 새틀 짜는 호주를 가다
기후변화로 10여년 가뭄에 위기
도시가구 25% 빗물저장조 설치
건물들에선 소규모 처리장 운영
물소비량 많은 농업지역이 과제

지난 8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최대의 ‘빗물 저장고’가 있다는 애들레이드 지역 살리스버리 시를 찾았다. 하지만 주택가 한가운데에 거대한 구조물은 찾을 수 없고 갈대밭 사이로 물새가 노는 연못이 있을 뿐이었다.

“180m 지하 대수층이 담수를 모아두는 저금통입니다. 그 물로 전체 가구의 10%인 1만2000여가구에 생활용수를 공급하지요. 짭짤하게 돈을 버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콜린 피트먼 솔즈베리시 공학자문관이 설명했다.

도로와 지붕 등 도시에 쏟아지는 빗물은 연평균 강수량이 500㎜ 정도인 이곳에서 흘려보내기 아까운 자원이다. 그래서 빗물을 관로를 통해 연못에 모아 오염물질을 거른 뒤 펌프로 지하에 있는 길이 50㎞, 너비 10㎞, 깊이 30m의 대수층에 주입한다.

이 물을 다시 퍼내 화장실 세척수, 정원수, 공업용수로 쓰는데 물값이 음용수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아 인기가 높다. 가정에선 2개의 계량기를 설치하고 식수와 샤워 등엔 음용수를 틀고 나머지 생활용수로는 이 ‘저장 빗물’을 쓴다. 이런 시설이 솔즈베리에만 64곳이 있다.

‘인간이 거주하는 가장 건조한 대륙’으로 불리는 호주가 기후변화의 충격에 대비해 물관리의 틀을 새로 짜고 있다. 지난 2~10일 호주에서 열린 시드니대학과 국가경영전략연구원(원장 정동수)이 주관한 ‘2012 차세대 지도자 국제교류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물을 절약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호주는 세계적인 석탄, 우라늄, 철광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이제 광물 목록에 ‘생활하수’가 추가됐다. 시드니시는 하수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하수 채광’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구글 본사가 입주해 있는 시드니 시내의 한 6층짜리 건물은 그런 ‘광산’이다. 개인 소유의 6층짜리 이 건물은 입주자와 인근 건물에서 발생한 하수를 하루 4만ℓ 자체 시설로 처리한다. 또 가까운 바다에서 하루 1만3000ℓ의 바닷물을 끌어들여 에어컨 냉각탑의 냉각수로 쓴다. 덕분에 이 건물의 연간 상수도 사용량은 ㎡당 277ℓ에 그쳤다. 이렇게 처리한 물은 화장실 등의 생활용수로 쓴다.

시드니시가 기존의 광역 하수처리장이 있는데도 이처럼 분산형 하수처리장을 운영하는 이유는 ‘물이 더는 공짜가 아니다’는 깨달음에서였다. 바크티 데비 시드니시 물전략과장은 “멀리 떨어진 댐에서 모은 물을 모두 음용수 수준으로 정수처리해 놓고 정작 2%만 마시고 있다. 물의 절반은 그런 처리가 필요 없으니 물을 재활용해 쓰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드니시가 최근 마련중인 ‘물 분산 마스터플랜’은 2030년까지 물 사용량을 2006년 기준으로 10% 줄이고 수돗물 사용량의 10%를 재활용한 물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일반 건물 소유주도 시의 재정지원을 받아 소규모 처리장을 운영해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졌고, 공원에 집수조를 만들고 그 물로 식물을 길러 수돗물 절약, 열섬현상 완화, 빗물 정화 등의 효과를 거두는 ‘빗물 정원’이 곳곳에 만들어지고 있다.

호주가 이처럼 물관리에 팔을 걷고 나선 이유는 1997년에서 2009년까지 계속된 ‘밀레니엄 가뭄’ 때문이다. 이 가뭄으로 댐은 바닥을 드러냈고 호주 최대의 머리-달링 강은 바다에 이르지 못했다.

온 나라가 가뭄 대책에 몰두하던 차에 이번엔 2010~2011년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다. 빌럼 페르보르트 시드니대 수문학 및 유역관리 교수는 “기후변화는 예측하기 힘든 변동을 부른다는 걸 보여준다. 따라서 물을 더 현명하게 이용하는 적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뭄사태를 겪으면서 호주인의 하루 물 사용량은 2005년 350ℓ에서 150ℓ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물 때 정원에 물 주는 것을 금지하는 등 재앙은 생활방식을 바꾸었다.

마이클 윌리엄슨 빅토리아주 정책분석관은 “얼마 전 집을 새로 지었는데 건축규정에 따라 7000ℓ들이 빗물 저장조를 2개 설치했다”고 말했다. 호주 도시 가구의 약 25%가 이런 빗물 저장조를 갖고 있다.

또 스마트 수도계량기가 보급돼 물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검침하기도 한다. 한밤중에 묵은 빨래를 하다가는 시 당국이 자동으로 발송하는 “비정상적으로 물 소비량이 늘어 누수가 의심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시만의 노력으로 물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농업이 물 소비의 8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호주 동남부의 100만㎢에 이르는 머리-달링 강 유역은 호주 최대의 농업지역이다.

게다가 이곳의 물은 300만명이 식수로 쓰고 있고 40개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으며 람사르 습지 16곳을 포함해 3만개의 습지가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당연히 물 이용을 둘러싼 상류와 하류, 농촌과 도시, 사람과 자연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호주 정부는 그 해결책으로 수자원 관리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10년 단위 ‘유역 계획’ 작성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그 핵심 내용은 관개용수를 줄이고 환경용수를 늘리는 것이다. 환경을 위한 유량을 2019년까지 4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강수량은 늘지 않고 이미 농민에게 수리권을 판매한 뒤여서 호주 정부는 농민으로부터 수리권을 되사고 기반시설 정비와 효율화 기술을 적용해 부족한 양을 충당할 계획이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한 정인호 티에스 케이워터 박사는 “한국과 호주는 수자원 여건과 이용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기후변화는 장차 한국에도 잦은 가뭄사태를 불러올 가능성이 커 효율 향상과 지속가능성을 뼈대로 하는 호주의 대응 방식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드니·캔버라·애들레이드/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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