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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중순부터 경남 하동에서 잇따라 발견된 황새 4마리가 한 하천 하구에 모여 먹이를 찾고 있다.(왼쪽부터 러시아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야생 황새 희망이, 교원대 황새복원센터에서 탈출해 야생에 적응한 미호, 지난봄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열달째 머무르고 있는 봉순이, 봉순이와 짝을 이룬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야생 황새 하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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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하동에 모여든 황새들
지난 3월18일 경남 김해 화포천에서 황새 한 마리가 발견됐다. 다리에 채워진 식별표(J0051)를 통해 일본에서 날아온 두 살짜리 암컷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화포천과 봉하뜰의 유기농 농경지에 주로 머무르던 녀석한테 ‘봉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봉하뜰에 온 여자아이라는 뜻이다. 봉순이는 봉하뜰 근처 유기농 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가끔 먹이를 찾았는데, 그곳에 농부가 농약을 살포하던 9월17일 사라졌다. 인간이 자신을 쫓아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0월20일, 봉순이는 놀랍게도 화포천에서 100㎞ 넘게 떨어진 경남 하동군의 한 농경지에서 다시 관찰됐다.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또 다른 황새 한 마리와 함께 있었다. 새로운 녀석은 ‘하동’이라 부르기로 했다. 봉순이와 비슷한 크기의 하동이는 황새의 고향 러시아에서 남하한 야생 황새로 추정됐다. 하동이와 봉순이가 짝을 이룰 수 있을까?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 박시룡 교수가 하동이 사진을 보고 수컷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만 확신할 순 없다.
11월4일 아침, 안개 자욱한 습지에 황새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봉순이나 하동이일 것으로 생각하고 촬영해 보니 다리에 ‘B49’라고 찍힌 가락지를 달고 있었다. 지난 4월28일 교원대 황새복원센터에서 치료 중 놓친 ‘미호’였다. 일본 황새, 러시아 황새, 한국 황새가 한곳에 모이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호가 등장하자 봉순이의 행동이 거칠어졌다. 봉순이는 미호가 하동이 옆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미호는 암컷이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하동이는 수컷임이 확실했다. 세 마리의 황새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비행 솜씨를 뽐낸 뒤 서로 친구가 됐다. 미호가 야생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교원대 황새 복원사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들판은 커다란 새 세 마리로 활기가 넘쳤다.
일본서 봉하뜰 날아온 봉순이농약살포 피해 자취 감췄다
야생 황새들과 하동에서 발견
복원센터 탈출한 미호까지 찾아와
정착 기대되지만 환경 아직 요원
“서식지 생태 복원 이제 시작을” 이틀 뒤 이른 아침 야영텐트에서 나와 보니 습지의 황새가 네 마리로 보였다. 잠이 덜 깼나?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분명히 네 마리였다. 경사에 경사가 겹친 셈이다. 네 번째로 발견된 황새는 깃털의 형태로 보아 어린 개체로 짐작됐다. 녀석은 가까이 다가간 미호에게 선선히 곁을 내주었다. 하동이와 이 녀석이 모두 수컷이어서 봉순·미호와 각기 짝을 이룬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야생 황새가 정착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녀석한테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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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 미호가 하동의 한 하천 하구 상공을 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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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 봉순이가 하동의 한 하천 하구에서 뱀장어를 잡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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