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10 19:47
수정 : 2013.12.10 19:59
[지구와 환경] 환경 이야기
우리말로 ‘기울어지는 지점’이나 ‘쓰러지는 지점’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 ‘티핑 포인트’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이전 상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극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단계라는 의미로, 물리·화학·생물 등 과학 분야는 물론 정치·문화·교육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종종 사용된다. 가스불 위에 올려 놓은 냄비 속에서 잔잔하게 데워지던 물이 온도가 100도를 넘어서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나, 잘못된 정치에 서서히 표출되던 시민의 불만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분출해 역사를 바꾸는 경우가 그런 예다.
기후변화 과학에서 티핑 포인트는 지구 온난화에 따라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기후변화가 어느 순간 인류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진행되는 단계를 말한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지구 기후 시스템이 이처럼 티핑 포인트를 넘어서게 만들 수도 있는 대표적 시나리오의 하나로 꼽는 것이 시베리아를 비롯한 북극 주변의 영구 동토층과 바다·호수 밑에 갇혀 있는 메탄이 급속하게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상황이다. 메탄이 대기 중에서 일으키는 온실 효과는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보다 30배 이상 강력하다. 지구 온난화로 지표 기온과 수온이 점차 올라가면서 메탄은 이미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풀려나오는 메탄은 온난화 속도를 빠르게 한다. 가속화하는 온난화는 메탄이 더 많이 더 빨리 새어나오도록 만든다. 이런 과정이 계속 증폭되다 보면 기후변화가 걷잡을 수 없는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우려다.
지난달 세계 190여개 나라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뚜렷한 성과 없이 제1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끝낸 다음날 과학저널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메탄의 위협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리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알래스카 주립대 과학자들은 이 저널에서 동시베리아 연안 바다와 북극판(ESAS)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 지역의 메탄 방출 속도가 지금까지 예상했던 것보다 두배 이상 빠른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과거 이 지역의 메탄 방출량은 연간 800만t으로 추정됐는데, 새로운 측정을 바탕으로 평가해보니 연간 최소 1700만t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이는 북반구 최대의 메탄 배출원인 북극권 툰드라 지역 전역에서 방출되는 양과 맞먹는 양이다. 연구팀은 “다른 모든 북극해 대륙붕들의 메탄 방출 잠재력도 실제보다 크게 과소평가됐을 수 있다. 이 부분에 좀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논의에서 북극권에 시한폭탄처럼 잠재된 메탄의 위협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국제사회 기후변화 논의의 과학적 기초를 제공하는 정부간협의체(IPCC)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피시시는 지난 9월 발표한 제5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의 미래 전망 모델링 평가에서 아직 과학적으로 충분히 계량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극권의 메탄 방출을 고려하지 않았다. 아이피시시의 기후변화 전망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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