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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스키 활강경기장 예정지인 가리왕산 하봉 능선에 있는 지름 120㎝의 들메나무. 이런 크기의 나무는 해마다 같은 종의 지름 10~20㎝짜리 나무 전체와 맞먹을 만큼씩 체적을 불리며 빠른 속도로 대기 속 이산화탄소를 제거한다. 강원도는 가리왕산 스키장 건설로 크고 작은 나무 5만여그루가 훼손될 것으로 추산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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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환경] 거꾸로 나이 먹는 나무?
동물은 태어나서 자라다가 어느 정도 성숙하고 나면 성장이 멈춰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그러면 나무는 어떨까? 유명 과학저널인 <네이처>에 얼마 전 나무가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명체를 구속하는 이 자연법칙에서 예외적 존재임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실려 환경과 기후변화와 관련해 특별한 관심을 끈다. 나무는 일정 높이까지 자라면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다. 따라서 나무 체적이 증가하는 속도도 나무가 늙어가면서 당연히 느려지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미국, 중국, 말레이시아 등 16개 나라 38명의 연구자가 참여한 이 연구의 결론은 이런 가정을 뒤집었다. 나무의 키는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더 자라지 않지만, 체적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빠른 속도로 계속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세쿼이아와 킹스캐니언 국립공원에 있는 지질조사국(USGS) 소속 생물학자로 이 공동 연구를 주도한 네이트 스티븐슨은 최근 미국 <엔피아르>(NPR)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일반적 가정과) 정반대였다. 나무의 성장률은 나무들이 커질수록 점점 더 증가한다”고 말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듯한 나무의 놀라운 성장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젊어지는 셈이어서 부러운 일이다. 대기 중에 점점 증가하는 이산화탄소가 몰고 오는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처지에서 보면 부러울 뿐 아니라 반갑기마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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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세쿼이아 국립공원에서 자라고 있는 거대한 세쿼이아 나무의 모습. ‘셔먼 장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나무는 높이 83.8m, 지름 7.7m, 체적 1487㎥에 이르며, 2300~2700살가량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나 지름을 따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크지는 않지만, 두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제일 큰 나무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 나무는 같은 종의 다른 어느 나무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계속 커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툭시소,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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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세월 지나면 키는 멈추지만
체적 증가 속도는 갈수록 빨라져
숲 내부 탄소 순환에서 더 큰 역할
고목 베어내고 어린나무 심자는
전통 기후변화 대응 상식 ‘흔들’ 이런 연구 결과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숲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늘리려면,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고 어린나무를 심어 새로 숲을 조성해야 한다’는 상식처럼 알려진 내용과 배치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실제 지난해 8월 <네이처 기후변화>에 실린 또다른 연구 결과는 “유럽 숲의 탄소 흡수량이 한계점에 다가가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며 가장 큰 이유로 나무의 노화를 들었다. 당시 외신을 보면 연구자들은 “주로 20세기 초반과 2차대전 이후에 심어 다 자란 나무들로 조성된 산림의 비율이 높아 생장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유럽연합과 각국 정책 입안자들은 중요한 서식지 내 특정 지역은 노화된 수목과 식물 다양성에 중점을 두고 유지해야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지속적 목재 생산에 더 중점을 두고 산림이 활기를 되찾도록 해야 한다”고 말해, 오래된 나무의 벌채와 어린나무 조림을 제안하기도 했다. 새로운 연구 결과를 낸 학자들은 그러나 개별적인 나무들의 빠른 탄소 흡수율이 반드시 전체 숲의 탄소 저장량의 순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오래된 나무들도 언젠가는 죽어서 쓰러지게 되고, 그러면 부패하면서 저장했던 탄소를 다시 대기 중으로 내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에이드리언 다스는 앞선 미 지질조사국 보도자료에서 “그러나 우리의 발견은 나무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크고 오래된 나무일수록 숲 내부의 탄소 순환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팀에서 가장 경기력이 우수한 스타플레이어들이 90대 노인들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 나무는 영원히 자랄 잠재력이 있는 것일까? 나무가 바람이나 벼락에 쓰러지거나, 가뭄이나 병충해에 말라 죽지 않으면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미 보스턴대의 생물학자 네이선 필립스는 이런 엔피아르의 질문에 “나는 그것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본적으로 무제한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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