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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정주항에서 남방큰돌고래 태산이가 크레인으로 매달려 가두리로 갈 어선에 옮겨지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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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생명
남방큰돌고래 고향 가는 날
▶ 윗부리가 잘린 태산이(수컷·20살 추정)와 입이 비뚤어진 복순이(암컷·17살 〃)는 제돌이의 유명세에 가려 잊힌 남방큰돌고래들입니다. 2009년 불법포획됐으나 우울증 성향과 신체적 조건으로 야생 방사되지 못하고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시민단체의 요구와 해양수산부의 결정으로 태산이, 복순이가 14일 제주 함덕 앞바다 가두리로 옮겨졌습니다. 야생 환경에 하루빨리 적응해 먼저 야생에 돌아간 제돌이와 친구들을 만나길 기원합니다.
남방큰돌고래 태산이와 복순이는 ‘스테이셔닝’(stationing)을 잘 하지 않는다. 스테이셔닝이란 돌고래가 인간을 보면 습관적으로 물가로 다가와 명령과 먹이를 기다리는 행동이다. 야생에서 잡힌 돌고래가 처음 배우는 동작이 스테이셔닝이다. 이 동작을 하지 못하면, 사육사가 명령을 내릴 수도, 수의사가 체온을 잴 수도 없다. 스테이셔닝은 역설적이지만 돌고래가 자신의 몸을 내줌으로써 수족관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본동작이다. 태산이와 복순이는 길들여지길 거부했다.
14일 새벽 5시30분, 경기도 과천의 서울대공원. 돌고래 사육사들은 제 몸을 내주지 않는 태산이와 복순이를 잡기 위해 애를 먹어야 했다. 태산이, 복순이가 고향인 제주 앞바다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무진동 화물차량을 타고 인천공항까지, 아시아나항공 화물전세기에 실려 제주공항까지, 다시 화물차를 타고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도착해 어선에 올라 200m 바다 밖 가두리까지 이어지는 550㎞, 9시간의 긴 여정을 앞뒀다.
복순이가 먼저 포획됐다. 사육사 여럿이 몸통을 부여잡은 채 가까스로 진정제 주사를 놓자 유순해졌다. 들것에 실려 야외로 나왔을 때 복순이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푸우, 푸우. 숨 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다음 포획되어 나온 태산이는 연신 뒤척이고 요동쳤다. 피이, 피이. 태산이가 낸 풀피리 같은 소리가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와 섞였다. 사육사들은 연신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줬다. 2013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에 이어 야생방사 사육 실무를 맡은 박창희 서울대공원 사육사는 “돌고래가 물 밖에서 오랜 시간 노출되면 사람이 화상을 입듯이 안 좋아진다. 가두리에 갈 때까지 계속 물을 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화물차에 태우기까지 두 시간이 걸렸다. 시동을 걸기 전, 사육사들은 태산이, 복순이를 떠나보내는 기념사진을 찍고 박수를 쳤다. 2013년 3월 불법포획에 따른 대법원의 몰수 결정으로 서울대공원에서 보호를 받은 지 2년 만에 사육사들의 손을 떠난다. 제돌이를 따라 야생으로 돌아간 춘삼이, 삼팔이와 달리 건강이 안 좋아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진 태산이, 복순이다. 먹이조차 거부하는 극단적인 무기력증은 일부 수족관 개체들에게 나타나는 ‘돌고래 우울증’(captive dolphin depression syndrome)으로 보였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가 지난해 12월부터 활어급여를 하며 핫핑크돌핀스와 함께 야생방사를 요구했고, 해양수산부가 2억원을 들여 야생방사를 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두 돌고래는 두 달 동안의 활어급여 과정에서 먹이사냥에 성공해 야생적응 가능성을 보여줬다.(<한겨레> 2월28일치 3·4면)
“처음에 데려올 때는 워낙 상태가 안 좋아서 걱정 많이 했어요. 2년을 노력했으니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요. 태산이, 복순이가 아직까지 잘 버텨주고 있어서 다행이죠.”
출발 준비를 끝낸 박창희 사육사가 말했다. 푸우, 푸우, 돌고래 분수공의 숨 쉬는 소리가 아침 동물원을 울렸다.
극단적 무기력증, 조련 거부하던남방큰돌고래 태산이와 복순이
14일 제주 함덕 앞바다에 닿았다
아스라한 수평선, 봉긋 솟은 한라산
6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이다 태산이, 복순이까지 합치면 5마리
야생관리에서 동물복지 관점 도입한
돌고래 야생방사는 대세가 됐다
해수부 나서면서 국가적 사업으로
전시·공연용 포획 금지하는 일 남았다 6년 만에 만난 제주 앞바다 제주 바다는 하얀 구름을 머금고 있었다. 태산이, 복순이가 야생적응훈련 가두리가 있는 제주시 함덕리에 도착한 건 오후 3시께. 고래연구소의 김현우 연구원 등이 두 돌고래의 등지느러미에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았다. 아르고스(ARGOS) 인공위성이 두 돌고래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2013년 제돌이 야생방사 때에는 얼마 안 돼 떨어져나가 무용지물이었다. 김현우 연구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화물차에서 뛰쳐나왔다. “잘 달았어요. 태산이, 복순이가 얌전하게 있었습니다.” 화물차 문이 열렸다. 태산이가 크레인에 매달려 천천히 날았다. 몇 년 만에 본 제주 바다인가. 6년 전 초여름 그물에 걸리기 전 점프를 하며 마지막 봤던 아스라한 수평선과 한라산이 크레인 밑 4미터 창공에서 펼쳐졌다. 갯내음이 났고 까슬까슬한 바닷바람의 촉감이 느껴졌다. 태산이가 눈을 껌벅였다. 100여명의 기자, 구경꾼들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태산이가 무사히 어선에 옮겨지자, 복순이도 크레인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 복순이는 고개를 흔들며 피이, 피이 풀피리 소리를 냈다. 끼룩끼룩 갈매기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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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볕 아래 가두리로 갈 어선에 올라탄 복순이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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