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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29 19:43 수정 : 2013.10.29 19:43

[지구와 환경] 환경 이야기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농도는 세계 어느 곳이나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는 불공평하다. 온실가스 농도는 공평하게 증가해도, 피해는 온난화 책임이 덜한 가난한 나라들에서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부유한 나라들은 경제발전을 통해 기후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 반면, 가난한 나라들은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기후변화 적응 수준의 격차는 너무나 심해, 유엔개발계획(UNDP) 보고서조차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분리 정책에 빗대 ‘(기후변화) 적응 아파르트헤이트’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전세계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다음달 11일부터 22일까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제1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를 연다. 해마다 열리는 이 회의도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또다른 ‘아파르트헤이트’의 현장이다. 당사국회의의 절차는 민주적이고, 190여 참가국들의 지위는 평등하다. 표결이 필요하면 13억 인구의 중국이나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나 모두 한 표로 의견을 표시한다.

하지만 이것은 형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표결할 내용을 만들어내는 논의 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느냐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에 참가하는 선진국들의 대표단 규모는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백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대규모 대표단을 보내는 이유는 당사국회의의 일정표만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당사국회의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공식·비공식 회의가 여러 회의실에서 같은 시간대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렇게 진행되는 회의에 대표 한명씩만 내보내려고 해도 대표단의 숫자는 두자릿수가 넘어야 한다. 게다가 회의장에서 수시로 나오는 각종 자료를 신속하게 검토하고, 다른 나라의 논리를 분석해 반박하고, 자기 나라에 유리한 주장을 펴려면 법률, 통상, 경제, 과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 인력의 현장 지원이 필요하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대표단의 수는 금방 수십명이 된다. 하지만 여비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들의 대표단은 한자릿수를 넘기기 쉽지 않다. 이런 인원으로는 중요 회의만 쫓아다니며 흐름을 파악하기도 벅차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나라들은 선진국들과 달리 언제나 전체 논의 과정은 잘 모르는 채, 최종 단계에서 정리된 논의 결과를 건네받고 찬반 의사를 표시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논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대를 할 수 있지만, 논의를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만들기는 어려운 것이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아파르트헤이트는 국가 사이 문제만은 아니다. 온난화 피해를 최종적으로 받아내야 하는 것이 개인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심각한 것은 국가 내의 부유한 계층과 가난한 계층 사이의 기후변화 적응능력 격차다. 가난한 사람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부유한 이웃들보다는 적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서든 기후변화 위협의 맨 앞에 노출돼 있는 사람들은 이들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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