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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 쥐잡기운동은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나선 국민총동원 체제의 연습장이었다. 그러나 쥐의 높은 기피성과 서식지 이동 성향에 따라 매년 3000만~4000만마리를 포획해도 쥐 박멸은 허사였다. 오히려 미국 시장에 출시되기 전의 쥐약을 섣부르게 수입해 국민에게 무료 배포함으로써 수백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사진은 당시 정부가 배포한 쥐잡기운동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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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생명
미국대사관 ‘쥐약’ 비밀문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서류 더미에서 1975년 주한 미국대사관이 ‘쥐약’과 관련해 본국에 보낸 비밀 보고서를 발견했습니다. 미국에서 개발된 살서제 ‘바코’, 한국에서는 ‘백호’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RH-787 성분의 신약이었습니다. ‘인체에 무해하다’고 알려진 이 쥐약은 한국에서 수백명의 사상자를 불렀습니다. 군사정부의 국민 총동원 체제, 동물실험에 대한 근대적 맹신 그리고 한-미 간의 정치적 위계가 이 사건의 이면을 흐르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최근 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문서 자료실에서 흥미로운 문건을 찾아볼 수 있었다. ‘미국제 살서제(쥐약)의 인간 독성’이라는 제목의 기밀 문건으로, 1975년 6월4일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가 국방성과 국무성에 보고를 올린 내용이다.
“미국의 화학업체인 롬앤하스가 개발한 쥐약이 여러 명의 한국인 죽음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경남 마산에 사는) 두명이 쥐약 때문에 숨진 것으로 보이며, 추가로 여섯명이 숨졌거나 사망이 예상된다고 회사 쪽 인사들은 밝혔다. 또한 한국 정부가 더 많은 피해 사례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이들은 보고했다.”
어느 중국집 종업원들의 비극적 실험
무슨 일 때문이었을까? 사건은 약 한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정부는 1975년 4월30일 쥐잡기운동을 맞아 새 쥐약을 200만가구에게 나눠줬고, 이는 5월7일 경남 마산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던 젊은이들에게 우연한 비극으로 닥친다. 한 신문은 이렇게 전한다.
“마산시 남성동 중국음식점 경화반점의 종업원 정아무개(29)씨와 황아무개(19)군은 쥐잡기용으로 배급된 쥐약을 시험 삼아 먹었다가 숨졌다. 이들은 지난 4월30일 쥐잡기용으로 시로부터 배정받은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 에스(S)화학 제품인 백호 쥐약 네 봉지가 남아 있자, 지난 7일 같은 종업원 이모(18)군 등 4명과 함께 ‘요즘 쥐약은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얘기하던 끝에 ‘시험해보자’면서 정씨와 황군이 10g들이 쥐약 한 봉지씩을 먹고 배가 아파 마산도립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19일 오전 둘 다 숨졌다는 것이다.”(<동아일보> 1975년 5월20일)
문제의 쥐약은 25g짜리 작은 봉지에 들어 있었다. 겉면에는 사람과 가축에게 거의 해가 없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극히 많이 먹을 경우에만 식욕감퇴와 설사 등의 증상만 나타난다는 경고 말고는 없었다. 이 약은 미국에서 ‘바코’(Vacor)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기 직전, 한국에서 합작 형태로 ‘백호’라는 비슷한 이름의 상품명으로 생산·보급됐다. 미국 롬앤하스(RH·Rohm & Hass)사에서 787번째로 개발한 신약 성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RH-787’로도 불렸다. 미국에서도 독성검사를 마치고 판매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대사관은 이 문서에서 한국 수사기관이 소유한 사망자의 신체 조직 샘플을 얻기 위해 본국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마산의 젊은이들이 정말로 RH-787 때문에 숨졌는지, 직접 시험해보고 싶어서였다.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는 이렇게 보고를 맺는다.
“롬앤하스와 환경청(EPA) 전문가들은 바코에 인간 독성이 있을 가능성을 높게 보진 않는다. 그렇다고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든 이들의 죽음이 쥐약 때문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고, 문제가 있다면 미국 판매를 금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 기업과 정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1975년 쥐잡기 때 200만 나눠준 인체 무해한 ‘백호 쥐약’
미대사관, 본국에 비밀 보고
“여러 명 죽음과 관련된 듯
한국 정부 감추고 있는 것 같다” 학계 보고된 404명 중 109명 사망
동물실험 결과는 빗나갔고
새 쥐약은 당뇨병을 일으켰다
군사정부 총력전의 희생양은
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경제발전을 위해 ‘쥐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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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 쥐잡기운동은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나선 국민총동원 체제의 연습장이었다. 그러나 쥐의 높은 기피성과 서식지 이동 성향에 따라 매년 3000만~4000만마리를 포획해도 쥐 박멸은 허사였다. 오히려 미국 시장에 출시되기 전의 쥐약을 섣부르게 수입해 국민에게 무료 배포함으로써 수백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사진은 당시 정부가 배포한 쥐잡기운동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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